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직업·학력 관계 없어..'바바리 우먼'도 있다

입력 2014. 8. 29. 20:00 수정 2014. 8. 29.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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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바바리맨의 세계

▷ "수치스럽다." 김수창 검사가 자신이 바바리맨임을 인정하며 한 말입니다. 언론들은 시시티브이 화면을 공개하며 한 인간의 타락을 지상중계 했습니다. 우리는 그의 수치스러움을 즐겼을지도 모릅니다. 김 검사는 죗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것으로 끝일까요. 바바리맨은 김 검사만이 아니고 피해자는 앞으로 더 나올 겁니다. <한겨레>는 왜 이들이 성도착증에 빠지고 이를 막을 방법은 없는 것인지 알아보았습니다.

바바리(Burberry). 영국의 대표적인 트렌치코트 제조회사의 이름이다. 비가 자주 오고 습기찬 날씨가 많은 영국의 기후에서 발전한 기능성 의류이다. 코트지만 가벼워서 실용성이 뛰어나다. '영국이 낳은 것은 민주주의, 스카치위스키, 바바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바바리는 세계적인 옷이다.

한국에서도 바바리는 품위있는 남성 의류의 대표 격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다만 한국에선 성기 노출을 즐기는 일부 변태 남성들을 '바바리맨'으로 일컫기도 한다. 옷의 특성상 속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거리에서 바바리코트를 열어젖히면 간편하게 노출을 할 수 있다. 외국에선 레인코트맨(raincoat man)이라고도 부른다.

'김수창 제주지검장 사건'(8월19일 사표 수리)은 바바리맨이 일상에선 평범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도처에 바바리맨은 숨어 있고 앞으로도 나타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국내 학계에서 성도착증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한 것은 불과 5년 안팎이다.

(성기)노출증은 여러 성도착증(paraphilia)의 일부다. 'paraphilia'는 그리스어로 '벗어난 사랑'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편향된 성적 각성'이라는 생물·의학적 용어로 사용되어왔다. 19세기 말까지 이러한 성적 이상 증세는 내과적 질환으로 간주되지 않았지만, 이후 정신의학계에서는 사회병질적 성격장애의 유형으로 판단해왔다.

피해자가 소리 지르면 더 쾌감을 느낀다

의학계에서 판단하는 성도착증은 노출증 외에 물품음란증(Fetishism), 마찰도착증(Frotteurism), 소아기호증(Pedophilia), 피학증(Masochism), 가학증(Sadism), 복장도착증(Transvestic fetishism), 관음증(Voyeurism) 등으로 다양하다. 판단에 따라 성도착증의 유형이 수백개에 이른다고 소개한 논문도 있다. 이러한 증세가 반복적이고 강렬한 성적 각성을 주거나 상대 동의 없이 행위를 하게 되는 증세가 6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 자신에게 성도착 증세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다만 최근에는 이런 다양한 성도착증을 무조건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분류하지는 않고 '성도착증'과 '성도착 장애'를 구분하는 추세다. 미국 정신의학회는 올해 20년 만에 정신장애 진단기준(DSM-5)을 새로 정립했는데 그 내용을 짧게 요약하면, '성도착 증세로 행위자 또는 대상자가 고통을 느끼고 사회생활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심각하면' 질환(paraphilic disorder·성도착 장애)으로 진단할 수 있다.

김수창 전 지검장이 노출 욕구를 품기만 했다면 단순한 성도착증에 불과한 것이겠으나, 이런 증세를 행동에 옮겨 스스로 고통을 느꼈거나 상대에게 고통을 주었다면, 나아가 사회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각해졌다면 의학적 치료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그렇다면 왜 이런 성도착증에 빠지는가이다. 소위 멀쩡한 사람이, 그것도 사회적으로 가장 성공한 사람까지 바바리맨이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진 않았다. 다만 여러가지 학설과 추정이 존재한다.

국내 성도착증 관련 논문에 자주 인용되는 영국의 심리학자 브렛 카(Brett Kahr)의 저서 '노출증'에는 노출 증세의 정신분석학적 원인으로 △거세공포(프로이트의 발달이론에 나오는 개념. 3~5살 남자아이가 어머니를 성적으로 접근하려는 욕망을 느끼고 아버지가 자신의 성기를 없앨지 모른다고 불안해하는 것)에 대한 방어기제로 남성적 능력을 북돋우려는 것 △어린 시절 정신적 외상들과 관련된 내적 고민 △실추된 자부심을 복구하는 수단 등이 거론되고 있다.

