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마녀사냥 하듯 언론플레이.. "필요에 따라 한 인간 완전히 파멸"

2014. 8. 22.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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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경찰, 도넘은 '김수창 피의사실 공표'

신고자 진술·CCTV 확보 내용에

얼굴 드러난 영상 공개해 기사화돼

혐의 관련 없는 소품까지도 밝혀

전문가 "경찰 인권의식 부재 확인경찰 "의도적 망신주기 아니다"

최근 일주일 동안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공연음란죄 혐의로 입건된 현직 검사장' 사건은 22일 경찰의 완승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경찰이 보인 행태는 또다른 문제점으로 남는다.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 유출 등 피의사실 공표를 통한 망신주기와 몰아가기 등 경찰 수사의 고질적인 병폐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 망신주기식 수사와 과도한 언론플레이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의 혐의사실은 지난 15일 저녁 처음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김 전 지검장이 혐의를 부인하면서 진실 공방으로 이어졌고, 경찰발 후속보도들이 계속됐다. 보도의 정보원은 익명의 '경찰 관계자'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신고한 여고생이 체포된 김 지검장을 보고 인상착의가 맞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김 지검장의 모습이 찍힌 시시티브이 7개를 추가로 입수해 수사중이다' '시시티브이에 등장한 남성은 김 지검장뿐이다'라는 등 후속보도에 모두 등장했다.

경찰의 망신주기 행태는 시시티브이 공개로 이어졌다. 성범죄의 일종인 공연음란 혐의 수사는 피해자는 물론이고 피의자의 인격권에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에 성범죄 수사 당시에는 활용 가능한 시시티브이 영상 등을 증거물로 입수하고, 복사본이 남지 않도록 삭제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그러나 경찰은 영상 유출을 막기 위한 조처를 하지 않았고, 시시티브이 속 김 전 지검장의 모습은 모자이크 처리도 없이 종합편성채널 등을 통해 온 국민에게 공개됐다.

숙명여대 홍성수 교수(법학)는 "김 전 지검장의 행위는 물론 범죄에 해당하지만 직무를 이용한 독직범죄도 아니었고, 구체적인 피해자가 있는 경우도 아니었다. 경찰의 언론플레이는 전형적인 피의사실 공표였으며, 인권의식 부재라는 경찰 수사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전 지검장 체포 당시 소지품을 공개한 것은 공개적인 모욕에 가까웠다. 당시 경찰 관계자는 "음란행위를 위한 도구는 아니었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여 굳이 김 전 지검장이 체포 당시 '베이비로션'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김 전 지검장의 손과 성기, 속옷 등 어느 곳에서도 문제의 로션은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로션은 이 사건 자체와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 '소품'이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경찰은 굳이 이 대목을 언급해 김 전 지검장을 대중적 관음증의 제물로 만들었다.

■ "역설적으로 경찰이 얼마나 위험한지 드러나"

사건 초기 제주지방경찰청은 소속 경찰관 20여명을 이 사건에 투입해 김 전 지검장의 동종 범죄를 쫓았다고 한다. 사상 유례없는 '공연음란 혐의 인지수사(수사기관이 스스로 혐의를 포착해 진행하는 수사)'가 벌어진 꼴이다.

인권연대의 오창익 사무국장은 "김 전 지검장은 범죄자이고 치료 대상이 맞다. 그렇지만 오히려 이 사건에서는 역설적으로 경찰이 얼마나 위험한 조직인지 드러난 것 같다. 경찰은 조직의 필요에 따라 검사장이건 일반 시민이건 완전히 파멸시킬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검사장급의 한 간부는 "엄밀히 보자면 처벌보다도 치료가 필요한 취향의 문제일 수 있는데 김 전 검사장을 상대로 (마녀)사냥이라도 벌어진 느낌"이라며 "개인적인 문제지만 그래도 (같은 검사인)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찰은 짐짓 표정관리에 신경을 쓰면서도 "검찰에 한 방 먹였다"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동안 경찰 내부에선 '유병언 일가 수사'를 검찰이 주도했는데도, 책임은 이성한 경찰청장이 지고 물러났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불만을 가져온 게 사실이다. 특히 '검경 수사권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온 강신명 신임 청장의 취임을 앞두고 현직 검사장의 부적절한 행적을 밝혀낸 것을 일종의 성과로 인식하는 시각도 있다. 이날 경찰은 제주지방경찰청의 수사 결과 보도자료를 이례적으로 경찰청 본청 출입기자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애초에 신분을 속이려 한 김 전 지검장이 오히려 이 사안을 검경 사이의 문제로 의식했던 게 아니냐. 의도적으로 김 전 지검장에게 망신을 주려던 게 아니라, 절차에 따라 사건을 처리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다른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의 수사를 통해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긴 했지만, 이번 일로 경찰과 검찰 사이의 갈등이 증폭되면 경찰에도 좋을 게 없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노현웅 송호균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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