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일의 들숨날숨] 축구협회, 다음 협상 과정은 절대 알리지 말라

조회수 2014. 8. 20. 15:3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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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7일 오전 대한축구협회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마련했다. 네덜란드 출신의 지도자 베르트 판 마르바이크와의 협상 과정을 설명키 위한 자리였다. 이 위원장의 출국이 5일로 알려졌으니 '긴급'이라는 표현도 무리는 아니다.

그 자리에서 이용수 위원장은 "판 마르바이크 감독을 만났다. 아직 어떤 결과나 합의가 도출된 것은 없다. 추측과 억측들에 대한 또 다른 부작용이 있을 것 같아 자리를 마련해 현 상황을 정확히 알린다"면서 "자세한 내용을 밝히는 것은 부적절하지만 판 마르바이크 감독이 기본적으로 한국 감독직에 관심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는 뜻을 전했다. 그러면서 "일주일 이내에 판 마르바이크 감독과의 협상은 마무리 될 것"이라는 말로 어떤 형태로든 빠르게 결정지을 것이라는 뜻을 전했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8월18일 이용수 위원장은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다시 마이크 앞에 섰다. 협상이 결렬됐다는 내용이었다. 큰 틀에서 두 가지 이유였다. 하나는 세금이 포함된 연봉 문제였고 다른 하나는 주 활동 지역에 대한 생각의 차이였다.

약 20억 원 정도에서 판 마르바이크 감독의 연봉이 정해졌고 옵션은 별도였다. 감독을 도울 다른 스태프에 대한 비용 역시 추가되는 것은 자명했다. 이에 대한 판 마르바이크 감독의 직접적인 불만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단, 세금을 둘러싼 오해가 있었다. 한국과 네덜란드는 이중 과세 방지 협약이 되어 있는데 판 마르바이크 감독은 이 협약이 모호하다면서 우려를 표했다. 축구협회는 지속적으로 '문제될 것 없다'고 설명했으나 의구심이 이어졌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이것이 '결렬'의 핵심 이유는 아니다.

가장 큰 이견은 '근무형태'였다. 판 마르바이크는 '사무실'을 유럽에 차리고 싶어 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주로 유럽에서 머물면서 '한국의 감독'직을 수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한국대표팀의 중추인 유럽파를 수시로 점검하겠다는 좋은 의도가 있기는 했지만 개인적인 욕심이 더 컸던 주장이다.

축구협회 입장에서는 두 번째 조건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재택근무'는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분명 판 마르바이크 감독은 좋은 감독이다. 앞으로 다른 기회가 있다면 좋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는 말로 결렬됐음을 전했다.

지난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네덜란드 대표팀의 준우승을 견인한 수준급 감독과 계약이 성사 직전까지 갔던 일이라 아쉬움이 적잖다. 분명 진지하게 진행했고 또 긍정적인 흐름이었다. 하지만 결렬됐다. 결과론적인 이야기나 너무 일찌감치 샴페인을 터뜨리려 했던 것이 어느 정도 화근이 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견'의 간극을 넓힌 책임은 대한축구협회의 몫도 적잖다.

첫 만남을 가진 뒤 불과 이틀 만에 공식적으로 협상 과정을 밝혔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 대목이다. 네덜란드 언론에서 "KFA가 판 마르바이크와의 협상을 진행 중이다"는 현지발 기사가 나오면서 숨기기 힘든 작업이기는 했으나 굳이 축구협회가 '공식화'할 사안이었는지는 의구심이 든다. '협상'에 득 될 것이 없었다.

한 축구인은 "왜 축구협회가 협상 사실을 알렸는지 이해할 수 없다. 국내에서 판 마르바이크 감독에 대한 좋은 기사가 쏟아졌고 팬들의 반응도 호의적이었다. 당연히 상대방이 '고자세'로 협상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을 전했다. 중요한 대목이다.

한국 쪽 여론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은 당연하다. 한국 축구의 부활을 위한 적임자라는 기류가 자리하면서 짐짓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밖에서 봤을 때 아쉬운 쪽은 축구협회 쪽이었다. 계약기간부터 근무형태까지, 판 마르바이크가 협상의 키를 지고 있었다. 이용수 기술위원장 역시 "판 마르바이크 감독이 많은 내용을 알게 되면서 협상이 어려웠다"는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공개했다지만, 잃은 것이 더 많았다.

이제 차기 사령탑 선임 작업은 원점에서 새로 출발한다. 판 마르바이크 감독이 1순위 대상자였고 긍정적으로 진척되고 있었기에 축구협회는 다른 감독들과 전혀 접촉하지 않고 있었다. 그 사이에 꽤 괜찮은 '백수 감독'들이 새 둥지를 찾았다. 후보군이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서두르는 것은 지양해야겠으나 더 이상 넋 놓고 있다가는 좋은 인재를 놓칠 수 있다. 때문에 중요한 것이 철저한 '보안'이다.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대상의 폭을 넓혀 2~3명의 감독과 동시에 접촉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 과정은 절대 비공개로 진행되어야 한다. 한국의 감독을 맡겠다는 사람이 유럽에서 생활하겠다는 등 얼토당토않은 조건이 다시 나와서는 곤란하다. 아직은 '협상' 과정이다. 작은 것도 크게 부풀리고 기다리는 것에는 익숙지 않은 우리네 풍토지만, 축구협회는 흔들림 없는 진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축구협회는 한국 축구를 대표해서 누군가를 만나고 있다. 결정된 후에는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지만 성사되기 전까지는 공정하고 당당한 줄다리기가 필요하다. 이미 1순위가 아니었다는 것도 공공연하게 밝혀졌으니 입장이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쉽지 않은 싸움이고 따라서 더 신중한 행보가 필요하다. '좋은 결과'를 위해 앞으로의 협상 과정은 반드시 알려지지 않아야 한다.

글= 임성일[뉴스1스포츠체육팀장/lastuncl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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