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들의 문화 귀촌 충남 홍성 길자네

2014. 8. 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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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지금 '마을 만들기'가 한창이다. 마을이라고 해서 흔히 떠올리듯 시골에 있는 '여러 집이 모여 사는 곳'이 아니다. 옆집 숟가락 개수까지 훤히 아는 불편함이 아니라 사생활은 존중하되 서로의 필요한 것을 나누는 공간으로서의 공동체다. 개인과 가족, 친구, 온라인이란 작은 세상에서 나와 이웃과 더불어 사는 안전하고 즐거운 삶. 살기 좋은 마을을 위해 다양한 실험을 하며, 행복을 만들어가는 이들을 만났다.

길자는 농촌 총각이다. 서울에서 시골로 귀촌하여 건강한 인생을 누릴 수 있는 지금 홍성의 작은 마을에서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맛보며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귀농 투어 갔다 홍성에 눌러앉다

귀농이 아니라 귀촌을 위해 삶의 방식을 실천하며 지역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 젊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 '길자네'로 더 유명한 길익균 씨도 그중에 한 명이다. 귀촌 인생이 궁금해 달려온 우리를 반갑게 맞는 그는 이미 홍성에서 꽤 유명한 귀촌인이었다. "언젠가는 시골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귀촌은 갑작스럽게 이뤄졌어요. 아버지께서 폐암 선고를 받으신 뒤 시골행을 원하셨는데, 짧은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셨죠. 그 뒤로 다른 가족은 서울에 남고 혼자 귀촌을 감행하게 됐어요."어디에 정착하면 좋을까 싶어 상주, 영월, 장흥 등 열심히 돌아다니던 길익균 씨. 그러다 홍성에서 진행된 귀농 투어에 참여하게 되었고, 마침 사회적 기업에서 귀농 생활 체험을 기획하고 운영하며 홍보하는 일을 제안받았다.

"농사를 짓고 싶었지만 자급자족을 위한 수단일 뿐 돈을 벌 목적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안정된 귀촌을 위해선 일자리가 필요했는데, 농사가 아닌 일로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제안을 받은 셈이죠." 길익균 씨는 그렇게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명 없는 충남 홍성에 자리 잡게 되었다. 2011년 10월에 귀촌한 그는 그 후 2년 동안 구항면 거북이마을에서 총무를 시작으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길자네 등의 블로거 기자로 활동하며 귀촌 생활을 이어왔다.

1_ 농부들의 노고가 제대로 인정받았으면 하는 마음에 페이스북으로 판매를 위한 직거래 네트워크를 마련했다. 수확 현장에 가서 생생한 사진을 찍는 것도 그의 몫.

2_ 우리네 고가구인 반닫이부터 앰프, 카메라, 스탠드 등이 공간 속에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3_ 그들의 결혼식 청첩장. "언제나 봄날처럼 살겠습니다."라는 문구에서 그들의 원하는 삶이 그대로 보인다.

4_ 동네 어르신이 소개해서 안착하게 된 60년 이상 된 주택. 한옥을 개량한 농가 주택으로 커다란 호두나무 덕분에 '호두나무집'이라 부른다. 탱자 씨는 초록색 지붕이 '빨간머리 앤'에 나오는 지붕같아 무척 마음에 들었단다.

5_ 귀촌으로 시골살이를 시작한 부부. 활짝 웃는 얼굴이 서로를 닮아 있다.

▲홍성으로 귀촌, 귀향한 이들이 만든 문화 귀촌 청년단체 '때깔'. 그들은 '마라의 샘' 카페를 아지트 삼아 모여 재능 나눔을 통해 함께할 일들을 찾는다.

