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의 부활] '이공계 기피'는 옛말..입시·취업서 '甲'

2014. 8. 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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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교육부 '문·이과 통폐합' 본격 논의

서울 중림동에 있는 재수 전문 종로학원에서는 최근 3~4년 동안 문·이과의 분반 비중을 변경하고 있다. 총 70개 반 중 매년 문과반을 한두 반씩 줄이고 이과반을 한두 반씩 늘리고 있다. 재수생 중에는 고3 시절 인문계열로 수학능력시험에 응시했지만 재수할 때는 교차지원제를 이용해 자연계열로 전향해 시험을 치르는 학생도 있다. 문과에서 이과에서 바꿔 수능을 치르는 것은 쉬운 선택은 아니다. 수학 등 과목에서 난이도가 훨씬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수학에 취약한 여학생들도 이공계열 진학을 희망하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이과계열 학급 수가 늘어나는 현상은 재수 학원뿐만 아니라 일부 고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문과반은 줄이고, 이과반은 늘리고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이공계열로 진학하는 것이 명문대 입학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취업에도 유리하다고 계산한 학생과 학부모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김명찬 종로학원 입시전략연구소장은 "과거 수학에 대한 부담감, 취업·승진에서의 유리함 때문에 문과로 쏠리는 경향이 있었지만 최근 취업 시장에서 기업들이 이공계 졸업생을 선호하는 등의 현실적 판단에 따라 상위권 학생들이 이공계열에 적극적으로 진학하려고 하고 있다"며 "기존에는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은 학생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진로에서 실리를 많이 따지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한두 곳의 입시학원과 고교의 사례가 아니라 실제로 지난 5년간 수능 응시 인원의 변화를 살펴보면 자연계열 지원자 증가 추세가 뚜렷하다. 2011학년도 인문계열과 자연계열 응시생 비율은 63.1%와 36.9%였다. 하지만 다음해인 2012학년도에는 거의 정확하게 6 대 4 비중으로 변하더니 2013년도에는 인문계열의 60%대 비중이 무너지고 58.6%로 내려앉았고 자연계열은 40% 비중을 넘어 41.4%를 기록했다. 2015학년도 수능 응시자의 현황도 올해 6월을 기준으로 인문계열 59% 대 자연계열 41%로 파악되고 있다. 즉, 이공계 기피 현상이 사라지고 있다는 의미다.

"고등학교 문과생이 이과생보다 대학 진학이 어렵고 취업률도 낮다는 통계 결과가 나왔다"고 신학용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새정치민주연합)이 최근 밝힌 바 있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인문계열 수능 응시생은 33만7134명, 인문계열 대학 정원은 15만4227명으로 응시생 대비 경쟁률은 2.19 대 1이었다. 반면 자연계열 수능 응시생은 23만5946명, 대학 정원은 15만480명으로 경쟁률은 1.57 대 1이었다. 인문계열 대학 입시 경쟁률이 자연계열보다 높다는 것이다. 소위 국내 최고 명문대를 일컫는 SKY에 진학하는 데도 자연계열이 훨씬 유리하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의 자연계열(의·치의학 포함) 선발 인원은 2015년 전형 계획 기준으로 총 7539명으로 인문계열 4528명보다 3011명 더 많다. 즉, 올해 수능 응시생 수를 기반으로 계산해 보면 인문계열에서는 상위 1.3%에 들어야 SKY에 갈 수 있지만 자연계열에서는 상위 3.19%까지다. 즉 인문계열보다 자연계열에 명문대의 문이 훨씬 크게 열려 있다는 의미다.

