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다방으로 오세요] "취직했니.. 시집가야지.. "추석 때 친척 입방아, 어미 가슴까지 후비네요

입력 2014. 8. 28. 04:03 수정 2014. 8. 28.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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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직했느냐는 질문에, 시집가라는 어른들 성화에 명절이 두려워진다는 젊은이들.

한편 그게 다 애정이고 관심인 줄을 모르겠느냐며 혀를 차는 집안 어른들. 그 사이에서 남몰래 속을 끓이던 손님 한 분이 별별다방을 찾아주셨네요. 코 흘리며 개구지게 뛰노는 조카들을 바라보던 명절의 흐뭇함이 그리워진다는 오늘의 손님에게 여러분의 마음을 얹어주세요.

홍 여사 드림

저는 서울에 거주하는 60대 초반 여성입니다. 아들 딸 남매를 두고 있는데 그 아이들은 현재 모두 집을 떠나 생활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4남매의 장남입니다. 시동생 하나, 시누이 둘이 서울 시내, 멀지 않은 곳에 살고들 있지요. 우리와 마찬가지로 각각 남매를 두고 있는데, 그 아이들도 모두 30대에 접어들었네요. 쏜살같은 세월을 절감하는 때가 바로 아이들 나이를 손꼽아 볼 때입니다. 코 훌쩍이며 개구지게 뛰어놀던 아이들이 어느새 서른 살, 그중에서도 제일 맏이인 우리 아들은 벌써 서른 중반 고개를 넘었으니….

뿌듯한 마음이 현실적인 고민으로 바뀌는 게 바로 그 대목에서입니다. 삼십대 중반인 아들이 아직 제대로 자리를 못 잡고 있습니다. 공부한다고 십년 가까운 세월 낭비하다가 뒤늦게 선배가 경영하는 중소기업으로 들어갔는데, 그마저 부도가 나고 말았다네요. 그 회사 다닌다고 지방에 방까지 얻어서 갔는데 말입니다.

당연히 결혼도 아직 못했습니다. 이십대에는 그래도 끊이지 않고 연애도 하고 소개도 받는 듯하더니, 최근에는 그런 기미도 전혀 안 보입니다. 자존심을 굽히고 저라도 주위에 아가씨를 물색해보지만, 직장이 번듯하지 않으니 말 꺼내기도 힘이 듭니다.

딸아이 상황도 속상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은 확실한데, 서른네 살 미혼입니다. 요즘 세상에 서른넷은 많은 나이도 아니라고들 하지만, 엄마 마음에는 하루하루가 속이 탑니다. 화려한 싱글로 즐기고 다니는 거라면, 까짓것 시집 안 가도 그만이라고 배짱을 부릴 수나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 딸아이는 그저 회사와 집만 시계추처럼 오갑니다. 젊은 애가 사는 게 지루해 보이고 자꾸 뒤처지는 느낌이 드네요. 사실, 요즘 평균적인 아가씨들에 비해 체격이 큽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우울하니까 더 안 움직이고 먹어서 푸는 거 같고, 그래서 더 살이 찌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의 잔소리가 늘 수밖에 없었지요. 딸아이 말이, 운동하라는 잔소리는 견디겠는데, 집에 있지 말고 나가라, 누구든 만나라 하는 소리가 참 힘들었다네요. 결국엔 집을 떠났습니다. 회사 근처에서 마음 맞는 선배 언니와 함께 지내겠다고요. 아이들이 떠나고 우리 부부만 남은 집. 텅 빈 느낌이네요.

이제 곧 추석 명절입니다. 시동생 내외가 명절 쇠러 오고, 시누이 내외도 다녀갑니다. 조카들도 돌아가며 인사를 오고요. 오랜만에 집이 북적댈 텐데, 제 마음은 연중 그 어느 때보다도 씁쓸합니다. 손님으로 북적이는 집에 우리 애들은 발을 못 붙이게 생겼으니 말입니다. 이번 추석 명절에는 집에 못 오겠다고 하더군요. 뭐라고 핑계는 만들어 붙입디다만, 그건 그야말로 핑계에 불과하다는 걸 모를 식구는 없습니다. 괜히 왔다가 어른들한테 이런저런 곤란한 질문이나 듣게 되는 것도 싫고, 목 빼고 앉아 있는 모습 엄마 아버지한테 보이기도 면목없겠지요. 게다가 승승장구 잘나가는 사촌들하고 자연히 비교가 될 테니 더욱 내키지가 않는 겁니다.

동서네 두 아이는 요 몇 년 사이에 결혼했고, 더구나 큰 녀석은 아들까지 낳아, 이번에 안고 올 모양입니다. 시누이 아이들은 아직 싱글이지만 어려서부터 특출나더니 지금은 비교도 안 될 만큼 잘 되어 있습니다. 워낙에 자기 자랑이 심한 시누이가 또 얼마나 자식 자랑을 늘어놓을지 안 봐도 뻔합니다. 조카도 반 자식이라 잘 되기를 바라지만, 내 자식 마음에 흠집이 가는 상황은 저도 반갑지가 않네요.

하기야 잘나가는 조카들이 무슨 죄인가요. 어른들 앞에 당당히 나타나지도 못하는 못난 내 자식들이 문제이고, 자식농사 그렇게밖에 못 지은 나 자신을 탓해야겠지요.

그러나 아이들 심정이 이해가 전혀 안 가는 것도 아닙니다. 작년에 시동생, 동서, 시누이가 조금만 아이들 입장을 배려해줬어도 올해 같은 상황은 없었을 겁니다.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가주기만 했어도 좋았을 것을, 니 나이가 벌써 마흔 바라본다. 직장이 안 잡히면 장가라도 먼저 가고 봐라. 직장 없다고 왜 결혼을 못 해, 그러게 왜 허송세월을 해. 넌 운동 좀 해야겠다. 요새는 얼굴보다 몸매고 몸매보다 나이란다. 여자는 시집만 잘 가도 막판 역전승이다. 그나저나 누굴 닮아 살이 찔까?

민망하고 곤란한 질문들, 어떻게 보면 모질기까지 한 말들에 제가 다 속이 상했습니다. 그냥 웃으며 들어넘기는 우리 애들이 용해 보일 정도였지요. 올해는 명절에 못 오겠다는 아들 딸 말에 제가 야단을 못 치는 이유입니다.

못난 내 새끼들 객지에서 찬밥 먹게 두고 시동생, 시누이에 잘난 조카들 상 차려낼 생각을 하니 속이 부대끼네요. 올해 마음먹고 한번 당부를 해볼까도 합니다. 자식 자랑은 딴 데 가서 하고, 못난 우리 애들 기분도 좀 생각해서 말들 하라고요. 그런 말 하면 제가 또 한 번 못난 짓 하는 셈인가요?

지난주 홍 여사 답변은 별별다방 커뮤니티 (troom.premiu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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