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7인의 브래지어 탈의女 "입든 말든 내 몸이니 신경 꺼"

글·사진·영상 이윤정 기자 2014. 8. 27.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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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깟 찌찌가리개, 잘라버립시다." 브래지어 후크가 서로 맞물려 긴 끈이 완성됐다. '노(No) 브라' 여성들이 가위를 치켜든다. 브래지어는 처참하게 난도질당한다. 일명 브래지어 커팅식이다. 여성들은 외친다. "누굴 위한 브라인가. 하지 말고 당당하자."

26일 오후 7시 서울 홍익대 인근에서 '브라 노(NO)브라' 시위가 열렸다. 페이스북 페이지 '이것또시위' 회원 7명은 브래지어를 벗고 홍대 어린이공원부터 홍대입구역 입구까지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브라'는 하지 않았지만 상의는 입었다. 대신 가슴에 '가리개용 스티커'를 붙였다. 이들은 '누굴 위한 찌찌가리개인가' '브라 없이 살아보자' 등의 팻말을 손에 들었다.

'이것또시위' 회원이 시위 도중 브래지어를 자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가두시위 내내 노브라 여성들은 발칙한 노래를 불렀다. 동요를 개사해 브래지어가 필요하지 않다는 내용을 알리는 노래였다. '아빠의 크레파스'를 개사한 가사도 마찬가지였다. "어젯밤에 우리엄마가 다급해진 표정으로. 한손에는 브래지어를 사가지고 오셨어요. 음음. 하라니깐 하긴 했는데 내 몸에는 맞지 않아서 손 들 때마다 올라가고 어깨끈은 자꾸 내려와 음음. 이놈의 브래지어 누굴 위한 찌찌가리개인가. 입었네 안입었네. 수군대는 그 입 다물라. 음음."

작은 목소리로 부르기 시작한 노랫소리는 시위가 진행되면서 점차 커졌다. 시위에 참가한 망지(활동명·26)는 "브래지어 입으면 불편하기만 한데, 안하고 다니면 주위에서 이상하게 본다"며 "혼자 이런 주장을 한다면 창피하겠지만 다같이 거리에 나오니까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공지만 보고 무작정 시위 장소로 왔다는 그링(활동명·23)은 "지난 2년간 브래지어를 아예 안하고 다녔다"며 "불편해서 안하는 것에 대해 사회적으로 이상하게 보는 시선 자체가 이상하다"고 말한다. 그녀는 "이런 시위는 처음 참여해본다"며 "생각보다 유쾌하고 재미있다"는 소감을 밝혔다.

영상 취재 편집: 이윤정 기자

시위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그녀들이 브라를 했느냐 안했느냐'에 맞춰져 있었다. 한무리의 남성들은 "진짜 (브라) 안했어? 했는데?"라며 시위 여성들의 몸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 중 일부는 "미친 거 아니야?"라고 야유하기도 했다.

노브라 시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었다. 노래에 맞춰 박수를 치는 남성도 간혹 보였다. 전희민씨(남·20)는 "참신한 시위"라며 "욕하는 사람도 봤는데 오히려 나는 시위하는 여성들이 당당하고 멋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브래지어, 패션·건강·예의…어찌됐든 내 몸"

'이것또시위' 회원들이 홍대 인근에서 '브라 노(No)브라' 시위를 하고 있다.

'이것또시위' 페이스북 페이지 관리자인 주해은씨(31)는 여성민우회 활동가다. 주씨는 이번 시위에 대해 " 브래지어를 하지 말자는 주장이 아니라 브래지어를 하든 말든 (그것은)여성의 자유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노브라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이 브래지어에 반대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건강에 안 좋다' '답답하다' '덥다' '몸에 맞지 않는다' '굳이 브래지어를 할 이유를 못 찾겠다' 등이다. 하지만 이 여성들의 공통된 의견은 "브래지어를 안 입은 여성의 가슴을 '성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편견에 맞서고 싶다"는 것이다.

