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치유냐 우경화냐 세월호 특별법에 달렸다

박송이 기자 2014. 8. 23.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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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과 유가족이 싸우고 있는 형국…

수사권 없는 조사로 진상규명 못하면 '치유'는커녕 일본처럼 극우 사회로 갈 위험성

"진상규명 운동이 우울증적 주체인 유가족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국가폭력에 의한 죽음들에 대해 애도하지 않는 사회임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먹고 살기에 바쁜 생활인이었던 유가족들이 스스로를 민주화운동의 투사로 변신시키면서까지 의문사의 진상규명을 우리 사회에 호소했던 것은 자신들이 조직적으로 저항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자식 잃은 부모의 고통에 대해 귀 기울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가폭력에 의한 죽음은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의문사가 집중적으로 발생했던 1980년대 당시는 물론이고 현재까지도 유가족들이 나서지 않으면 누구도 이 문제를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풍토는 우리 사회가 국가폭력에 의한 죽음들에 대해 아파하거나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사회라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정원옥, < 국가폭력에 의한 의문사 사건과 애도의 정치 >

의문사 유가족 진상규명운동과 닮아

2000년대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의문사 진상규명 운동은 진실을 밝히는 데 결국 실패했다. 의문사 피해자 유가족들은 1998~1999년 422일 동안 여의도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전개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유가족들의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을 받아들였다. 당시 국가가 의문사특별법을 수용한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결국 실패했다. 논문 저자인 정원옥 박사는 논문에서 "많은 의문사의 진실이 밝혀지지 못했으며, '진실규명'으로 인정을 받은 사건에서도 책임자와 가해자가 특정된 사건은 단 한 건도 없다. 현재의 권력기관에 의해 의문사의 진실이 은폐·조작되고 있는 상황에서 조사 권한뿐인 국가기구가 책임자와 가해자, 목격자와 제보자로 하여금 양심선언을 하도록 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2009년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기구의 조사 의지가 없다는 데 분노한 유가족들이 사건의 진정을 집단적으로 철회했다.

수사권 없는 조사권만으로는 진실규명에 다가서지 못한 의문사 진상규명 운동의 사례는 세월호 특별법이 진상조사위원회 내에 수사권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진상규명 운동과 의문사 유가족들의 진상규명 운동은 닮아 있다. 세월호 유가족 또한 진상규명 운동의 출발이자 중심이다. 더욱이 여야가 유가족들이 동의하지 않는 세월호 특별법에 합의하면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야당의 약한 연결고리마저 끊어졌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관계자는 현재의 상황을 "정치권과 유가족이 싸우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가족들의 고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권영국 변호사는 "사실 시민들이 일어나야 이후의 변화를 기약할 수 있는데 이건 야당이 벌써 두 번의 합의과정을 거쳐버리니까 사람들이 내용을 불문하고 이제 좀 수용하면 어떠냐 이런 분위기가 생기는 게 사실이다. 힘이나 집중도가 떨어지고 있어서 답답하다"고 말했다. 정원옥 박사는 의문사진상규명회 당시의 이야기를 전하며 "그때도 유가족들이 고립되고 소외되었는데 지금도 그럴 위험성이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권이 유족하고 싸우는 모양새가 된 현재의 상황은 역설적으로 유가족들이 주장하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는 특별법이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 경기동부 > 의 저자 임미리씨는 정치가 바뀌기 위해서라도 국민청원입법인 수사권·기소권이 있는 특별법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진상규명이 이루어진다면 가장 먼저 바뀔 것은 한국 정치다. 특별법에 대한 여야 합의로 한국 정치의 지형이 바뀌었다. 1980년 5·18 이후 한국 정치의 전선은 여당과 야당의 적대적 전선이었다. 그러나 이번 여야 특별법 합의로 35년간 여야 사이에 그어졌던 전선이 이제는 여야가 아니라 정치권과 유족, 기득권자와 비기득권자 사이로 이동하고 있다."

8월 12일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이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의 세월호특별법 합의안에 반발해 '유가족에 감언이설한 박영선 나와서 해명하라!'라고 적힌 문구를 국회 본청 앞 새정치연합 원내대표 주차공간에 붙여 놓고 있다./ 정지윤 기자

수사권 없으면 진상 묻히고 처벌 실패

유가족들은 여야 합의의 특별법은 진상을 규명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여야 특별법 재합의가 이루어지고 난 후 총회 투표에서 유가족들은 압도적으로 수사권·기소권이 있는 특별법을 원하고 있었다.

유가족들이 제시한 특별법상 진상규명위원회의 제1소위는 진실규명소위다. 특별법 제24조는 제1소위원회의 지위와 권한을 기소권을 중심으로 지정해 놓고 기소 대상 범위를 해양경찰청, 해양수산부, 안전행정부, 해군, 소방방재청, 전라남도 도청, 진도군청, 경기도교육청, 국가정보원, 국무총리실, 청와대, 범정부사고대책본부, 기타 관련 기관 및 단체 등으로 지정해 놓았다. 물론 지난 국정조사 때도 청와대와 해양수산부, 안전행정부를 비롯해 22개 기관이 국정조사 기관보고 대상이었다. 하지만 국정조사에서는 아무런 진상도 밝혀지지 않았다. 권영국 변호사는 당시 청와대에 100건이 넘는 자료를 요구했지만, 답변이 돌아온 것은 10개 남짓이었고 그나마 형식적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진상조사위원회가 수사권을 가지고 있으면 이론적으로는 박근혜 대통령도 부를 수 있다. 대통령은 소추를 피할 뿐, 조사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기춘 비서실장이나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실장 등을 강제로 구인하고 자료를 요구할 수도 있다. 청와대가 세월호 침몰 초기 상황과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대통령 비서실과 국가안보실이 대통령을 보좌하는 임무에 충실하지 않았음은 기관보고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 드러났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청와대 내에서 그 어떤 인사도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대국민 담화를 통해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하였던 박근혜 대통령 또한 마찬가지다.