혼자가 아닌 함께 이어가는 문화 귀촌

여기서 아내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별명은 탱자. 이름은 정순영 씨다.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도시 생활에 지쳐 귀촌을 알아보던 차에 귀농에 관심 있는 청춘남녀 모임인 청춘귀농버스에 타게 되었다. 회원들과 거북이마을을 방문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전북 익산으로 귀촌한 탱자 씨는 길익균 씨와 계속 인연을 이어오다 결혼해 홍성에 안착했다. 결혼 후 지역 민간단체인 '내포문화숲길'에서 같이 일을 하기도 했다. "농촌에는 문화, 교육, 복지 같은 분야에 해볼 만한 일들이 제법 있어요. 농사가 전부는 아니죠. 농촌과 도시를 연결해줄 사람이 턱없이 부족하거든요. 이웃의 농산물을 페이스북으로 홍보해 제값 받고 팔 수 있도록 하고, 아이들의 문화적 호기심을 채워줄 일들을 꾸준히 펼치는 것들 모두 농촌에 기여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이런 것을 '문화 귀촌'이라고 하더군요." 길자네는 부부가 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마음 맞는 이들과 의기투합해, 재능기부를 통한 홍성 문화귀촌 청년단체인 '때깔'도 운영한다. 이 모임에는 귀촌한 길자네 부부 외에 서울에서 생활하다 귀향한 젊은이들도 있다. 마을을 위해 그들은 서로의 재능 나눔 활동으로 지역의 문화적 가치를 만들고 있었다. "평소 공동체에 관심이 많았어요. 하지만 귀촌하면서 어떤 조직에 소속되는 것만이 아닌 스스로 그런 공동체를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끼리 마을에 벽화를 그리고, 마을 회관을 청소하는 것부터가 시작이죠. 정책, 제도처럼 심각하기보다 그저 재미있게 노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서울에서는 자본에 의해 움직여야 했고, 하는 일이 그리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는 길자 씨. 그러나 "여기서는 영향력이 확실히 있다"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그 옆의 탱자 씨 역시 "서울에서 쏟던 에너지를 이곳에서 긍정적으로 쓸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이곳에서 생활이 만족스러워요"라고 거들며 웃는다. 그들은 단순히 자연주의의 흐름에 기대어 귀촌을 꿈꾼 것이 아니다. 지속 가능한 삶의 실천, 스스로 수급하는 소박한 귀촌을 이뤄가고 있다.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재능 나눔

1_'때깔'의 두 번째 재능 나눔이 진행된 홍성 다문화도서관. 도시 아이들과는 달리 작은 것에도 호기심을 드러내며 기뻐할 줄 안다고.

2_ 해외의 어려운 아이들에게도 후원하는 '컴패션 하우스'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한다.

3_ 지역민과 귀농인 그리고 귀촌인들이 함께하는 마을의 큰 장터인 홍동은 친환경 오리 농법으로 경작한 농산물 판매처로 유명하다. 단순한 농사를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사례다. '때깔'은 이곳에서도 재능 기부를 통해 이웃과 나눌 수 있는 일을 찾는다.

*나누고 소통하고 함께하는 살고 싶은 마을공동체

제법 좋은 성적표로 합격점을 받은, 대한민국에 숨 쉬고 있는 다채로운 우리 마을 이야기.

대한민국 마을 공동체의 본보기 성미산마을

마을 공동체의 대명사인 성미산마을은 공동육아와 공동교육, 공동생활을 통해 이웃과 함께 사는 삶을 지향한다. 벌써 20년 전인 1994년 최초의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설립했고, 자연스럽게 12년제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로 뜻을 이어가며 육아와 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더불어 다양한 강의와 전시, 공연 등 볼거리, 즐길거리가 풍성한 '성미산마을극장'도 명물이고, 개인의 사생활을 지키면서 공동생활의 장점을 접목한 코하우징 주택 '소행주'로도 주목받고 있다. 또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걷은 출자금으로 문을 연 '성미산밥상'과 역시 주민들과 함께 만든 수익을 내지 않는 카페 '작은나무', 믿고 먹을 수 있는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을 파는 마을 슈퍼마켓인 '두레생협' 등 건강하게 잘 살기 위한 움직임도 계속되고 있다.

더불어 삶을 실천하는 마을 삼각산 재미난마을

서울시 강북구 인수동, 정확하게는 4·19 국립묘지를 중심으로 우이동과 수유동을 아우르는 삼각산 재미난마을은 1998년 형성된 공동육아 협동조합인 '꿈꾸는 어린이집'이 시발점이 되었다. 이후 어린이집의 아이들이 더 커서도 다닐 수 있는 대안 초등학교를 세웠고, 이렇게 시작된 재미난학교가 마을의 형태로까지 확대되면서 지금의 재미난마을이 완성된 것이다. 현재 재미난학교 학부모 모임에서 만나 인연 맺은 '재미난 밴드'와 마을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재미난 카페'가 운영되고 있고, '마을 극단 우이동'을 통해 마을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 연기를 펼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열 명의 부모들이 뜻을 모아 만든 작은 도서관 '함께놀자', 가구를 만들고 싶은 어른들과 아이들을 위한 목공 교실이 열리는 '마을목공소' 등등 마을 곳곳에서는 끊임없이 크고 작은 일들이 생겨나고 있다.

