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 한 마리 떠나면 모두 실업자 된다고?

2014. 8. 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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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생명

아일랜드 펑기 이야기

▶ 영화로도 제작된 더글러스 애덤스의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보면, 지구의 종말이 임박했음을 알게 된 돌고래들은 지구를 떠나기 전에 메시지를 보낸다. 하지만 인간들은 공중제비를 도는 돌고래들이 재롱을 부리는 줄로만 알고 박수만 친다. 돌고래들이 인간들에게 남긴 메시지. "안녕~ 생선은 고마웠어"(So long and thanks for all the fish). 영화의 첫 장면, 경쾌한 노래로 나온다.

돌고래보다 사람과 친한 돌고래가 있다. 수족관에 사는 동물이 아니다. 아일랜드 서남쪽 딩글 앞바다에 혼자 사는 '펑기'의 이야기다. 길이 4m, 무게 227㎏의 '큰돌고래'(Bottlenose Dolphin). 제주에 사는 '남방큰돌고래'(Indo-Pacific Bottlenose Dolphin) 제돌이의 사촌쯤 된다. 큰돌고래는 일반적으로 무리 생활을 한다. 그런데 펑기는 돌고래 무리를 빠져나와 딩글 만 주변에서 혼자 산다. 펑기가 딩글에 찾아온 게 1983년이니, 벌써 30년이 넘었다.

지난 7월11일, 작은 시골 항구 마을 딩글은 자신의 인구 1900명 못지않은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그도 그럴 만한 게 펑기는 한해 4만명의 관광객을 불러모았다. 한여름 휴가철이라서 펑기를 보러 가는 배는 30분마다 출발했다.

"요금은 배에 타서 내세요. 돌고래 못 보면 안 내셔도 돼요."

올리비아 클라크(21)는 '딩글돌핀투어' 사무실에 찾아온 손님들을 선착장으로 보내고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펑기는 여기 살았어요. 나보다 나이가 많죠.(까르르) 1983년 딩글에 왔을 때, 펑기가 열살 정도였으니까, 지금은 마흔이 넘었겠네요."

돌고래 무리를 빠져나와아일랜드 서남쪽 딩글만주변에서 혼자 사는 펑기인구 1900명인 딩글에한해 관광객 4만명 모은다유인하거나 가둔 것 아닌데'사람과 친한 외톨이 돌고래'대부분 서식지 옮기는 경향펑기는 줄곧 딩글에서 놀며'펑기 30주년 행사'도 지켜봐

요금 16유로지만 펑기 못 보면 공짜

레이디로라호에 관광객 40여명이 올랐다. 요금 16유로(약 2만2000원)를 내려니까, 한자로 '극한건조'라고 써진 티셔츠를 입은 청년이 '내릴 때 내라'고 한다. 즉, 펑기를 못 보면 '공짜'라는 얘기다. 망원경과 200㎜ 망원렌즈로 무장하고 갑판 앞에 자리를 잡았다. 딩글 앞바다는 육지로 둘러싸인 좁은 만이어서 파도가 잔잔했다. 5분 정도 흘렀을까. 좁은 만을 빠져나갈 즈음 멀리서 돌고래 한 마리가 뛰어오르는 게 보였다. 펑기! 돌고래는 사라졌다가 이내 배 좌우에서 뛰어올랐다. 선실 지붕에서 청년이 펑기를 가리킨다. 여기! 저기!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 검은 그림자 같은 물체가 유영하다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돌고래 몸의 유연한 곡선, 힘찬 도약을 보며 관광객들이 소리 질렀다. 한두번이 아니었다. 펑기는 배 주변으로 계속 나타났다. 한참 안 보일 때는 청년이 나서 이곳저곳을 찾기도 했지만, 검은 그림자는 소리 없이 배에 붙어 불쑥 떠올랐다. 망원경을 놓았고, 망원렌즈도 필요 없었다. 펑기, 펑기, 펑기, 꼬마들이 '짝짝짝' 박수를 치고, '통통통' 배 난간을 두드리면서 돌고래를 불렀다. 펑기가 그 소리를 알아들었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펑기는 열심히 선수타기(돌고래가 배가 일으키는 파도를 타며 노는 것)를 했다. 어느새 펑기 주변의 배는 세 척으로 늘어났다. 그중 두 척이 나란히 서서 경주를 하듯 속도를 내자, 펑기도 두 배 가운데서 전력질주로 헤엄쳤다. 꼬마들은 배 난간에 매달려 '하나, 둘' 카운트다운을 했다. 셋이 되면 펑기가 솟구쳤다. 이 정도 되니, 이게 '동물원'인지 '야생의 바다'인지 헷갈렸다.

재미있는 점은 내가 탄 레이디로라호 주변에서 유난히 펑기가 자주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상하게도 다른 업체에서 운영하는 배 주변에선 자주 목격되지 않았다. 나중에 올리비아에게 들은 말은 이랬다.

"올해 새로 사업을 시작한 업체인데, 거기는 (사업이) 잘 안돼요. 펑기가 그 배로는 잘 안 가거든요."

"정말요?"

"응, 진짜예요. 펑기도 우리가 오래 한 거 알고 있어요. 선장님이 펑기가 내는 소리를 오래 들어서 아는데, 우리 주변에 있을 때와 그쪽 배 주변에 있을 때 펑기가 내는 소리가 달라요. 펑기가 우리 배 알아보고 우리랑 잘 노는 거예요."

