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퇴직 증권맨들, 다시 지점 나가는 이유는?

2014. 8. 2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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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잇단 구조조정의 그늘

[동아일보]

금융회사들이 한여름에 혹한의 계절을 맞고 있다. 구조조정과 채용 감소 등으로 지난 1년 동안만 금융권에서는 5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올 들어 비자발적인 이유로 회사를 떠나 아직 재취업을 하지 못한 인원도 수천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는 사표를 낸 다음에도 몸담았던 일터를 완전히 떠나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이나 시간제 근로로 '급'을 낮춰서라도 일단은 다니던 회사에 재취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그동안 쌓아 온 고객과의 인연 때문에 무보수로 출근 도장을 찍는 사례도 있다. 전문가들은 금융권 전반이 동시에 어려움을 겪어 동종업계 간 이직이 힘들어진 데다 음식점 등 자영업의 비전도 어둡다는 판단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 사표 내고도 출근 도장

20년을 넘게 '증권맨'으로 살아온 송모 씨(53)는 올 6월 정년을 2년 앞두고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회사 사정이 워낙 좋지 않아 어차피 정년을 채우긴 힘들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송 씨는 퇴직 후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신이 다니던 증권사 지점에 '출근 도장'을 찍고 있다. 한때 지점장까지 지냈던 그였지만 책상은 다른 직원들의 눈에 띄지 않는 상담실의 한 귀퉁이로 옮겼다. 그가 하는 일은 평소와 다름없이 종목을 분석하고 시황을 점검한 뒤 고객 관리를 하는 것. 달라진 건 업무용 전화기가 아닌 개인 휴대전화를 쓴다는 것뿐이다.

송 씨는 "내가 관리해 온 고객 대부분이 나를 믿고 주식거래를 수십 년간 해 왔다"며 "비록 월급은 못 받지만 고객과 오랫동안 이어온 인연에 책임을 지는 것이 도리"라고 말했다. 회사 측은 송 씨가 사실상 무보수로 일을 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지만 고객들도 송 씨가 계속 자산운용을 맡아주길 원하고 있어 일단 묵인하는 상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희망퇴직자가 많은 증권사의 대형지점에는 송 씨 같은 사례가 2, 3명씩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미 퇴직한 정규 직원들을 투자상담사 등 계약직으로 고용하는 증권사도 많다. 회사는 인건비를 줄일 수 있어서 좋고, 퇴직자는 수입을 이어갈 수 있어 좋다. 올해 구조조정을 실시한 우리투자증권은 비정규직이 100명 이상 늘면서 지난해 6월 17.1%였던 비정규직 비중이 올해 23.7%로 증가했다.

○ 퇴직 후에도 회사 주변 맴돌아

은행과 보험업계도 상황은 비슷하다.

올 상반기 1000명을 감원한 삼성생명은 구조조정 인력의 상당수를 자회사나 대리점으로 이동시켰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물론 대책 없이 사표를 받는 것보다야 회사가 배려한 것이긴 하지만 자회사로 옮기면 아무래도 복리후생은 본사에 있을 때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올해 초 100명 안팎의 명예퇴직자를 시간제 감사로 재고용했다. 한 사람당 영업점을 서너 곳씩 맡아 거래 전표나 규정 준수 여부를 체크하는 일이다. 물론 급여나 대우야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퇴직자의 대부분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권 퇴직자들은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자리를 알아보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그것도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금융사들의 고민은 희망퇴직을 받으면 인건비가 높은 중장년층보다는 20, 30대 핵심인력의 지원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다. 금융업의 침체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유학이나 전문직으로 직종 전환을 생각하는 젊은층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씨티은행의 경우도 올 6월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난 650명 가운데 10년차 이하 대리급 직원이 100여 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중은행의 인사담당자는 "나이든 직원들은 어떻게든 회사에 붙어 있으려 하고 이 때문에 신입사원 채용도 적극적으로 못하다 보니 인력구조만 고령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박민우 minwoo@donga.com·유재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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