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산 자를 살리고, 법의학자는 죽은 자를 살린다

장주영 2014. 8. 2.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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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50명 .. 법의학자의 세계

청년이 죽었다. 칠흑 같은 새벽 어둠 속에서. 육중한 버스 바퀴가 그를 밟고 지나갔다. 종점에서 막 나오던 첫차였다. 목격자는 아무도 없다. 운전사는 주장했다. "도로 위에 누군가 누워 있었다"고. 유족들은 반박했다. "멀쩡한 아이가 왜 새벽에 도로 위에 누워 있었겠느냐"고. 양측 주장이 팽팽히 맞선 채 사건은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법의학이 실제 발생한 이 사건에 답을 내놨다. 서울대 이윤성 법의학교실 교수가 이 청년을 부검(剖檢)했다. 부검할 때 팔과 다리는 좀처럼 칼을 잘 대지 않는다. 머리·몸통과 달리 팔·다리는 웬만한 손상을 입어도 사인(死因)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교수는 청년의 다리에 주목했다.

 "청년이 서 있다 차에 치인 거라면 차량 범퍼에 의한 다리 부분 손상이 꼭 있어야 한다고 봤어요." 부검 결과는 이 교수의 예상대로였다. 다리에서 어떤 손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몸통 부위가 차량에 깔린 흔적만 있었다. 혈중 알코올농도를 재보니 만취 상태였다. 술 취한 청년이 도로에 누워 있다 화를 당한 걸로 결론냈다. 버스 운전사는 지은 잘못보다 더 무거운 책임을 지는 억울한 상황에서 벗어났다. 법의학 덕분이었다. 이 교수는 "법의학은 산 자든 죽은 자든 억울함을 풀어주는 인권이 핵심인 학문"이라고 역설한다.

 법의학은 우리도 모르는 새 우리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과학수사(Scientific Investigation)는 드라마의 단골 소재가 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전남 순천에서 발견된 시신이 유병언 청해진해운 회장이 맞다고 지난달 25일 부검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정작 법의학의 이면은 일반에 덜 알려져 있다. 법의학계 원로와 젊은 연구자를 만나 법의학계 이야기를 들어봤다.

 문국진(89) 고려대 명예교수는 국내 최초의 법의학자다. 서울대 의대 3학년 재학 시절 소나기를 피해 우연히 헌책방에 들어간 것이 법의학과의 첫 만남이었다. 후루하다 다네모도(古畑種基)의 『법의학 이야기』란 책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당시 국내 대학엔 법의학교실조차 없었다. 호기심에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의학에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임상(臨床)의학이 있고, 사람의 권리를 다루는 법의학이 있다'는 문구가 그의 뇌리에 박혔다. 그는 이날 헌책방에서 소나기는 피했지만 법의학자가 될 운명은 피하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법의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당시 스승이자 서울대 의대 교수였던 장기려(1911∼95년)박사를 찾아갔더니 화를 내시면서 '그건 학문도 아니야. 하지 말게'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씀을 들으니 오히려 법의학을 기어코 해야겠다는 오기가 생기더군요."

 문 교수는 이후 국과수 창립(1955년) 멤버로 참여했고 수많은 사건을 다뤘다. 68년 한강 나루터에서 발견된 여성 변사자를 부검해 결정적 수사 단서를 경찰에 제공했다. 교흔(咬痕·물린 자국)을 근거로 남편이 범인이란 사실을 밝혀냈다. 치아를 이용한 국내 첫 법의학 사례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과수는 법치의학자를 채용했다. 그는 "국과수 첫 월급이 당시 3000원이었는데 쌀 한 가마니를 사면 남는 게 없었다"며 "시립병원에서 일하던 친구는 1만5000원을 받던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 중인 법의학자는 대한법의학회 등록 기준으로 50명이다. 이들 대부분은 문 교수와 비슷한 생각으로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많은 돈을 벌겠다는 현실적 계산은 뒷전이었다. 건국대 법의학교실 박의우 교수는 "지금까지 임상 의사는 충분히 많이 나왔다. 평범한 의사보다 희귀하고 좀 더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법의학자의 사명감이 역사를 바꾸기도 했다. 87년 1월 발생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좋은 사례다. 당시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서울대 학생이던 박군을 고문한 경찰은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며 쇼크사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국과수 부검의였던 황적준 고려대 명예교수는 "쇼크사가 아닌 질식사"라고 감정했다. 서슬퍼렇던 군사정권 시절이었는데도 그는 고문에 의한 사망이란 진실을 폭로해 법의학자로서 양심을 지켰다. 이 사건은 민주화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부검은 법의학자가 하는 주된 일이다. 시신을 해부해 사망 원인과 시간 등을 밝혀낸다. 머리카락 한 올부터 손톱 하나까지 이 잡듯 훑는다. 매년 국내에선 약 2만5000명의 변사자가 발생한다. 시신에 칼을 대는 행위를 '두벌죽음'이라고 여기는 고정관념 때문에 변사자의 16~20%만 부검한다. 미국의 40%에 비하면 절반 이하다. 하지만 형사소송법엔 검사의 지시에 따라 부검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국과수 소속 법의학자들이 주로 담당한다. 대학 소속 법의학자들은 강의와 연구를 하면서 국과수 의뢰로 부검한다.

 법의학자가 되는 길은 좁다. 의대(6년)를 졸업한 뒤 병리학 전문의(5년)를 따고 법의학교실에서 경험을 쌓아야 한다. 전국 의과대학 41 곳 중 12곳에 법의학교실이 있다. 일본은 48개 의대 모두에 법의학교실이 개설돼 있다.

 법의학을 배우기도 어렵고, 배워도 갈 자리가 많지 않다. 국과수 정원은 23명으로 묶여 있다.

 법의학자를 더 많이 육성해 변사자가 발생하면 현장 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과 유럽에선 변사사건이 발생하면 검시의(檢屍醫)가 경찰과 함께 현장에 출동해 초동 단계에서 자살·타살 여부 등을 판단한다. 그러나 국내에선 의뢰받은 시신만 법의학자가 부검한다. 서울대 이윤성 교수는 "국내에 법의학자가 200~300명은 돼야 사건 현장에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글=장주영 기자, 김호정(중앙대 광고홍보학과)·이하은(서울여대 국어국문학과) 인턴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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