'이공계의 부활'이라는 시대별 패러다임의 변화가 대입 지도를 바꾼 극명한 사례가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우선 서울대 수리과학부의 부상이다. 수리과학부는 고급 수학 인력을 양성하는 데 수학적 능력이 통계학·컴퓨터공학·물리학·사회학 금융 등 여러 학문 분야에서 실용적으로 발휘될 수 있어 최근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2014학년도 대학 입시에서 서울대 수리과학부의 커트라인이 535점(수능 표준점수 800점 환산 기준)으로 서울대 최고 합격선이 의예과(538점)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서울대 수리학과 커트라인은 이과 최상위권 학생이 몰리는 경희대 한의예과보다 합격선이 높아진 것이다.

또한 2013년도 전국 4년제 대학 이공계 취업률은 인문계열에 비해 23.6% 포인트나 높았다. 문과계열에 해당하는 인문계열(47.8%)·사회계열(53.7%)·교육계열(47.5%)의 취업률은 이공계인 공학계열(67.4%)·자연계열(52.5%)·의약계열(71.1%)과 큰 차이를 보였다

대학 내 인기 학과의 판도 변화

우리 사회에서는 한동안 이공계 기피 현상이 존재해 왔다. 그 이유는 우선 이공계에 진학하려면 수학·물리학 등 배우기 어렵고 수능 점수도 올리기 어려운 과목을 이수해야 했고 빠른 과학기술의 진보로 의학이나 법학 등에 비해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대학 졸업만으로는 전공을 살려 취업하기가 쉽지 않고 산업 현장에 배치될 확률이 높아 오피스 근무자보다 삶의 질 차원에서 더 낮게 취급됐었다. 이 밖에 법조나 금융 분야보다 보수가 적고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 직업의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환경적 요인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변호사·의사·금융전문가 등 전문직도 치열한 경쟁 체제로 들어섰고 더 이상 영원한 '철밥통' 직업은 자취를 감춰 가고 있다. 직업 위신의 서열화는 붕괴됐고 취업이 잘되는 전문 기술과 연구·개발 능력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되면서 '이공계의 부활', '이공계 프리미엄'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변화가 시대상을 잘 반영하는 인기 학과로 나타났고 서서히 입시에서도 반영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문·이과를 구분해 교육하는 시스템은 한국·일본 등 몇 개 국가에서만 볼 수 있는 기형적인 시스템이라는 비판이 있다. 문·이과를 구분하는 것은 학생의 학습 부담이나 적성·진로를 고려해 주는 제도가 아니라 교육비 절감을 위해 전인교육을 포기하는 반쪽짜리 교육제도라는 것이다. 과학적 소양이 부족한 문과 출신이나 역사와 철학을 모르는 이과 출신을 길러내는 절름발이 교육으로는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으로 지금까지 문·이과로 구분해 수능 위주 편식 학습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21세기 인재상이 '융합형'이어야 한다는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즉, 문과생은 이과적 지식을 갖춰야 하고 이과생도 문과적 소양을 겸비해야 한다. 이와 함께 음악·미술·체육 등에 관한 교육·영어 아닌 제2외국어 교육, 세계사 및 국사 교육 등을 강화해 창조적 사고관과 세계관을 넓히자는 것이다.

융합형 인재의 추구는 혁신의 대명사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DNA에는 기술만 있는 게 아니다. 애플의 기술은 교양(Liberal Arts)과 결합됐으며 인문학과 결합돼 우리 심장이 노래하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냈다"고 말한 다음부터 급물살을 탔다. 스티브 잡스가 던진 이 한마디의 위력은 대단했다. 이후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인문학을 첨단 과학기술에 융합하려는 시도가 여기저기서 물밀 듯이 일었다. 단, 기술 인재에게 인문학 소양을 심는 것이 인문학 출신이 기술을 이해하는 것보다 방법론적으로 더 효율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 교육부는 시대 변화를 반영해 고등학교의 문·이과를 '통합'하는 교육과정을 만들고 있다.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적 합리성의 균형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4년간 개정 작업을 거쳐 2021년 문·이과 통합형 수능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지난해 밝힌 바 있다. 내후년 교과서가 개발되면 검정 과정을 거쳐 2018년에는 고교에 새 교육과정이 도입될 예정이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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