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이순신은 진짜 13척으로만 싸웠을까

뉴스엔 입력 2014. 7. 31. 12:00 수정 2014. 7. 3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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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김형우 기자]

●"실로 천행(天幸)이었다"

이순신은 명량대첩의 승리는 천행, 즉 하늘이 내려준 행운이라고 말했다. 누가보아도 패배가 확실한 전투, 누가 보아도 이길 수 없을 듯 하던 전투를, 승리를 이끈 이순신 본인도 믿기 힘든 승리였다.

영화 '명량'이 개봉했다. 이순신이 1597년 명량 율돌목에서 일본 수군을 격파한 전투를 그렸다. 7월 30일 개봉 첫 날 68만2,882명의 관객을 동원, 역대 최고의 오프닝 신기록과 역대 최고의 평일 스코어 신기록을 모두 경신하는 기염을 토했다.

명량해전, 명량대첩은 이순신의 수많은 전투사에서도 가장 극적인 싸움으로 뽑힌다. 적군과의 숫적열세는 상상을 초월한다. 학계에서도 이 전투를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겨두고 있다. 조류의 흐름이 바뀌기를 기다리며 적군을 유인해 섬멸했다는 설이 가장 많이 힘을 얻고 있는 가운데 바다 밑에 철쇄를 깔아놨다는 설, 백성들을 바닷가로 몰려나오게 해 군사의 숫자가 많아 보이게 하며 적군을 혼란스럽게 했다는 설 등 여러가지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역사 속 명량해전은 어떻게 그려졌을까. 조선수군의 배는 13척, 일본수군의 배는 133척에서 최대 333척까지 보고 있다. 최소 10배에서 30배에 다르는 전력차다.

명량해전을 가장 잘 자세하게 서술한 책은 이순신이 쓴 난중일기다. 난중일기 속 명량해전은 치열함을 넘어 초연함까지 느껴지게 한다. 전투가 시작한 후 오랜시간 적선과 대치, 전투를 벌인 조선수군은 단 1척이다. 대장선, 즉 이순신이 타고 있는 배만이 전선에 나가 전투에 임했다. 다른 배들은 겁을 먹고 멀찌감치 달아나 때를 봐 '도주'할 모양새를 취했다.

이순신은 전투 전날 그 유명한 '필생즉사, 필사즉생'이란 말로 사기를 붇돋았다. 살려고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라는 말이다. 하지만 전투에 나선 조선수군의 공포는 대단했을 터다. 뒤로 빠져있던 조선수군의 모습만 보더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법하다.

"나는 노를 급히 저어 앞으로 돌진하며 각종 총통을 마구 쏘아 대니 탄환이 나가는 것이 바람과 우레처럼 맹렬하였다. 군관들은 배 위에 빽빽이 들어서서 화살을 빗발치듯 어지러이 쏘아 대니, 적의 무리가 저항하지 못하고 나왔다 물러갔다 했다"

이순신이 적선을 공격하던 용맹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급박함 역시 베어나오는 난중일기다.

"그러나 적에게 몇 겹으로 둘러싸여 형세가 장차 어찌 될지 헤아릴 수 없으니, 온 배안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돌아보며 얼굴빛이 질려 있었다"

이순신의 대장선은 오래 적선에 둘러쌓인 채 위급함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순신의 대장선이 적선을 계속 격파하며 버티는 모습을 보자 뒤로 물러서 있던 조선 수군의 마음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전선으로 돌아온 배는 중군장 김응함과 거제현령 안위의 배였다.

이순신은 안위에게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네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어디 가서 살 것이냐?"고 고함쳤고 김응함에겐 "너는 중군장이 되어서 멀리 피하고 대장을 구하지 않으니, 그 죄를 어찌 면할 것이냐? 당장 처형하고 싶지만 적의 형세가 또한 급하므로 우선 공을 세우게 해주마"라고 다그쳤다.

결국 조선수군이 모두 전선에 투입되고 적장 구루시마 미치후사의 목을 베면서 전세는 급격히 조선 수군 쪽으로 기울었다. 후퇴하는 적선을 추격하며 숱한 적선을 침몰시켰다.

●"도대체 어떻게 이겼는지 이해할 수 없는" 설 들만 난무하는 명량대첩

물론 육전과 달리 수전에서 조선이 일본에게 승리를 자주 이유는 있다. 현대에서도 지리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조선 수군은 자신들의 물길과 지리를 훤히 알고 있어 이들을 유인하거나 좋은 길목을 자리잡기에 유리했다. 더욱이 조선수군의 판옥선은 물길이 빠르고 조수간만의 차이가 큰 서해, 남해에 유리하게 만들어졌다는 점은 큰 이득이 됐다.

일본의 배들은 대부분 속도가 빠른 대신 안정성이 매우 불안해 조류가 빠른 조선 해안에서 위력을 발휘하기 힘들었다. 더욱이 일본의 배들은 대포를 쏠 경우 판옥선과 달리 배가 넘어갈 정도로 반동을 견디기 힘들었다. 결국 포격전이 안정적으로 이뤄지는 조선수군과 달리 일본수군은 육박전을 할 수 밖에 없는데다 배의 크기도 판옥선이 다소 커 전투에서 불리했다.

하지만 이 역시 전력의 차이가 어느정도 비율이 맞아야 가능하다. 명량해전의 경우, 현재까지도 '설'들만 난무할 정도로 '도대체 어떻게 이겼는지 이해할 수 없는' 전투다.

명량해전의 결과는 향후 정유재란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보급에 애를 먹고 있던 일본군은 결국 수륙양진 작전을 포기해야했다. 육로를 통한 보급이 사실상 어려워진 일본군이 바라보던 것은 서해수로를 통한 보급이었는데 이 것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이후 일본군은 경상남도 일대로 내려와, 결국 후퇴 수순을 밟게 됐다.

(사진=영화 '명량' 포스터/CJ엔터테인먼트 제공)

김형우 cox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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