'브라노브라' 시위 포스터

현대적인 브래지어의 역사는 100여년에 불과하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여성들은 천이나 가죽 밴드로 가슴을 고정하는 '아포대즘'을 착용했다. 중세시대 사라졌던 관습은 르네상스 시대 '코르셋'으로 부활했다. 1913년 뉴욕 사교계의 메리 펠프스 제이콥스가 실크 드레스 속에 입을 속옷을 개발한 것이 '브래지어'의 시초로 알려졌다. 속옷, 갑옷 등의 의미를 지닌 프랑스어에서 유래된 '브래지어'는 코르셋을 밀어냈다. 우리나라엔 개화기에 처음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에 들어 브래지어에 대해 '여성 억압'의 상징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2009년 12월 미국에서는 유방암의 결정적 원인이 브래지어 착용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브래지어를 24시간 착용한 여성의 유방암 발병률이 전혀 착용하지 않는 여성보다 125배나 높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여성들은 무려 98%가 브래지어를 착용하며 66~80%는 24시간 착용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건강에 안 좋다는 연구에도 불구하고 '브래지어'를 벗어버릴 수 있는 여성은 많지 않다. 속옷을 입지 않고 옷을 입으면 가슴 윤곽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여성의 가슴에 대해 '성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지 않으면 '노브라'의 확산은 쉽지 않다는 게 시위 여성들의 주장이다. '이것또시위' 회원들은 "브래지어를 하든 안하든 내 몸이니 신경 좀 꺼달라"고 말한다.

사소한 것들의 시위, 여성의 몸을 말하다

페이스북 페이지 '이것또시위'는 "사소한 것들에 대해 시위하겠다"는 독특한 구호를 내걸었다. 지난 7월초 첫 오프라인 시위로 '겨털(겨드랑이털) 시위'를 열었다. 유독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제모'에 반대하기 위해 '겨드랑이 털로 붓글씨를 써보자'는 야심찬 포부를 드러냈다. 결국 10여명의 여성들은 이날 고이 기른 겨털을 광화문 광장 앞에서 휘날렸다. 현재 페이스북에서 '이것또시위'에 공감하는 사람은 700명 이상이다.

'이것또시위' 페이스북 페이지

'이것또시위'는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여성의 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자고 주장한다.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심리상담가로 유명세를 탔던 수지 오바크는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는 사람의 몸을 조작·전시의 대상으로 재현한다"며 "우리는 누구나 의지만 있다면 아름다운 외모를 지닐 수 있다는 '외모 민주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여성들이 있는 그대로 '몸'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는 '외모 관리' 때문이라고 말한다. 로라 멀비는 자신의 책 '페미니즘/여성/영화'에서 "남성을 시선의 주체로, 여성을 시선의 타자로 위치시키는 이분법은 여성을 남성의 시선, 즉 성적 욕망 ·감시·판단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고 주장한다.

현대 여성들은 자신도 '욕망을 가진 주체'이며 '자신이 몸의 주인'임을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여성 운동의 흐름도 '성'을 강조하는 소비문화와 맞물리면서 여성 외모의 기준을 '섹시함'으로 몰아가는 사회 분위기 속에 묻히고 있다. 브래지어를 안 하고 다니는 것을 개인의 자유가 아닌, '성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여성의 가슴을 다루는 시위는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페맨(FEMEN)'은 상의 탈의로 사회적 이슈를 다룬다. 실제 국내에서는 지난달 21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페맨 한국지부 대표 송아영씨(24)가 1인 토플리스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것또시위' 회원들이 '노브라' 시위를 연 26일은 여성 인권의 날이다. 이들은 앞으로도 '겨털시위대'와 '노브라운동'처럼 여성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전할 계획이다. 현대사회 왜곡된 여성성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홍대 인근' 브라노브라' 가두 시위 현장.

< 글·사진·영상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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