신경생물학적으로는 성욕구를 조절하는 호르몬의 분비체계에 이상이 생기거나 성염색체의 결함으로 여러 장애가 생겨 성도착증이 생긴다는 이론도 있다. 또 누구나 이상적인 성적 대상을 꿈꾸고 성적 행위를 현실화하려고 뇌 활동을 하는데 성도착증도 이런 과정(Love Mapping)의 행위라는 러브맵 이론(존 머니) 등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성도착증은 직업과 학력 등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가능성이 있다. 2010년 1월1일부터 2011년 8월까지 주요 언론에 보도된 노출증 관련 범죄 68건 피의자의 직업을 분석한 자료(노출증과 범죄. 신관우. 2012)를 보면, 고교생, 공무원, 대학생, 자영업, 택시 기사, 회사원, 무직 등 다양했고 특정 직업에 편중되지 않았다.

한편, 여러 성도착증 중에서 노출증은 여성에게 나타나는 비율이 높은 편이기도 하다. 스웨덴에서는 노출증을 가진 사람의 32%가 여성이었다는 보고도 있다.(니클라스 롱스트룀 연구. 2006) 즉, 바바리맨뿐 아니라 '바바리우먼'도 드물게 존재한다.

성도착 증세를 보이는 이들은 대체로 겉보기에 평범하고 온순한 성격이 많다는 게 이들을 접촉했던 사람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다양한 노출증 관련 범죄를 수사한 경험이 있는 일선 경찰서의 한 간부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잡아 보면 다들 온순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성기를 노출한 뒤 도망가버린다는 점에서 피해자에게 상해를 입히는 성폭행범에 비해 겁이 많은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경남 창원에서 20대 남성의 노출 범죄를 변호한 한 국선변호인도 "(피의자가) 온순하고 착했으며 내성적인 성격이었다"고 전했다.

이들은 또한 자기합리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 관련 학계의 판단이다. 성범죄자의 자기합리화에 관해 분석한 논문(조윤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2009)을 보면, 성범죄자들은 인지 왜곡 과정을 거치며 피해자들이 자신과 성관계하기를 원한다고 오해한다고 한다.

실제 바바리맨과 접촉해보니자신이 건장한 남성이라는 그는자전거 타고 공원에 있다가바지 내린 뒤 신속히 튄다고여자들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까지왜 성도착증에 빠지는 걸까거세공포·호르몬 이상분비설 등정확한 원인 밝혀지지 않았다성도착증과 성도착 장애 구분돼

차분하게 불쾌감을 표하는 것이 중요

조윤오 교수는 2007년 당시 성폭력 범죄로 형이 확정되어 보호관찰 처분을 받고 있거나 교도소에 수용되어 있는 남성 성범죄자 658명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는데, 이 중 성도착 증세를 갖고 있는 범죄자(81명, 12.3%)와 일반 성범죄자(534명, 81.2%) 두 집단 사이의 유의미한 차이를 발견했다.

성폭력 상황에 대해 '1)전혀 성폭력이 아니다 2)성폭력이 아닐 것이다 3)불확실하다 4)성폭력일 것이다 5)확실히 성폭력이다'의 선택지를 두고 체크하게 했는데, 그 결과 성도착증 집단(22.83점)이 일반 성범죄자 집단(24.85점)에 비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으로 성폭력 인지 점수가 낮게 나타났다.

또 성도착증 집단은 일반 성범죄자 집단에 비해 연령이 높고 정신·신체적으로 장애(우울증 등)를 갖고 있으며, 성폭력 범죄 전과가 일반 범죄자 집단에 비해 갑절 이상 높다고 논문은 지적했다. 다만 두 집단 사이에 왜 이런 차이가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한겨레>는 실제 성도착 증세를 갖고 있는 일반 남성과 접촉했다. 성도착증 관련 학계의 설명을 이 남성을 통해 파악해보려 했다. 일부 개인의 사례이겠지만 성도착증이 있는 사람에게 직접 듣는 설명이라 이들을 이해하는 데 참고할 만한 증언이라고 판단한다.

<한겨레>가 접촉한 이는 32살 남성 ㄱ씨였다. ㄱ씨는 스스로를 키 179㎝, 몸무게 78㎏의 건장한 남성이라고 소개했다. 모 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한 뒤 현재 개인 건축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스물다섯살 때부터 노출 행위를 즐겼고 현재까지 스무차례 이상 노출 범죄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노출 행위를 하는 이유에 대해 '스릴이 주는 쾌감'이라고 설명했다. "저는 여자친구가 있어요. 성관계할 사람이 없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모르는 여자에게 성기를 보여주는 게 더 흥분돼요. 색다른 짜릿함과 스릴이 너무 좋아요." 다만 그는 자신의 이런 취향을 여자친구에게 들키면 안 된다며 평생의 비밀로 간직할 계획이다.

ㄱ씨는 주로 공원에서 운동을 하다가 인적이 드문 곳에서 여성이 지나가면 갑자기 바지를 내리는 형식으로 노출을 한다고 했다. 지방에는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드물어 경찰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신속한 도주를 위해 자전거를 갖고 나간다.

