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음수업이 현실" "입시경쟁 뒤처져" 9시 등교 대립각

김기중 2014. 8. 23. 04:4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찬성 측 "잠 충분히 자고 아침식사 여유… 창의력 등 고차적 사고력 향상"

반대 측 "수능 코앞인데 말도 안 될 얘기… 익숙해진 생체리듬 깰 가능성"

최근 경기도 교육계가 '오전 9시 등교'를 놓고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재정 경기교육감이 다음달 1일부터 9시 등교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자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법적 대응까지 거론하는 등 공방이 거세지고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늦춰진 등교 시간에 환호성을 지르고 있고 교사들도 상당수 찬성 의견이다. 하지만 맞벌이 부부와 고3 수험생과 학부모 등은 심각하게 반대를 표명하고 있다.

이래서 찬성한다

9시 등교의 가장 큰 지지자는 학생들이다. 잃어버린 잠과 아침밥,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되돌리자며 환호하고 있다. 김포의 U고등학교 1학년 최모(16)군은 "중학교 이후 아침밥 먹는 내 모습은 항상 눈이 감긴 채였다. 아침에 무슨 반찬으로 밥을 먹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늦잠이라도 잔 날은 한두 번 숟가락질로 입에 밥을 머금고 학교로 뛰었다. 9시 등교는 나에게 충분한 잠과 여유 있는 아침밥이다. 가장 좋은 것은 아침에 서둘러야 한다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고 말했다. 빠듯한 하루를 쪼개가며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고교생에게 1시간의 여유는 엄청난 변화다.

교사들도 학생 못지 않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교사 자신과 가르치는 학생들의 여유를 위해서다. 한 고교의 김영일(46) 교사는 "아이들 등교 시간이 7시 40분이면 교사는 그보다 20~30분 전에는 나와있어야 한다. 아침 일찍부터 오후 늦게까지 아이들을 관리하다 보면 솔직히 마지막 시간 수업 때면 힘겨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1교시부터 졸음과 싸우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어른으로서 미안하기도 하다"며 "사실 학교장과 학부모들 눈치가 보여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많은 교사들이 9시 등교에 찬성한다"고 털어놨다.

전교조는 아낌 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이뤄지는 입시 대비 위주의 교육과정에서는 아이들에게 창의력이나 문제해결 능력과 같은 고차적 사고능력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주영 전교조 경기지부장은 "어른들도 대부분 겪어 봤겠지만 아침 일찍 학교에 등교하면 잠은 부족하고 아침밥도 못 먹고 책상에 앉으면 머리는 몽롱하고 오로지 잠 잘 생각밖에 안 든다. 이런 상태에서 공부를 하기에는 애당초 틀린 것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이어 "세계에서 가장 장시간 학습노동에 시달리는 우리 학생들에게 휴식과 여유를 조금이라도 확보해 주어야 한다"면서 "고차적 사고능력은 여유에서 나오는 만큼 지금까지의 교육 관행을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9시 등교에 대한 찬성 의견은 충분히 잠에서부터 학습능률 개선, 인성과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래서 반대한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경기지역 학생들만 경쟁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역시 입시 위주의 교육 현실에서 나올 법하다.

학생들 중에도 입시에 민감한 수험생들은 9시 등교를 반대한다. 미대 입시를 준비 중인 수원의 S고등학교 2학년 권모(17)군은 "오전 9시에 등교하면 하교는 오후 6시가 되는데 언제 학원에 가서 입시 준비를 하나. 미대를 들어가기로 마음 먹은 것이 남들보다 늦어서 실기 연습이 절실한데 학원 끝나는 시간은 오후 10시로 제한돼 있고 학교 수업은 오히려 늦게 끝나니, 시간이 너무 부족해진다"고 하소연했다.

고3 학부모도 마찬가지다. 특히 수능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생체 리듬이 흐트러져 시험을 망칠까 노심초사다. 고3 학부모 김인순(47ㆍ여)씨는 "초등학교부터 12년 동안 크게 다를 게 없던 등교 시간을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수능을 코앞에 두고 갑자기 바꾸라는 것은 무슨 경우냐. 수능을 앞두고는 모든 생활 패턴을 수능 시간대에 맞춰야 하는데 교육청에서 나서서 오히려 이런 생체 리듬을 깨려고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녀를 등교시키고 출근해야 하는 맞벌이 부부들의 걱정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초등학교 2학년 딸을 둔 최미향(41ㆍ여)씨는 "남편보다 내가 회사와 거리가 가까워서 항상 출근길에 딸아이를 교문 앞까지 데려다 주고 회사로 간다. 그런데 등교 시간이 늦어지면 아이가 잠을 더 잘 수 있어 좋겠지만 그 이후가 문제다. 지금도 등교 준비가 전쟁과 같은데 부모 없이 아이 혼자 등교할 수 있겠나. 그렇다고 하교 후 아이 돌봐주는 아주머니를 등교 전부터 봐달라고 할 수도 없고. 교육감이 참 막막하고 대책 없는 정책을 내놓았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교총은 9시 등교에 대해 권한 남용이라며 법적 대응까지 거론하고 있다. 안양옥 교총 회장은 "약 44%가 맞벌이인 우리나라에서 출근ㆍ등교시간 등 생활패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고 이른 아침 혼자 있게 될 학생 보호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또 등교가 늦은 만큼 끝나는 시간이 늦어져 아침의 여유가 저녁의 다급함으로 바뀌는 조삼모사 정책이 될 것이다"고 비판했다.

김기중기자 k2j@hk.co.kr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