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2] 나이롱(?) 환자 류현진의 발랄한 투병기

스페셜 입력 2014. 8. 22. 10:48 수정 2014. 8. 2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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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스페셜9 제휴] 처음에는 무슨 일 난 줄 알았다. 아니, 무슨 일 난 게 맞다. 평소와 달리 마운드에서 공 던질 때만큼은 늘 진지 모드, 포커 페이스를 지키던 그. 갑자기 덕아웃에 다급한 손짓으로 SOS를 보내고 주저 앉았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다. '햄스트링 같은데? 그럼 최소한 한달 짜린데….'

그런데 햄스트링은 아니었다. 엉덩이 근육이었다. 그럼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직 뭐라고 판단할 수 없다. 의료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말이 오락가락 한다. 누구는 큰 부상 아니니 금새 나을 거라고 하고, 누구는 특이한 곳을 다쳐서 오래 갈 것이란다. 심지어 시즌 아웃을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의 팀은 요즘 노심초사다. 무슨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줄줄이 드러눕는다. 걸핏하면 15일짜리 병가(DL)다. 5게임차 이상 벌어졌던 2위 샌프란시스코와도 3게임차에서 왔다갔다 한다. 이러다간 막판에 뒤집히는 것 아닌가 불안해진다.

상황이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가니 팀에서도 그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고 있다. 초조한 매팅리 감독도 말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언제는 "서두를 필요 없다. 회복하는데 충분한 시간을 줄 수 있다" 짐짓 여유 있는 척하더니, 이제는 "상태가 많이 좋아진 것 같다. 예상보다 (복귀가) 빨라질 수 있다"고 말이 슬쩍 바뀐다. 심지어는 "그는 특이한 스타일이라서 마이너리그 재활 등판도 필요 없다"고 했다. 급하긴 어지간히 급한가 보다.

이 쯤 되면 당사자는 어떤 심정일까. 안타깝고, 미안하고, 눈치 보이고…. 뭐 그렇지 않을까? 아니, 미안할 것까지는 없더라도 최소한 표정관리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문제는 이 환자가 그런 기색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여전히 낄낄거리고, 옆사람과 장난치고…. 평소와 다름없는 명랑한 덕아웃 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것도 같이 병가 내고 드러누운 동료 선수(같은 류씨 형제)와 그러니 말 다했다. 물 뿌리고, 뒤통수 때리고, 쫓고, 쫓기고…. 아마 교통사고 처리하는 보험회사에서 봤으면 영락없는 나이롱 환자로 분류하고, 보험료 지급도 '해야되나, 말아야 되나' 망설일 판이다.

나이롱 환자는 이 와중에도 트렌드 챙긴다. 한창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아이스 워터 빠께쓰' 말이다. 어제 드디어 한 통 가득 들이 부었다. 물론 좋은 일이다. 뜻깊은 일이다. 그러나 환자 아닌가? 야구 동료 이진영은 그를 지명하려다 "환자라서 특별히 봐준다"며 빼줬다.

그런데 느닷없이 '눈치 제로' 얍스가 점찍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팀 홈페이지에 올린 동영상에서 "김준호 형이 제게 챌린지를 해서 하게 됐는데 부상으로 인해 며칠 늦어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기부도 하고 얼음물도 맞겠습니다"라고 밝히며 시원하게 얼음물을 맞았다. 이때 물통 뒤집어 씌워준 것도 동병상련 류씨 형제였다. 둘 다 참 철없는 환자들이다.

몇 년 전엔가 발간돼 화제를 모은 책이 하나 있다. <왕코의 유쾌한 암투병 일기>라는 책이다. 자오따비라는 이름의 23살짜리 중국 청년이 고통스러운 암과의 싸움을 일기 형식으로 엮어낸 글이었다. 저자는 자기가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부터 이틀에 한번씩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암투병 일기를 썼다. 사랑하는 가족과 여자친구가 슬퍼하지 않도록 괜찮다는 듯이 여유를 부렸다. 그때마다 그는 눈물을 쏟아내야만 했다. 결국 그는 암을 극복하여 열정적이고 활달한 열혈 청년으로 다시 돌아갔다.

물론 이 책에서 얻는 메시지는 여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웃음과 유쾌함이 면역력을 높여준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러나 <...구라다>가 자오따비와 다저스의 99번 청년에게서 배우는 점은 배려의 태도, 있어 보이는 말로 애티튜드(attitude) 다. 안 좋은 일 있다고 표정 긁고 있으면서 주변까지 모두 불편하게 만들지 않고. 그래도 밝고 발랄하게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

덕분에 그의 팀 라커룸에는 여전히 활력이 넘친다. 아마도 그건 수치화 하고, 계량화 할 수 없지만 분명히 전력에서 큰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무엇보다 보기 좋지 않은가. 우울하지 않고, 활기 있고, 발랄하고….

그의 진단명은 아주 어렵고 낯설다. 우측 둔부 중둔근(Gluteus Medius)과 이상근(Piriformis)에 생긴 1~2단계의 염좌다. 그러나 이 생소하고 딱딱한 의학 용어마저도 팬들에게는 개그 소재다. '미안하다. 현진아. 내 이름이 이상근이라서.' 부상 기사의 댓글조차 유쾌하고 재기 넘친다. 그의 팬들도 그를 닮았다.

자칫 우울한 DL의 그늘에서도 그와 그의 팬들은 발랄함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금새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마운드로 돌아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원래 그의 놀이터는 그곳이었으니까.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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