그리고 그녀는 힘주어 말했다.

"돌고래는 진짜 영리한 동물이에요."

1983년 펑기가 딩글에 찾아온 뒤, 어부들은 펍에서 밤을 새우며 딩글에 대한 소문과 추측들을 안주로 올렸다. 도대체 이 돌고래는 어디서 왔는가? 왜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혼자 여기에 머무는가? 당신도 봤소? 오늘도 펑기가 우리 배를 따라왔다니까…. 1991년 출판된 책 <아일랜드의 돌고래 친구>에 실린 어부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펑기가 처음 발견된 건 독일 수출시장이 막히자 팔지 못하고 남은 생선을 딩글의 어부들이 딩글 만 바다 한가운데에 내다버릴 때였다. 어군탐지기에 잠수함 같은 물체가 깊은 수심에서 잡히는가 싶더니, 돌고래 한 마리가 바람을 가르며 바다 위로 뛰어올랐다는 것이다. 펑기는 죽은 생선을 허공에 던졌고 이 중에 몇 마리는 갑판 위에 떨어졌다. 그 뒤로 어부들의 펑기 목격담이 잇따랐다. "펑기가 훌쩍 뛰어서 나를 쳐다봤다." "30미터 앞에서 기다리다가 배가 도착하니 같이 갔다." 돌고래는 점차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모았고 영국 <비비시>(BBC)와 일본 <엔에이치케이>(NHK)에서 다큐멘터리를 찍어 갔다. 딩글의 어부 7명은 1992년 자신들의 배로 펑기를 보러 나가는 '돌고래 관광'을 시작했다.

'펑기 현상'이 아주 드문 일은 아니다. 학계에서는 펑기처럼 야생 무리에 속하지 않은 채 혼자 다니면서 사람과 곧잘 어울리는 야생 돌고래를 '사람과 친한 외톨이 돌고래'(solitary sociable dolphins)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동족이 아닌 사람을 친구로 택한 돌고래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먹이를 줘서 유인하거나 일부러 특정 해역에 가둔 것도 아니다. 첫 접촉 이후 인간과의 상호작용이 영향을 끼쳤겠지만, 돌고래의 '자유의지'가 특별한 삶을 선택한 가장 큰 요인이다. 이들은 사람들과 교감하다가도 몇달이나 몇년에 한번씩 서식지를 옮기는 경향을 보인다. 이를테면 2001년 4월 아일랜드 서남부 던퀸 앞바다에서 발견된 큰돌고래 '도니'(Dony)는 7월까지 관찰되다가 사라졌다. 그 뒤 도니는 1000㎞ 떨어진 서부해안 프랑스 라로셸에서 목격됐다가 다시 600㎞를 여행해 영국 서남부 해안에 나타난 뒤 네덜란드 로테르담 앞바다로 이동했다. 반면 펑기는 딩글에서 줄곧 딩글돌핀투어의 배들과 어울려 놀면서 지난해 '펑기 30주년 행사'를 지켜봤다. 야생 큰돌고래 무리가 몇 차례 딩글 만에 방문했을 때에도, 펑기는 그들에 섞여 헤엄치다가도 무리를 따라 떠나진 않았다. 올리비아도 그런 펑기를 어렸을 적부터 보아왔고,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삼대째 딩글돌핀투어에서 일하고 있다.

"펑기가 어느 날 갑자기 떠나면요?"

"우리 일자리 다 잃는 거죠, 뭐.(까르르) 펑기가 다른 데로 가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다쳐선 안 돼요. 어떤 사람들은 펑기가 떠나면 비슷한 돌고래를 찾아오면 된다고 얘기들을 하지만…."

2008년까지 102마리 외톨이 돌고래 보고돼

2008년 네덜란드 에흐몬트안제이(Egmond aan Zee)에서는 외톨이 돌고래를 연구하는 전세계 해양포유류학자들이 모여 워크숍을 열었다. 워크숍 자료를 보면, 당시까지 102마리의 외톨이 돌고래가 보고됐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과학자들은 돌고래가 먹이가 풍부한 곳에서 혼자 머물고 싶어하거나 포식자의 공격을 피해 안전한 곳을 찾는 등 실용적인 이유, 혹은 친구, 짝을 잃거나 사회성 부족으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살기를 선택했을 것이라는 가설, 악천후 등으로 길을 잃었을 것이라는 추정 등을 내놓고 있다. 높은 사회성을 지닌 특성상 돌고래는 인간들과의 만남도 즐겼을 것이다.

세계적인 여행정보 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저'에 올라온 관광객들의 후기를 살펴보면, 펑기를 보고 나서 경이로움에 사로잡힌 이들도 있지만, 반대로 불편한 마음을 토로하는 관광객들도 적지 않다.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야생동물이 저래도 되는 것일까'라는 의문과 함께 기존의 '자연 관념'이 도전받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으로부터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순수로서의 자연'. 그런데 펑기는 자신의 뜻대로 순수로서의 자연을 떠나온 것이다.

펑기는 야생동물과 인간이 만나는 관계의 복잡성을 보여준다. 인간이 돌고래를 길들인 걸까, 돌고래가 인간을 길들인 걸까. 그는 야생동물일까, 아닐까. '야생동물' 펑기는 자유의지로 사람들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는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여기서 분명한 사실은 적어도 딩글 지역경제의 상당 부분이 펑기라는 돌고래 한 마리에게 달렸다는 점이다.

딩글(아일랜드)/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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