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km(잠실 종합운동장에서 강남 고속터미널) 가는데 5만원.. 공연장 바가지 택시 극성

엄보운 기자 2014. 8. 23.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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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게 모실게, 고속버스터미널(7㎞ 거리)까지 5만원."

세계적 팝스타 레이디가가의 내한 공연이 끝난 지난 16일 밤 11시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 관객 2만명이 쏟아져나오는 길목에 택시 50여대가 차도 양쪽을 가로막고 늘어서 있었다. 기사들은 인도에 올라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았다. "어디 가? 그냥 이거 타. 나가도 택시 없어. 싸게 해줄게." 이들은 하나같이 미터기 요금 대신 터무니없는 가격을 불렀다. "고터(고속버스터미널)는 5만원, 용산은 7만원, 광화문은 9만원이야." 정상적으로 택시를 타면 고속버스터미널까지 7000원 정도가 나온다. 약 7배 바가지요금을 씌우는 것이다.

대형 공연이 있을 때마다 올림픽공원·종합운동장·코엑스 등 대형 공연장 주변에서 불법 배짱 운행을 하는 택시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공연장 주변이 늦은 밤에는 택시가 잘 잡히지 않는 아파트 지역이라는 점을 악용해 터무니없는 요금을 요구한다. 이날도 종합운동장에서 택시 기사들의 요구에 손사래를 친 관객들은 대로변에서 택시를 잡지 못하고 800m 떨어진 강남경찰서 사거리까지 가서야 '미터기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택시 기사들은 불법 합승도 강요한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둘러 고속버스터미널로 가야 했던 박승현(28·대학생)씨는 "5만원을 낼 테니 어서 가자"고 했지만, 택시 기사는 "한 명 더 받아야 간다"며 엔진을 껐다. 15분이 지나 반포동 가는 승객 한 명이 더 타고나서야 택시가 출발했다. 박씨는 "즐겁게 공연 보고 나와서 택시 때문에 기분 다 망쳤다"며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차를 빌렸을 것"이라고 했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따르면 승차 거부와 합승은 과태료 20만원, 바가지요금은 최대 20일 사업 정지에 처한다. 하지만 이런 횡포는 매번 반복된다. 세계적 밴드 퀸의 공연이 있었던 지난 14일 밤도 똑같았다. 이날 밤 11시 30분쯤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공연을 보고 나온 이모(26)씨는 "용산까지 7만원"을 부르는 택시 기사들에게 한마디 했다. "평소 2만원밖에 안 하는데 왜 7만원이나 받으세요?" 택시 기사는 "아가씨, 여기 원래 다 그렇게 받아. 타기 싫으면 괜히 떼 부리지 말고 그냥 가"라고 했다. 승차 거부라고 생각한 이씨가 스마트폰을 꺼내 택시 번호판을 찍으려 하자 기사는 "사람 성질 돋우지 말고 좋게 말할 때 그냥 가라"며 소리를 질렀다. 이씨는 "주변을 돌아보니 어느새 다른 택시 기사들이 몰려나와 둘러싸고 있었다"며 "결국 조용히 빠져나와 택시를 잡느라 1㎞를 걸었다"고 했다.

단속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작년 말 서울시는 연말 공연장을 중심으로 택시 승차 거부와 바가지요금 근절에 나서겠다며 단속 전담 공무원까지 배치했지만 1~2차례 단속에 그쳤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 전역을 단속원 106명이 맡다 보니 인력이 부족하다"며 "신고를 받아도 담당 공무원을 현장에 보낼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14일 한 승객이 서울시 120다산콜센터에 신고했지만 "담당자에게 말씀은 드리겠지만 당장 해 드릴 수 있는 게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단속에 손을 놓은 사이 잠실 종합운동장에선 14일 밤 1만5000여명이, 16일 밤엔 2만명이 불법 배짱 택시의 횡포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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