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두 아들을 죽인 음주 운전자 살해한 아버지에게 "무죄" 평결

박병일 기자 입력 2014. 8. 30. 08:09 수정 2014. 8. 30.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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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길고도 복잡한 제목의 기사가 CNN에 실렸습니다. 쉽게 풀어보자면, 한 음주 운전자가 두 아들을 치어서 죽게 했고, 숨진 아들의 아버지가 이 음주 운전자를 살해했는데 무죄 평결을 받았다는 겁니다. 이 기사의 제목을 보는 순간 오래 전에 봤던 영화 한 편이 떠올랐습니다. 제목이 'Time to Kill'로 기억하는데, 한 백인 마을에서 흑인 딸을 성폭행한 뒤 잔인하게 때리고 버려둔 백인 남자 두 명을 총으로 쏴서 살해한 소녀의 아버지(사뮤엘 잭슨)가 변호사(매튜 매커너히와 산드라 블록)의 도움을 받아 무죄로 풀려난다는 내용입니다. 법보다 정의가 앞선다는 메시지였습니다.

다시 본래의 얘기로 돌아가서, 두 아들을 죽게 한 음주 운전자를 살해한 아버지의 행위는 정당했을까요? 그래서 무죄 평결을 받은 걸까요? 하지만, 현실은 영화와 다릅니다. 그렇게 단순하지도 않습니다. CNN 기사 만으로는 전체 사건의 윤곽, 그리고 무죄 평결의 배경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역 신문들을 뒤져봤는데 매우 흥미로운 법정 공방이 펼쳐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지금부터 그 얘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사건은 2년 전인 2012년 12월, 텍사스 주 휴스턴에서 일어났습니다. 32살의 데이비드 바라자스는 11살과 12살 짜리 두 아들을 태우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그만 차가 고장이 났습니다. 바라자스는 운전대를 잡고 두 아들이 뒤에서 밀었습니다. 집까지 차를 밀고 가볼 생각이었습니다.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였습니다. 만취 상태에서 운전하던 20살 호세 반다가 비틀거리며 차를 몰다가 바라자스의 차를 뒤에서 들이받았습니다. 바라자스의 두 아들은 이 사고로 현장에서 숨졌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두 애를 치어 숨지게 한 반다 역시 자기 차 안에서 숨져 있었습니다. 그것도 머리에 총을 한방 맞고 말입니다. 현장에 있던 바라자스가 체포됐고 살인죄로 기소됐습니다.

재판이 시작되면서 검찰과 변호인의 치열한 공방전이 시작됩니다. 검찰은 바라자스가 사고 직후 백 미터 가량 떨어진 집에서 총을 가져다가 반다를 쏴서 죽였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변호사는 똑 떨어지는 증거 없이 정황만 가지고 두 아들을 잃은 아버지에게 살인 혐의까지 씌우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검찰은 반다를 죽이는 데 쓴 총이 357구경의 권총으로 바라자스가 소유한 권총과 같은 종류라고 주장했습니다. 조사관들이 반다가 탄 차에서 이 권총에서 나온 총알의 부스러기를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변호사는 그 권총은 누구나 갖고 있는 대중적인 총이며 살해에 쓰인 총이 바라자스의 총이라고 볼 증거는 없다고 맞섰습니다.

그러자, 검찰이 이번에는 숨진 반다의 차, 특히 운전석 쪽 문과 손잡이에서 바라자스의 피가 묻어 있었다는 법의학자의 증언을 들이댔습니다. 그러니까 바라자스가 두 아들이 숨진 것을 발견하고는 화가 난 나머지 집으로 달려가 총을 가지고 와서 반다를 쐈고 이 과정에서 바라자스의 피가 차에 묻게 됐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서도 변호사는 논리와 증거로 맞섰습니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바라자스는 바닥에 누운 아이들을 인공호흡하고 있었고 바라자스 부인이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담긴 경찰 차 카메라 화면을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바라자스가 911에 신고하면서 나눈 통화를 들려주면서 바라자스가 사고 직후 911에 신고하고는 경찰과 구급차가 오기 전까지 집에 달려가서 총을 들고 와 반다를 쏠 시간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습니다. 게다가 반다의 차에서는 바라자스의 피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피도 발견됐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자, 검찰은 경찰이 바라자스의 집에서 357구경의 권총 지갑을 발견했지만 권총은 없었다는 점을 들어 바라자스가 자기 권총으로 반다를 쏜 뒤 총을 버렸다고 주장했습니다. 변호사는 이에 대해 만일 바라자스가 반다를 쐈다면 바라자스의 손에 화약 가루가 묻어 있어야 하는데 법의학 수사대의 수사 결과 바라자스의 손에서 어떤 화약 가루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반박했습니다.

검찰이 이번에는 당시 도로를 지났던 목격자를 증인으로 세웠습니다. 바라자스가 반다의 차 운전석 쪽에 서 있었고 총 소리가 났다는 증언을 이끌어냈습니다. 하지만, 변호사는 이 목격자가 바라자스가 쏘는 장면은 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여러 발의 총소리를 들었는데, 정작 반다는 단 한발만 맞았다고 반박했습니다.

자, 여러분이 이 사건을 심리하는 배심원이라면 어떻게 판단하시겠습니까? 당시 배심원들은 바라자스가 반다를 죽였다고 볼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점을 들어 무죄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재판이 끝난 뒤 여 검사 제리 예니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바라자스가 반다를 살해했다고 믿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소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배심원단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이성적인 판단을 내렸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무죄 평결을 이끌어 낸 변호사 샘 카맥은 역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검찰이 증거를 가지고 혐의를 입증해야 하는데, 이미 선입견을 갖고 수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잠재적 가능성이나 실마리조차 무시했던 겁니다."

이번에는 무죄 평결을 받은 바라자스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제 어깨를 누르고 있던 엄청난 짐들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은 이미 파괴됐습니다. 사랑하는 제 두 아들을 잃었으니까요." 그러면서 또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반다의 부모 역시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모두 잃었습니다."박병일 기자 cokkiri@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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