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난에 잇단 취소·연기.. 뮤지컬 산업 '빨간불'

유석재 기자 2014. 8. 1. 03: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곪은 상처가 터진 격이다."

지난 29일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의 갑작스러운 공연 취소 사태에 대한 업계와 관객의 반응이다. 이 뮤지컬은 지난 6월 말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막해 이날 오후 8시에 44번째 공연을 할 예정이었으나, 공연 1분 전 돌연 제작사인 비오엠코리아의 최용석 대표가 무대에 올라 큰절을 하며 관객에게 공연 취소를 통보했다.

공연은 30일부터 재개됐으나 인터넷에는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공연을 취소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 제작사 측은 31일까지도 공연 취소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배우와 스태프에게 지급해야 할 급여가 일주일 정도 밀렸고, 그중 일부가 당일 공연을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한 관계자는 말했다.

◇공연 취소·연기 잇달아

문제는 이 사건이 국내 뮤지컬 시장의 위기를 고스란히 드러낸 단면(斷面)이나 다름없다는 점이다. 기획사 관계자 A씨는 "배우에게 줘야 할 출연료가 밀리는 것은 종종 일어나는 일이지만, 지금까지는 '일단 무대에는 오르고 보자'고 했었다"고 말했다. 수십억대 제작비를 들여 대형 뮤지컬을 올리는 제작사들이 출연료조차 제때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자금 사정이 어렵다는 얘기다. 대표적 뮤지컬 제작사인 설앤컴퍼니의 설도윤 대표가 최근 "뮤지컬 시장이 비상시국이고, 제작사들은 '우리가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놨을 정도다.

최근에는 제작사가 거꾸러지는 일까지 일어났다. 중견 제작사인 뮤지컬해븐은 예정됐던 '스위니 토드' '키다리 아저씨' 공연을 취소한 직후인 지난 6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스위니 토드'는 유명 배우 B씨가 출연을 고사한 이후 주요 투자자가 투자를 철회했기 때문에 자금난을 겪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뮤지컬 '탑햇' '폭풍의 언덕' 등 올해 연기되거나 취소된 뮤지컬은 10편이 넘는다.

◇시장 커지며 공급 너무 많아져

국내 뮤지컬 산업은 2001년 라이선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크게 성공한 뒤 거대 시장으로 변모했다. 지난 10년 동안 시장 규모는 1000억원대에서 3000억원대로 3배 정도 커졌고, 최근 5년 동안 뮤지컬 제작 편수는 해마다 평균 12%씩 늘어났다. 지난해 한 해 동안 공연된 뮤지컬은 2500편에 달했고, 이 중 약 150편이 신작이었다. "뉴욕과 런던에 이어 서울이 세계 3대 뮤지컬 도시"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1일 현재 예술의전당('드라큘라' '브로드웨이 42번가'), 세종문화회관('모차르트!' '살리에르'), 국립극장('두 도시 이야기'), LG아트센터('프리실라') 등 여름 시즌 서울 주요 공연장에 올려진 작품은 모두 뮤지컬이다. 충무아트홀('싱잉 인 더 레인'), 블루스퀘어('캣츠'), 샤롯데씨어터('위키드'), 홍익대대학로아트센터('블러드 브라더스') 등 전용관에서도 뮤지컬이 공연되고 있다.

하지만 관객 수는 그만큼 늘지 않았다는 것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표 구매자의 80~90%를 20~30대 여성이 차지할 정도로 관객층이 편중돼 있고, 이 중 상당수는 한 작품을 여러 차례 관람하는 이른바 '회전문 관객'이 돼 착시 현상을 일으킨다. 제작사는 이들을 대상으로 매출을 올리기 위해 창작 뮤지컬보다는 해외 유명 작품을 수입하는 라이선스 뮤지컬을 선호한다.

◇"시장 구조조정 과정으로 봐야"

위에서 언급한 10개 작품 중에서 '살리에르' 1편을 빼고는 모두 외국산(産)이다. 총 수입의 최고 10%에 달하는 비용이 원작자에게 가는 데다, 캐스팅 경쟁이 불붙어 인기 배우의 1회 출연료가 최고 수천만원까지 올랐다. 이러다 보니 제작사의 수익 규모는 줄어들어 최고 13만~14만원인 티켓 값을 내리지 않게 되고, 이것이 새로운 관객 창출을 막는 악순환이 생긴다. 세월호 참사는 공연 소비 심리를 위축시켜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뮤지컬 산업의 위기를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윤호진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장은 "과도하게 커진 뮤지컬 시장이 구조조정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며 "결국 질 좋은 작품을 내놓고 관객 입장을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는 제작사가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