권영국 변호사는 "우리가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을 거치면서도 알 수 있지 않았나. 책임자급은 책임을 지지 않고 전부 실무담당자급에서 꼬리 자르기가 이루어진다. 검찰 수사도 보면 실제 수사대상은 해경 말단들이었다"고 말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도 사실상 국정원장에게 책임이 있던 것이었는데 실제로 과장급 선에서 책임지는 것으로 끝나버렸다. 사실 상부 지시에 따라 뛰어다니는 사람들만 조사하는 우스운 꼴이다. 제대로 책임자를 법정에 세우려면 독립된 수사권과 기소권이 주어져야 한다."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이 있다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파고들 수 있다. 진상조사위원회의 제2소위는 안전사회소위다. 제1소위가 진상을 규명하면서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파고든다면, 안전한 사회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또한 바뀔 수 있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진도VTS 직원들이 자신들이 소홀함은 있었을지언정 형사불법은 아니라고 말했다. 특검은 이에 대해 다룰 수 없지만, 진상규명위원회는 이런 '소홀함'에 대해서도 다룰 수 있다. 법적 책임은 못 묻지만, 지휘체계나 윤리적 문제 이런 것들을 밝혀낼 수 있다는 말이다. 규제완화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진상조사위원회가 수사권을 갖고 2년 동안 활동하게 됐을 때 진상규명 외에도 규제완화의 위험성 등에 대해서도 사회적으로 '인식전환'이나 '개념전환'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안전사회에 대한 인식전환 또한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는 진상조사위원회를 통해 진상규명이 이루어졌을 때 가능해진다.

제3소위는 치유기억소위다. 치유기억소위에서는 기념일 제정 등 기념사업 등을 주요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진정한 치유 또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졌을 때 가능하다. 의문사 진상규명에 실패한 이후, 유가족협회장인 배은심씨가 토로하는 '부끄러움'은 진상규명 없이는 유가족은 물론 사회적인 치유 또한 제대로 되지 않음을 방증한다. 정원옥 박사의 앞선 논문에는 배은심씨의 구술이 나온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40일간 단식농성을 한 김영오씨가 병원으로 후송된 2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일반시민들이 동조단식을 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더 나은 법, 국민 생명권 지키는 일

"후회하지요. 어찌 에미가 돼 갖고 후회를 안 하겄는가? 에미가 지금 뭐 내 새끼 한 명만 보고 산 것이 아닌디. 이 많은 사람들의(민주화운동 희생자) 사진을 걸어놓고 요렇게 쳐다보고. 전부 다 내한테로 눈, 눈, 눈들이 집중을 하고 있다고, 지금. 원래 사진은 이리 가면 이리 쳐다보고 저리 가면 저리 쳐다본 게 사진의 눈이란 말일세. 내가 이야기하니까 요리 싹 집중하고 있어, 눈이. 눈이 그래. 아이고, 어떤 사람이 또 날 쳐다본다고. 다 보고 있잖아?… 의문사 아버지들, 우리들보다 더 운동을 했으면 했지, 더 환장병을, 더 환장을 하고 운동을 했어. 이름도 성도 없는, 묘지도 뭣도 없는 이런 속에서 막 운동을 했으니까. 그릉게 그것이 안타까워요."

사회적인 치유는 특별법 법조문에 나와 있듯 "4·16 참사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고, 재난에 대처하는 경각심을 고양하는 기억 사업", "4월 16일을 재난 방지의 날로 지정·추진하는 일" "4·16 기억관 건립 및 운영"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선행해야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번에도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실패한다면 한국 사회는 어떤 경로를 향해 갈까. 권영국 변호사는 일본처럼 한국 사회도 우경화될 것을 우려했다. "우리는 과거 청산에서 계속 실패해 왔다. 일본이 극우로 돌아가고 있는 이유도 일본이 과거에 대한 반성과 청산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일과 대비되는 점이다. 독일은 철저하게 지금까지 전범을 처벌했지만 일본은 그들을 옹호하고 있다. 말단이 아니라 실제로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제대로 처벌을 하지 않으면 일본처럼 우경화의 길을 갈 수도 있다. 우리 사회가 어쩔 수 없이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잘사는 사회라는 인식에서 전환되어야 일반 국민들의 생각도 달라지고 정의가 살아난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정원옥 박사는 논문 말미에 다음과 같이 썼다. "더 나은 법을 만드는 일은 의문사 문제를 더 공정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될 뿐만 아니라, 국가가 개인의 생명권을 함부로 침해할 수 없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생명권을 지키는 일이 된다." 그의 말은 세월호 특별법의 출구가 안 보이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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