"벤치에 앉아 있는 여자 주변에서 자위를 하다가 사정할 때쯤 여자 앞에 나타나 허벅지에 정액을 묻히고 달아난 적 있어요. 여자가 전혀 당황하지 않더군요. 오히려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은근히 이런 것을 좋아하는 여자들도 많아요."

ㄱ씨는 노출증을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피해 여성에게 성희롱을 한다는 인식은 하고 있었다. "법으로 금지돼 있는 것은 맞지만 병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김수창 지검장도 스스로 병이라고 생각 안 할 걸요. 그냥 처벌 감면받으려고 치료받겠다고 말한 걸 겁니다."

ㄱ씨는 남성성을 과시하고 싶은 듯 계속 자신의 몸 사진을 보여주었다. 객관적으로 평범한 체격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체격이 좋은 편이라고 주장했다. 전반적으로 예의바르고 차분한 태도였지만 성적으로 민감한 얘기를 할 때는 흥분하는 듯 보였다.

노출증 범죄자들은 그냥 자신의 성기를 노출하는 것에 쾌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상대가 놀라는 반응을 보며 더욱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경기도 일대에서 2009년 8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5차례 노출 범죄를 저지른 일명 '다람쥐 바바리맨'(48)을 붙잡은 한 경찰은 수사 내용을 이렇게 전했다.

"(피의자가) 산에서 산림욕을 하느라 옷을 다 벗었는데 어쩌다 여성들이 이것을 본 거예요. 여자들이 소리를 지르며 도망갔고 본인도 처음엔 놀라서 도망갔대요. 그런데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당시의 기분이 좋았다고 느낀 거예요. 다음에는 과감하게 노출을 했는데 여자들이 자지러지게 놀라 도망가고 그럴수록 더욱 흥분됐다고 합니다. 순간적으로 노출 충동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성도착증 연구의 권위자인 임명호 단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노출 범죄 가해자를 맞닥뜨렸을 때 놀라지 않고 차분하게 불쾌감을 표하는 것이 좋다. 놀라면 그들은 더욱 좋아한다. 불쾌감을 표하지 않으면 피해자가 바바리맨을 즐긴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경찰이나 지인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이 좋다고 임 교수는 권한다.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는 비율은 낮은 편이다. 임 교수가 최근 10~40대 일반인 44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를 보면, 노출 피해를 당한 69명 중 경찰에 신고한 경우는 7명(10.1%)뿐이었다. 다만 임 교수는 "피해자가 가족·친구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경우가 80% 이상이어서 지인들이 경찰에 신고하도록 조언해주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주초 학교 주변서 10~20대 여성 노려

노출증 범죄는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발생하는 편일까. 주초에 학교 주변 등에서 상대적으로 가해자에게 저항하기 힘든 10~20대 여성에게 주로 피해가 일어나는 것으로 판단된다.

2010년 1월1일부터 2011년 8월까지 주요 언론에 보도된 노출증 관련 범죄 68건을 분석한 '노출증과 범죄' 논문을 보면(신관우. 2012), 월·화·수요일과 같은 주초에 범죄의 47.06%가 발생했고 주말인 토·일요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11.76%에 그쳤다. 발생 장소는 학교 주변(30.88%), 거리(27.94%), 공원(7.35%), 버스승강장 (4.41%), 병원 주변(4.41%) 순이다. 가해자 연령은 20~5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83.83%에 이른다. 피해자 연령은 10~20대(76.47%)에 집중됐다.

연구 결과를 보면, 성도착증은 평생 지속되진 않지만 만성적이고 장기간 지속된다. 따라서 성도착증 범죄는 재범률이 높다. 질병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되면 치료를 잘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최근 법원은 이러한 노출증 범죄자에게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명령을 선고하는 추세다.

지난 7월 여중고생 등 앞에서 노상 자위행위 등을 한 죄로 징역형과 함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선고받은 ㄴ(27)씨의 경우 2012년 11월과 2013년 5월 동일한 범죄로 이미 벌금형을 선고받은 바 있었다. 그는 이전 판결 때 치료 명령 선고를 받지 않았고 이후 같은 범죄를 지속했다.

ㄴ씨의 변호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성도착증 범죄자들은 물론 처벌해야 한다. 다만 처벌이 질환을 치료하진 못한다. 적절한 치료가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임명호 교수는 "성도착증 환자들에게는 사회적 소통 기술을 강화하고 타인의 감정을 읽어내는 능력을 키우고 공격성을 조절하는 훈련 등의 치료가 행해진다"고 밝혔다. 일부는 약물치료 시술을 받기도 한다.

사법당국 일각에서는 성도착증 범죄자들이 치료감호소나 교도소에서 출소한 뒤에도 정신상담을 일정 기간 받을 수 있도록 '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 및 '치료감호법'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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