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황선홍이냐, 레알 최용수냐

2014. 8. 3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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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축구광

황새와 독수리의 '조류더비'

▶ "황새가 독수리보다 높이 날 것이다."(포항 스틸러스 손준호) "독수리가 원래 황새보다 높이 나는 것 아닌가."(FC서울 최현태) 프로축구계에 때아닌 조류 논쟁이 벌어졌다. 황새와 독수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였던 황선홍(46) 포항 스틸러스 감독과 최용수(41) FC서울 감독의 현역 시절 별명이다. 단 한번도 같은 팀에서 호흡을 맞춘 적 없고, 대표팀에서조차 주전 공격수 자리를 두고 경쟁한 두 사람의 전쟁이 20년 세월을 훌쩍 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7일 밤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황선홍 포항 스틸러스 감독과 최용수 FC서울 감독은 초조하게 선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20일 1차전 90분에 이은 이날 2차전 90분, 그리고 연장 전후반 30분으로도 가리지 못한 승부는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210분의 혈투를 마친 양 팀 감독과 선수들은 이제 결과는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듯 '파이팅'을 외쳤다.

잠시 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서울의 골키퍼 유상훈이 포항의 1~3번 키커 황지수, 김재성, 박희철의 골을 연속으로 막아냈다. 승리가 확정된 순간 최용수 감독은 환호성을 질렀다. 서울이 2014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포항을 꺾고 4강에 진출하는 순간이었다.

올 시즌 아시아 챔피언 길목에서 열린 두 젊은 명장의 맞대결은 이렇게 끝났지만 얽히고설킨 숙명의 라이벌 황선홍 감독과 최용수 감독의 맞대결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FC서울 최용수개성 강한 선수들을 끈끈한조직력으로 묶은 '형님 리더십'한발 먼저 팀 리그 우승 달성전력 약화되자 '스리백 카드'한물간 전술 아님을 증명받아 포항 스틸러스 황선홍부산에서의 쓴맛 소중한 경험스타선수 없는 열악한 조건에서리그 우승 이룬 순도 높은 업적가짜 원톱 둔 '제로톱 전술'과오밀조밀 패스로 '스틸타카' 구현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최용수가 웃다

황선홍 감독과 최용수 감독은 현역 시절 한국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명성을 날렸다. 하지만 플레이스타일은 전혀 달랐다. 황 감독은 세련되고 영리한 플레이를 펼쳤다. 별명 '황새'도 우아한 플레이스타일 때문에 붙었다. 반면 최용수 감독은 세련되지는 않지만 저돌적이고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유명했다. 탁월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페널티박스 모든 곳에서 골을 집어넣는 능력을 과시하며 '독수리'란 별명을 얻었다.

선수 시절 명성은 황선홍 감독이 한발 앞서 있다. 최용수 감독이 안양 엘지(현 FC서울)에서 데뷔해 신인왕에 오른 1994년 황선홍 감독은 이미 슈퍼스타였다. 대표팀에서도 최 감독은 황 감독의 그늘에 있었다. 황 감독은 1988년부터 2002년까지 14년 동안 A매치 103경기에 출전해 50골을 터뜨렸다. 최 감독도 69경기에서 27골을 넣었지만 황 감독의 기록에는 미치지 못했다. 최용수 감독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 지역예선에서 6경기 7골을 퍼붓는 활약으로 대표팀의 본선행을 이끌었지만 정작 본선에서는 벤치를 지키는 신세였다. 황 감독은 1990년, 1994년, 2002년 월드컵에서 주전 스트라이커로 뛰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폴란드전 선제 결승골로 '4강 신화'의 신호탄을 쏘며 영웅이 됐다. 최 감독은 황 감독에게 밀려 1경기 출전에 그쳤다.

두 사람의 경쟁은 이제 지도자로서 제2막을 열고 있다. 최용수 감독은 2006년 서울에서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2011년 황보관 당시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된 뒤 감독 대행을 맡았다가 이듬해 39살의 젊은 나이에 FC서울의 정식 감독이 됐다. 2003년 은퇴한 황선홍 감독은 2008년부터 부산 아이파크를 거쳐 2011년부터 포항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감독으로서는 최용수 감독이 한발씩 앞섰다. 최 감독은 2011년 감독 대행이 된 뒤 바닥에 떨어진 팀을 추슬러 정규리그 3위에 올려놨다. 코치 시절 선수들과 부대끼며 익힌 '형님 리더십'으로 선수들을 끈끈한 조직력 아래 묶어냈다. 정식 감독이 된 2012년에는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황선홍 감독은 2012년 FA컵 우승을 이뤘지만 리그 우승은 최용수 감독보다 한발 늦은 2013년 처음 달성했다.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도 최용수 감독이 먼저 성과를 올렸다. 2013년 최 감독은 서울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비록 결승 무대에서는 광저우 헝다에 3-3(원정 1차전 1-1 무승부, 안방 2차전 2-2 무승부)으로 비기고도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우승컵을 광저우에 내줬지만, 그해 아시아축구연맹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며 아시아에서 인정받는 명장 반열에 올랐다.

