철도 부품업체 'AVT' 수사로 본 검은 공생.. 고비마다 로비, 돈이면 다 통했다

지호일 기자 2014. 9. 2.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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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피아'(철도+마피아) 수사의 핵심 대상인 AVT사가 450억원짜리 호남고속철도 궤도부품 납품을 따낸 이면에는 수년간의 치밀하고 조직적인 로비가 자리하고 있었음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AVT사는 경쟁업체 제품 하자 부각, 자사 제품 성능시험 통과 및 이후 납품 수주와 사후 관리까지 사업의 주요 단계마다 '돈'으로 구축한 유착 관계를 동원했다. 이 과정에서 발주사인 한국철도시설공단은 물론 감사원, 한국철도기술연구원(KRRI) 소속 관계자, 현역 국회의원 등이 전방위로 연루됐다.

경쟁사 죽이기 로비

독일 보슬로사의 고속철도 레일체결장치를 수입·납품하는 AVT사는 호남고속철도 납품 건을 수주하기 위해 우선 경쟁사인 팬드롤코리아 제품의 결함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했다. AVT와 함께 국내 레일체결장치 시장을 양분하는 팬드롤코리아는 2008∼2009년 AVT를 따돌리고 경부고속철도 2단계(대구∼부산) 구간 360억원 상당의 부품을 납품했다.

AVT 이모(55) 대표는 2000년 AVT에 대한 현장 감사를 나왔다가 친분을 맺게 된 감사원 김모(52·구속기소) 감사관을 집중 활용했다. 이 대표는 2006년 6월부터 김 김사관에게 팬드롤코리아 제품의 문제점을 정리한 자료를 수시로 건네며 "감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김 감사관은 이를 감사정보시스템에 감사 정보로 입력하거나 감사 담당자에게 전달했다. 2011년에 진행된 'KTX 운영 및 안전관리 실태' 감사에는 직접 예비조사팀에 참여해 AVT 측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감사원은 2012년 4월 발주사인 한국철도시설공단 측에 팬드롤코리아 부품에 대한 재시공 등 조치 방안 마련을 통보했다. 감사원 감사 자료는 이후 AVT가 독점 납품권을 수주하는 데 중요 근거 자료로 활용됐다. 김 감사관은 이 대가로 AVT 측으로부터 이사 비용 2000만원 등 모두 8050만원을 받아 챙겼고, '철피아 1호 구속자'로 기록됐다.

이 대표는 정·관계에 발이 넓은 권영모(55·구속기소) 전 새누리당 수석부대변인도 고문으로 영입해 로비 창구로 썼다. 2009년 12월부터 지난 6월까지 고문료, 활동비, 자동차 리스료 명목 등으로 모두 3억8000여만원을 제공했다. 이 대표는 권 전 부대변인에게도 감사원 감사 자료를 주며 자사의 납품 청탁 등에 사용토록 했다.

부실심사 통과용 로비

AVT는 2012년 3월 한국철도기술연구원(KRRI)에 자사가 생산한 레일 부품에 대해 성능시험을 의뢰했으나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이에 KRRI 박모(55) 책임연구원을 포섭해 시험성적서를 조작, 같은 해 5월 적격 심사를 통과했다. 성적서 위조 사실은 3∼4개월 지나 철도시설공단 성능검증위원회에 들통 났지만 박 연구원은 감봉 3개월 징계를 받는 데 그쳤다. 검찰은 AVT 측이 권 전 부대변인을 통해 위조 문제를 덮기 위해서 로비에 나섰을 것으로도 의심한다. 박 연구원은 사문서위조 혐의로 지난달 구속됐다가 최근 법원의 구속적부심을 통해 석방된 상태다.

460억원 수주용 로비

AVT 측은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오기 직전부터 권 전 부대변인을 통해 새누리당 송광호(72) 의원에게 접근했다. 송 의원은 당시 철도시설공단을 관할하는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었다. 업계에서는 AVT가 권 전 부대변인을 영입할 때부터 그와 친분 있는 것으로 알려진 송 의원에 대한 로비를 염두에 뒀다는 얘기도 나왔다. AVT 이 대표는 2012년 4월 송 의원에게 "AVT가 납품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취지의 부탁과 함께 현금 500만원을 건넨 것으로 파악됐다. 팬드롤코리아 제품의 문제점을 담은 자료도 송 의원에게 전달됐다고 한다. 이 대표는 이후에도 지난 5월까지 10차례 송 의원을 만났으며, 그때마다 500만∼1000만원씩 뇌물을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AVT 측은 김광재(사망) 당시 철도공단 이사장에게도 로비를 시도했다. 철도시설공단은 김 전 이사장 지시에 따라 2012년 8월 산하 호남본부와 충청본부에 '팬드롤코리아가 자재 공급업체로 참여하지 못하도록 배제할 것을 요청한다'는 공문을 내려 보내기도 했다. 권 전 부대변인은 이에 대한 감사 표시로 2013년 2월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내 정당대변인 행정실 옆방에서 김 전 이사장에게 1000만원을 건네는 등 모두 3000만원을 줬다. 두 사람은 영남대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김 전 이사장은 검찰 소환이 임박한 지난 4일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정치로의 달콤한 악마의 유혹에 끌려 잘못된 길로 갔다. 길의 끝에는 업체의 로비가 기다리고 있더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AVT는 온갖 로비 끝에 2012년 11월 경쟁사를 따돌리고 궤도공사업체 삼표이앤씨 등과 450억원 상당의 독점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의혹 무마용 로비

AVT 측은 지난해 6월 호남고속철도 구간에 부설한 레일체결장치가 기준에 미달한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또 한번 위기를 맞았다. 국토교통부는 같은 해 8월부터 민관합동검증단을 꾸려 조사에 착수했다. 올 4월에는 철도시설공단에 레일패드 등 부품 품질개선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AVT 측은 철도시설공단 궤도처 황모(47·구속기소) 부장을 통해 공단 기밀 서류를 18차례나 빼냈다. 공단 측이 문제가 된 제품의 성능시험 결과를 확인하겠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는 내부 보고서라 AVT에 유출되면 대책 자체가 무색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문건 중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감찰 사항, 민관합동검증단 조치 계획 등도 포함돼 있었다. 황 부장은 그 대가로 노래방 접대를 받는 등 250만원 상당의 금품 및 향응을 받았다. 또 공단 윗선과 친분이 있는 AVT 김모 이사에게 "승진할 수 있게 도와 달라"며 인사 청탁을 하고, 자신의 박사 논문에 필요한 실험까지 무상으로 제공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AVT 측이 이후에도 철도시설공단 관계자나 정치권 인사 등에게 금품을 제공하며 지속적으로 '관리'해 온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1일 "AVT는 납품 수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사업 단계마다 로비를 벌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은 팬드롤코리아 측 역시 AVT의 공격을 막아내고 납품을 따내기 위해 정·관계 로비를 했을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지난 16일에는 팬드롤코리아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도 진행됐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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