시골마을의 자력갱생 프로젝트 비비정마을

희망제작소의 도시 브랜드 기획자가 주도하고 주민들이 동참하며 낙후된 시골의 문제를 해결하고 성공한 공동체 마을이다. 무엇보다 자력으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길러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모델을 찾았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특히 마을 할머니들이 함께 완주에서 나고 자란 친환경 로컬 푸드로 건강하게 요리한 시골밥상이 한 상 가득 차려지는 농가 레스토랑 '비비정'과 만경강이 끼고 도는 비비정마을의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커뮤니티 카페 '비비낙안', 마을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가양주를 직접 담그는 작은 양조장은 이미 지역의 명소로 주말이면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또 마을 청년회가 주도해 함께 키우는 공동체 자두밭 등 이제는 마을 스스로 공동체적인 삶을 고민하고 이끌어가는 중이다.

철공소가 예술촌이 된 사연 문래예술촌

철강 공장과 철제상이 밀집해 있던 문래동의 심각한 대기오염 상태를 완화하기 위해 서울시는 철강 판매상가들을 이전시키려 했다. 이후 주인을 잃은 빈 점포들로 젊은 예술가들이 찾아들면서 자연스럽게 문래예술촌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현재 200여 명의 예술가들이 삼삼오오 모여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헬로우문래협동조합의 아트마켓이 열리는 아트페스티벌, 문래예술촌 골목과 대안공간을 투어할 수 있는 헬로우투어, 아티스트와 대중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커뮤니티 파티 등을 통해 문래예술촌의 작가들은 대중과 연결되고 있다. 또한 서울시에서는 옛 철재상가 자리에 전문 창작공간인 '문래예술공장'을 세우고 문래예술촌의 작가들을 지원하며, 예술 특구 문래동의 콘텐츠를 더욱 탄탄하게 구축하고 있다.

젊은 감각으로 재래시장을 다시 쓰다 전주 남부시장 레알 뉴타운

2011년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프로젝트 '문전성시' 대상지로 남부시장이 선정되고, 정부와 사회적 기업 이음, 그리고 시장 번영회가 함께 논의한 끝에 장사를 해보고픈 젊은이들에게 2층 점포를 내주자고 한 것이 레알 뉴타운의 출발점이었다. '순자씨 밥줘' '범이네 식충이' '만지면 사야 합니다' '우주계란' 등 위트 있는 문구와 간판뿐만 아니라 기존에 전통시장에는 없던 칵테일바, 보드게임방 등 청년들이 쏟아내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젊은 사람들과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는 데 성공했다. 매월 첫째, 셋째 토요일 저녁이면 열리는 야시장 등 다양한 문화체험 프로그램도 인기 만점. 시장 상인들이 창고로 쓰던 후미진 공간이 이제 전주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되면서 1층의 기존 재래시장의 매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매주 화요일 2층 젊은이들은 반상회를 통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홍보 전략도 짜고 다양한 현안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을 나누며 더욱더 탄탄한 공동체로 진화하고 있다.

스스로 자생하는 예술을 꽃피우다 서학동 예술마을

마을 안에 전주교대와 전주교대부설 초등학교가 있어 교사와 학생들이 많이 살았던 덕에 '선생촌'이라 불리던 마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신시가지에 밀려난 한적한 구도심에 불과한데, 예술인들이 찾아들면서 서학동이란 마을에 예술촌이라는 새로운 또 다른 마을이 파생되기 시작했다. 예술창작촌장이자 음악 하는 이형로 씨와 소설가 김저운 씨 부부가 한옥을 고쳐 '벼리채'라는 문패를 달고 연주와 창작 공간을 만든 것을 시작으로, 30여 명의 예술가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함께 살아가고 있다. 예술가들의 아틀리에와 함께 인문학 서점과 카페, 그리고 갤러리들까지 옹기종기 모여들어 운치도 제법이다. 현재 '2014 생활문화공동체사업'에 선정되어 앞으로의 진화가 더 기대된다.

진행 김일아, 김지영 기자, 전수희(프리랜서) | 사진 정민우, 양우상 | 참고 도서 < 마을의 귀환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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