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까지 불신의 늪.. 중고생 12%만 "한국사회 신뢰"

입력 2014. 9. 2. 03:04 수정 2014. 9. 2.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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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혁신 '골든타임']중고생 '사회신뢰' 44.7점
<7>믿을 수 있는 나라로/편법-탈법 엄벌하자

[동아일보]

《 서로 믿지 못한다. 서로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본다. '불신'은 21세기 한국 사회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키워드다. 미래 세대인 청소년이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떨까. 한국 사회의 신뢰도가 100점 만점에 몇 점이냐고 물었다. 그들은 44.7점밖에 주지 않았다. 이 같은 신뢰 붕괴는 사회적 비용을 키운다. 남이 거짓말을 하지 않나 확인하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창조적으로 써야 할 에너지가 헛되이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

'대부분의 사람을 믿을 수 있다'라는 말에 동의하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100명 중 26명만 "그렇다"고 답했다. 반면 스웨덴은 60명이나 된다. '사회적 자본'의 핵심인 신뢰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민낯을 보여주는 수치다. 한국은 '사회적 자본'의 세계 순위에서 66위에 불과하고 '사회적 신뢰지수'도 56.9점으로 스웨덴의 134.5점에 한참 못 미친다.

신뢰 저하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증가시킨다. 세계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타인을 신뢰한다'는 응답자가 10% 하락할 때 경제성장률은 0.8% 떨어진다고 한다. 안동규 한림대 경영대학장은 "불신하면 남을 의심하고 잘못을 들춰내는 데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고 협동으로 인한 시너지가 발생하지 않는다"며 "신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본으로 경제적 자본과 함께 선진 사회로 가기 위한 본질적 자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미래세대는 우리 사회를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는 지난달 25∼27일 서울 시내 중고등학생 129명에게 한국 사회를 신뢰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 결과 80명(62%)이 '불신하는 편이다'(64명) 혹은 '매우 불신한다'(16명)고 답했다. 반면 '한국 사회를 신뢰한다'고 답한 청소년은 16명(12.4%)에 그쳤다.

'우리 사회에 대한 신뢰 정도를 100점 만점에 몇 점이나 줄 수 있는지'를 물어보니 평균 44.7점으로 낙제점을 면치 못했다. 사회를 불신하는 이유로 "거짓말 안 하고 약속(신뢰)을 지키면 오히려 손해 보는 세상" "대통령, 국회의원 등 정치인이 국민과의 약속은 지키지 않고 사욕만 채운다" 등을 가장 많이 언급했다.

'약속을 지키면 손해 본다'는 인식의 뿌리에는 법이나 원칙을 어겨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윤리연구센터가 지난해 고등학생 2만1000명을 조사한 결과 절반(47%)은 "10억 원이 생긴다면 죄를 짓고 1년 정도 감옥에 가도 괜찮다"고 답했다. 하지만 '10억 원이 생기지만 징역 20년을 살아야 한다'고 한다면 어떤 대답이 나왔을까? 청소년들의 응답은 달라졌을 것이다. 결국 사회적 신뢰가 무너진 핵심 원인에는 거짓말, 편법으로 이득을 봐도 그에 합당한 처벌을 하지 않는 사회 구조도 있다는 것이다.

사회 불신을 유발하는 범죄에 대한 처벌이 너무 약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이 대표적인 예.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지난해 553억 원에 달했다. 올 1∼5월 발생건수도 234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756건)에 비해 33% 증가했다. 문제는 '솜방망이 처벌'이다. 서울 서대문경찰서 백의형 경감은 "보이스피싱 관련 범죄자의 구속 기간은 1년 남짓에 그쳤다"며 "보이스피싱에 속아 송금한 돈을 대포통장으로 뽑아내는 인출책은 범행 가담 정도가 낮다는 이유로 약하게 처벌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자거래금융법상 본인 명의로 개설한 통장을 타인에게 팔거나 빌려주다 적발되면 3년 이하 징역에 처하거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범죄에 이용될 줄 알면서도 돈을 받고 통장을 빌려준 이들이 '몰랐던 일'이라고 잡아떼면 대부분 기소유예되는 것이 현실. 고의성 입증이 어렵다는 맹점을 이용한 범죄로 사회 전반의 신뢰를 하락시킨다.

개인정보 유출 처벌도 미약하다. 올 초 KB국민 롯데 NH농협카드의 고객 거래정보 약 1억 건이 외부로 유출된 사건이 발생해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들 금융회사는 고작 3개월 동안 영업정지, 600만 원 과태료에 그쳤다.

기획재정부의 '세무사 징계현황 자료'에 따르면 탈세로 인해 징계를 받은 세무사는 2012년 8명에서 2013년 34명, 2014년 30명(7월 기준)으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최근 5년간 징계를 받은 총 148명의 세무사 중에서 불법행위로 등록이 취소된 경우는 2명에 불과하다. 48명이 2년 이하의 직무정지, 86명은 1000만 원 이하 과태료만 냈다. 세무사가 수십억 원 규모의 탈세에 가담해도 세무사법(22조)에 따라 직무정지 최대 2년, 과태료 최대 1000만 원만을 물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 탓이다.

보험사기로 수억 원의 이득을 보고 고작 1∼2년의 징역형을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금융감독원 분석 결과 2011년부터 2012년까지 보험범죄 유죄 판결 중에서 벌금형이 72.1%를 차지했고 집행유예는 17.3%, 2년 초과 징역형은 0.8%였다. 보험범죄자 10명 중 9명은 가벼운 처벌만 받고 풀려난다는 의미다.

현행 식품위생법상 유해한 음식을 팔면 7년 이하 징역을 살거나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유해 식품을 팔다 걸려도 법원 판결에선 집행유예나 적은 액수의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충북에서 엿 공장을 운영하는 김모 씨(62)는 수년간 수입 옥수수가루로 만든 맥아엿을 재가공해 국산으로 속여 8억60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 5월 꼬리가 밟혀 농수산물 원산지 표시법 위반으로 구속됐지만 김 씨에게 내려진 처벌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2000만 원이 전부였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11년 식품위해업체에 내려진 3318건의 행정처분 가운데 영업 취소나 영업장 폐쇄는 1%인 34건에 불과했다. 최규해 서울시 민생사법경찰과장은 "유해 식품 판매는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심각한 범죄인 만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종 zozo@donga.com·이새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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