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뛰어내릴 거야" "뭐가 그리 억울하나요, 우리에게 얘기하세요"

김민정 기자 2014. 8. 2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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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오면 뛰어내릴 거야!"

27일 오후 서울 한남대교 난간 너머 좁은 공간에 조모(45)씨가 위태롭게 앉아 있었다. 오른손엔 식칼이 있었고, 왼손에 든 담배에서는 재가 떨어졌다. 경찰에게 소리치는 조씨 옆에는 주황색 핸드백과 500mL 생수병 2개, 정신과 약 봉지가 놓여 있었다.

속수무책으로 한 시간쯤 흐른 뒤 '위기협상(crisis negotiation)'이라 적힌 푸른 조끼를 입은 경찰관 세 명이 현장에 나타났다. 자살 시도자와 협상을 벌일 서울지방경찰청 김근준(41) 경감과 최대호(37)·이상경(31) 경사였다. 위기협상팀은 자살 시도, 가정 폭력, 인질 강도 등 다양한 위기 상황을 대화로 해결하는 팀이다. 지난 7월 서울지방경찰청에서 5명 정원으로 발대식을 가졌다.

이들은 이론 교육도 받고, 연극배우들과의 역할극을 통해 수차례 실전 연습도 한다. 보통 3명이 한 팀으로, 1명은 상황 유발자와 대화·협상을 하고 다른 1명은 여러 정보를 취합해 협상 방향을 지시한다. 나머지 1명은 정보를 수집하고 외부 보고를 담당한다.

현장에 도착한 이들은 조씨에게 슬슬 말을 걸었다.

"성추행을 당하셨다면서요. 정말 억울하시겠어요." "…."

"저 약 봉지는 뭐예요?" "정신과 약이에요."

"정신과 약요? 약이 정말 독할 텐데요." "내가 그런 일을 겪고 너무 수치스럽고 힘들어요."

긴 머리를 질끈 묶은 이 경사는 한남대교 난간에 붙어 한 시간 반 동안 말을 걸었고 맞장구를 쳤다. 이 경사와 얘기 나누던 조씨는 "내가 너무 억울하니까 이러는 거예요. 범인이 처벌도 안 받고 너무 힘들어요"라며 울음을 터트렸고, 결국 난간에서 내려왔다.

위기협상팀 김근준 팀장은 "우리도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두렵고 걱정됐던 적이 있다"며 "결국 문제 해결 방법은 얘기를 하게끔 끌어내고,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들어주는 것"이라 했다.

그는 "'어허, 그러지 마. 젊은 사람이 그러면 쓰나'와 같은 훈계는 금물"이라 했다.

협상팀이라고 해서 위험한 상황에 놓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난 6월 서울 용산구에서 한 남성이 아들과 말다툼 끝에 집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이겠다고 하는 상황에 최대호·이상경 경사가 투입됐다. 그 남성을 설득하지 못하면 함께 불길에 휩싸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최 경사는 "무엇이 그리 속상하냐고 물으니 '나는 아들을 위해 살았는데, (아들이) 내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넋두리하더라"면서 "두 시간 정도 얘기 끝에 상황이 진정됐고, 이후 아들을 데려다 무릎 꿇고 싹싹 빌게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사람 살리는 일'을 하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극단적 선택을 하려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이들은 미국 경찰 협상팀의 배지와 옷에 적힌 문구를 말했다. "위 리슨(We listen), 토크 투 미(talk to me)." "우리에게 얘기하세요. 우리가 듣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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