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가 '5원' 올리자고 했다가 750명 해고될 뻔"

입력 2014. 8. 1. 09:51 수정 2014. 8. 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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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동환 기자]

[기사 수정 : 1일 오전 11시 57분]

"건당 고작 5원 올리는건데…. 750명이 해고 문자를 받고… 결국 또 저희가 양보한거죠."

진경호 우체국 위탁택배조합 위원장은 수화기 너머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친 목소리였다.

전국우체국 위탁택배조합은 지난달 31일 전국 23개 우체국 위탁업체들과 택배단가 협상을 타결했다. 택배 1건당 1030원에서 1035원으로 인상. 750명 조합원들이 해고 직전까지 내몰린 끝에 이뤄낸 성과다.

그나마 전라남도 광주 지역은 5원 인상도 얻어내지 못했다. 이 지역은 '합리적인 수준의 인상'이라는 문구가 대신 들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협상이 이뤄지면서 추석을 앞두고 예상됐던 '택배 대란'에 대한 우려는 사라지게 됐다.

"위탁업체 하는 일 없이 택배 1건당 100원씩 가져가"

우체국 택배기사들이 지역별로 택배 분류를 하고 있다.

ⓒ 김동환

우정사업본부의 우체국 택배는 민간 위탁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정본부가 23개 위탁업체에게 택배 업무를 주고 위탁업체는 택배기사들과 개별적으로 계약을 맺고 화물을 배달하는 식이다.

전국에서 택배를 나르는 택배기사들은 총 1837명. 모두 개인사업자 자격으로 위탁업체와 배달 계약을 맺는다. 화물을 옮길 때도 직접 구입한 차량을 이용한다. 현행법상 고용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법 보호도 받지 못하는 처지다.

이런 현실을 바꿔보자고 모인 택배기사 750명이 지난해 위탁택배조합을 결성했다. 지난해 택배 1건당 전국 평균단가는 985원. 조합 기사들은 "새벽 4시에 나와서 저녁 8시에 퇴근하면서 집에는 170만 원 정도를 가져간다"고 설명했다.( 관련기사 : 6년째 1위 우체국 택배, 비결은 '기사 쥐어짜기')

지난해 언론과 국회 등을 통해 이런 택배기사들의 열악한 처우가 알려지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10년가량 거의 동결 수준이었던 배달 단가도 올해는 수도권 기준 1030원으로 올랐다.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했던 조합 소속 기사들이 대부분 수도권에 모여있는 탓이다. 여기에 조합 기사들은 올해 7월 재계약을 앞두고 택배 건당 단가를 1050원으로 20원씩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우체국과 자신들 사이에 끼어 있는 위탁업체가 하는 일 없이 과도한 몫을 가져가고 있다는 취지였다. 조합 측에서는 "업체들이 우체국과 평균 1230원에 위탁계약을 맺고 있으며 1건당 100원의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부 위탁업체는 사무실도 없는데 중간에 끼어서 택배기사들의 택배단가를 깎아먹고 있다는 것이다.

위탁업체들은 단가인상 요구에 해고로 맞섰다. 7월 31일까지 재계약을 하지 않으면 조합 택배기사 750명을 해고하겠다는 것. 7월 30일에는 750명 전원에게 해고 문자도 발송했다. 양측은 여러 차례 협상 테이블에 앉았고, 기존보다 단가를 5원 올리는 절충안에 합의했지만 일부 업체의 반발로 합의는 없었던 일이 됐다.

조합기사들에게 건당 5원을 더 줄수는 없으니 해고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31일 자정 가까이에서야 가까스로 최종 합의가 이뤄졌다. 단가를 5원 올리되 광주 지역은 제외하는 내용이었다.

"택배기사 해고하면 집배원이 배달하게 할 것... 배달엔 차질 없어"

우여곡절 끝에 타결되긴 했지만 1800여 명 중 750명을 해고될 경우 자칫 추석을 앞두고 택배 대란이 현실화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진경호 위원장은 "마지막까지 임금인상을 요구했던 조합원 750명 중 500여 명은 인구가 밀집된 경인지역에서 일하는 기사들"이라고 설명했다.

우체국 별로는 서울 강남·중앙·성북·양천·마포·여의도·부평·부천·남인천·서인천·인천·안양·성남·용인수지·고양·일산우체국 등이 택배 지연 현상을 겪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우정사업본부는 협상 타결일인 31일 오후까지도 태연한 태도를 보였다.

우정본부의 한 관계자는 "배달이 차질이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협상을 해서 해결이 되지 않겠느냐"면서 "위탁택배 조합도 자기들이 배달 거부는 안 하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조합에 가입한 택배기사들은 지난 7월 1일부터 무계약상태에서도 이전과 동일하게 일을 해왔다. 우체국 택배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해고가 현실화되는 1일에도 이들은 각자 우체국으로 출근한다는 계획이었다.

우정본부 관계자는 "7월 26일에 긴급 상생협의회를 여는 등 원만하게 협상이 되도록 노력은 하고 있지만 사인간의 계약을 어떻게 해라라고 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우정본부는 그동안 업무에 불만이 많은 택배기사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위탁업체에 지시하는 등 실질적인 고용주로서 행세해왔다( 관련 기사 : [단독] 택배기사 울리는 우체국의 '교묘한 갑질').

그는 "만약 배달 거부가 일어나면 전국에 16000명 있는 집배원들과 비조합원 택배기사들을 비상근무 체제로 돌려서 배달에 차질이 없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집배원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무겁거나 부피가 큰 대형 택배는 배달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어떻게든 단가 인상은 막겠다는 것이다.

결국 우체국의 이런 태도에 손을 든 것은 조합 쪽이었다. 8월로 예고했던 대규모 집회 일정도 모두 접었다. 31일 협상 후 기자와 통화한 진 위원장은 "결국 그렇게 됐다"면서 "소비자들은 '택배 대란'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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