선수 시절 최용수 감독은 지능적인 선수로 평가받지 못했다. 그런데 사령탑으로서 최용수 감독은 선수들의 심리를 꿰뚫고, 전술에 대한 이해가 풍부하고, 효율적으로 선수단을 운영하는 영리한 사람이었다. 선수 시절부터 최 감독을 지켜봐온 고정운 <스포티브이>(SPOTV) 해설위원은 "겉으로 볼 때는 무데뽀 같지만 속으로는 생각이 굉장히 많다. 자기 속에 가지고 있는 것을 절대 쉽게 내비치지 않는다"고 평했다.

최용수 감독이 거둔 성과는 K리그 최고 수준을 자랑하던 선수들 덕분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전방에서 데얀과 몰리나라는 특급 외국인 선수가 공격을 주도했고, 중앙에서는 하대성이 중심을 잡았다. 김진규와 아디라는 걸출한 수비수도 있었다. 특히 데얀은 최용수 감독이 지휘한 2011~2013 세 시즌 동안 64골을 넣는 대단한 득점력을 자랑했다.

반면 황선홍 감독의 업적은 순도 높았다. 황 감독은 2008년부터 3년간 전력이 약한 부산 감독으로서 숱한 패배를 맛보면서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황 감독은 "당시 선수들에게 맞추기보다 내가 원하는 축구를 하려고 했다. 선수들에게 안 맞는 옷을 입히려 했다"고 반성했다.

2013 시즌, 포항은 어떻게 63골을 뽑아냈나

2011년 고향팀 포항의 사령탑을 잡았을 때도 포항의 전력은 강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2012년 팀을 FA컵 정상에 올리며 지도자로서 처음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2013년에는 K리그 클래식 우승과 FA컵 우승을 모두 이뤄내는 '더블'을 달성했다. 1983년 출범한 프로축구사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팬들은 황선홍 감독의 포항 스틸러스가 보여준 수준 높은 패스축구를 스페인 FC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짧은 패스를 주고받으며 경기를 풀어나가는 전술)에 빗대 '스틸타카'라 부르기도 했다. 특히 이런 업적을 스타플레이어, 외국인 선수 하나 없이 이뤄냈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었다.

황 감독의 '스틸타카'는 열악한 조건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최대 4명의 외국인 선수를 기용할 수 있는 K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는 팀의 핵심 전력이다. 그러나 포항은 2013 시즌을 앞두고 외국인 선수를 전부 내보냈다. 대신 황 감독은 포항의 유소년팀이 배출한 이명주, 김승대, 손준호, 신광훈 등 젊은 선수를 중심으로 팀을 조직했다. 이명주를 중심으로 오래 손발을 맞춰온 선수들에게 오밀조밀한 패스로 상대의 수비를 허무는 플레이를 주문했다. 전문 공격수가 없어 김승대를 폴스9(가짜 원톱)으로 두고 주변 동료와의 활발한 위치 변경으로 득점 루트를 찾는 제로톱 전술을 내세웠다. 결과는 위력적이었다. 그해 두자릿수 득점을 기록한 포항 선수는 한명도 없었지만 다양한 선수가 득점을 올리며 울산과 함께 리그에서 가장 많은 63골을 뽑아냈다.

서울의 선수층이 화려했다고 최용수 감독의 업적을 폄하하기는 어렵다. 최 감독은 개성 강한 스타 선수들을 끈끈한 조직력으로 묶어냈다. 특히 2013 시즌 초반에는 데얀이 중국 이적을 허락하지 않은 것에 불만을 품고 태업을 하기도 했지만 데얀을 설득해 다시 헌신적인 선수로 만들었다.

올 시즌은 최 감독에게 위기이자 기회의 해다. 시즌을 앞두고 핵심 전력 데얀과 하대성이 한꺼번에 중국으로 떠났고, 아디는 은퇴를 했다. 몰리나도 부상으로 전반기 내내 결장했다. 서울의 전력은 순식간에 약화됐다. 고심 끝에 최 감독이 꺼내든 카드는 '스리백'이다. 새롭게 영입한 수비수 오스마르는 포백라인의 센터백으로 서기엔 발이 느렸지만 대신 패스 능력이 좋아 수비형 미드필더를 보게 했다. 센터백 김진규는 나이를 먹으면서 신체 능력은 떨어졌지만 노련함이 더해져 통솔자 역할에 어울리는 선수가 됐다. 차두리, 김치우 등 풀백들은 공격 성향이 강해 윙백에 더 어울렸다. 장지현 <에스비에스(SBS) 스포츠> 해설위원은 "스리백 도입은 선수단 구성이 변화하면서 선수들의 장점을 살려주려는 노력이었다"고 평가했다. 시즌 초반에는 선수들이 스리백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한때 리그 하위권까지 처졌다. 그러나 후반기 들어 서울은 점점 더 스리백의 완성도를 높이면서 상승세를 탔다.

