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한 계부 공개 말라" 요청에 엇갈린 판결

조원일 2014. 7. 30.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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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1심 판결 깨고 '7년간 신상정보 공개' 결정

1심선 피해자 의사 등 고려 2차 피해 우려해 공개 않기로

항소심 재판부 이례적 직권 판단

"불특정 다수인에 재범 위험 친족범죄 명시 않고 공개 타당"

한국일보 자료사진.

계부에게서 수 년에 걸쳐 성폭력을 당한 청소년이 "(신원이 드러나는) 2차 피해가 우려된다"며 계부의 신상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다면 법원은 어떤 판결을 내려야 할까. 1심과 2심 재판부는 전혀 다른 결정을 내렸다.

서울고법 형사8부(부장 이규진)는 딸을 성폭행한 혐의(성폭력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친족관계에 의한 강간) 등으로 기소된 김모(35)씨에게 피해자의 의사 등을 고려해 신상 공개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 1심 판결을 파기, "7년 간 신상정보 공개ㆍ고지"를 주문했다고 29일 밝혔다. 선고된 형량은 징역 7년에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로 1심과 동일했다. 재판부가 직권으로 신상정보를 공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피해자 A(당시 7세)양은 2005년 4월 어머니가 김씨와 결혼하면서 인천 남구에 소재한 김씨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됐다. 김씨는 A양의 어머니에게 자주 폭력을 행사했고 A양에게 김씨는 유일하게 가족을 부양하는 권력자이자 공포의 대상이었다. 김씨는 A양이 피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쉽게 말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2007년 겨울 잠자던 A양을 강제 추행한 것을 시작으로 2012년 10월까지 어머니가 없는 틈을 이용해 수 차례 A양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A양과 김씨의 관계 및 사건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 A양의 의사에 비춰 김씨의 신상정보를 공개ㆍ고지가 오히려 A양에게 또 다른 피해를 가져다 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아동ㆍ청소년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아동ㆍ청소년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해 이름과 나이, 주소 등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지만 피고인이 아동 또는 청소년이거나 그 밖에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신상정보를 공개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김씨와 A양 어머니 사이에 자녀가 있어 김씨와 A양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됐다고 볼 수 없다(A양에 대한 재범이 우려된다)"며 "김씨가 장래 불특정 다수인에 대해 성폭력범죄를 다시 범할 위험성이 있어 공개ㆍ고지 명령 부과는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피해자의 요청이 있었다 해도 김씨의 재범위험성과 정보공개로 인한 예방 효과 및 피해자 보호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공개하는 것이 맞다고 본 것이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성폭력범 신상을 공개할 때 친족 관계를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은 모두 제외하고 공개한다"며 "친족간의 강간이라도 그냥 강간이라고만 표기한다"고 설명했다. 신진희 성폭력피해자 전담 변호사는 "신상공개 내용에 친족간 범죄가 명시되지 않는 상황에서 피해자의 의사만을 고려해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재범위험을 줄인다는 법 취지에 어긋난다"며 "성범죄자가 특정될 경우 피해자가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는 소규모 지방사건 등 극소수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개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밝혔다. 신 변호사는 "검사가 신상 공개를 청구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재판부가 판단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재판부가 직권을 행사한 굉장히 이례적 판결"이라고 덧붙였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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