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폭격한 군인들, 마지막 한명까지 "후회 없어"

뉴욕 2014. 7. 3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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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쯤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 거대한 버섯구름이 일었다. 원자폭탄이 세계 최초로 실전에 투하된 지 43초 만에 폭발한 것이다. 폭탄을 투하하고 기지로 회항하던 미군 B29 폭격기 일명 '에놀라 게이' 안에서 환성이 터졌다. 당시 항법사로 탑승했던 24세의 테어도어 판커크 중위는 "하나님, 폭탄이 제대로 터져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

승무원 12명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였던 판커크가 28일 향년 93세로 사망했다. 그는 참상을 목격한 후 반핵주의자로 변했다. 2005년 AP통신 인터뷰에서 "전쟁과 원자폭탄으론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이 원폭 투하에 가담한 일에 대한 사과나 유감의 말은 끝내 그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는 생전에 "원폭 투하는 분명 전쟁을 빨리 끝내 더 이상의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한 차악(次惡)의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일본 본토로 전선이 확대되는 '최악'을 막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일본은 그동안 일본이 부도덕한 수단의 피해국이란 점을 인정받기 위해 '에놀라 게이' 승무원을 상대로 집요하게 사과와 유감 표명을 요구해 왔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마지막 생존자의 죽음으로 '심리적 보상'의 여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승무원들은 생전에 "만일 원폭 투하 대신 일본 본토를 공격했다면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조지 캐런 하사·후미 기총수)이란 식으로 원폭 투하로 전쟁이 빨리 끝나 더 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2007년 92세로 사망한 기장 티베츠는 "승무원 가운데 원폭 투하에 참여한 사실을 후회했던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일본은 기장의 아들에게 사과의 말을 듣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아들 역시 강경한 히로시마 원폭 불가피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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