3명의 중앙수비수를 두는 스리백은 한물간 전술 취급을 받곤 했다. 최용수 감독은 지난 시즌부터 가끔 스리백을 시험해봤다. 탄탄한 수비를 바탕으로 순식간에 역습해 올라가 골을 뽑아내는 실리축구를 추구하는 최용수 감독에게 스리백은 열등한 전술이 아니었다. 최 감독의 선택은 최근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스리백을 들고나온 네덜란드·코스타리카 등의 팀들이 유럽과 남미의 강호들을 연파하면서, 오히려 시대적인 흐름을 정확하게 읽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대길 <케이비에스 엔>(KBS N) 해설위원은 "스리백의 유효성은 월드컵에서 증명됐다. 젊은 감독인데도 변화를 줘야 할 때 과감하게 변화를 주는 점이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말 아끼는 황선홍, 재치있는 입담의 최용수

40대 젊은 감독의 선두 주자로 황선홍 감독과 최용수 감독이 뚜렷한 자기 색깔과 성과를 보이자 두 라이벌의 대결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다. 2011년 이후 두 감독의 맞대결 전적은 6승6무4패로 황 감독이 약간 앞서 있다. 하지만 매 경기 피를 말리는 접전을 펼치며 팬들을 열광시켰다. 팬들은 포항과 서울의 경기를 두 감독의 별명을 빗대 '조류더비'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준희 <한국방송>(KBS) 해설위원은 "세계적인 강팀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서울과 포항의 관계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레알이 수비를 탄탄히 하다가 빠른 역습으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림 벤제마, 개러스 베일 스리톱이 득점하는 역습축구를 하는 것처럼 서울 역시 수비를 두텁게 하다 차두리와 김치우 같은 공격적인 윙백을 통해 역습을 전개해 공격수가 마무리한다. 반면 포항은 중원에서부터 짧고 세밀한 패스를 주고받으며 상대 수비진을 허무는 패스축구를 추구한다.

성향도 유사하다. 황선홍 감독은 상대가 누구든 포항의 축구를 하는 것을 강조한다.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빠르고 세밀한 패스축구의 완벽성을 추구하는 황 감독의 가치관이기도 하다. 이는 팀이 잘나갈 때나 못 나갈 때나 티키타카를 버리지 않는 바르셀로나와 유사하다. 반면 최용수 감독의 서울은 레알 마드리드처럼 선수 구성에 따라 상대별로 다양한 전술을 적용하는 실용축구를 구사한다.

황선홍 감독과 최용수 감독의 스타일은 많이 대비된다. 황 감독은 외부는 물론 구단 안에서도 점잖다는 평가를 듣는다. 인터뷰 자리에서도 논란이 될 만한 말을 하지 않는다. 반면 최용수 감독은 언제나 화제를 몰고 다닌다. 2012년 우승했을 때는 말을 타고 경기장에 나타나는 퍼포먼스를 보일 정도로 쇼맨십도 있다. 지난 23일 전북과의 경기를 앞두고 최강희 전북 감독이 엽총을 들고 '독수리 사냥을 나간다'고 홍보하자 "보니까 최강희 감독님 총이 구식이던데 방탄복 입고 하늘로 올라가 있으면 된다"고 재치있게 맞받아칠 줄도 안다.

올 시즌 두 사람의 맞대결은 20일과 27일 열린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절정에 올랐다. 황선홍 감독과 최용수 감독은 모두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올 시즌 최대 목표로 잡았다. 황 감독은 지난해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을 모두 달성해 남은 목표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이 됐다. 최 감독은 지난 시즌 눈앞에서 놓친 아시아 챔피언 트로피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1·2차전과 연장전까지 210분 동안 피를 말리는 접전 끝에 4강행 티켓은 결국 승부차기에서 승리한 최용수 감독의 차지가 됐다. 이날 경기의 승자는 최용수 감독이지만 공식 기록은 무승부(승부차기는 무승부로 기록)다. 두 사람의 승부는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K리그를 대표하는 젊은 명장으로 거듭난 두 사람의 맞대결은 이미 지나간 승부보다는 앞으로 남아 있는 승부가 훨씬 더 많다. K리그 팬들이 설레는 이유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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