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층의 영웅' 남학생의 일갈 "선원들 1600년형도 부족하다"

입력 2014. 7. 30. 00:43 수정 2014. 8. 11.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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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강민수,박소희 기자]

[기사 대체 : 31일 오전 1시]

Q학생(남, 기자 주 - 발언순서에 따라 알파벳순으로 명명)은 세월호 사고가 나던 그 날(4월 16일), 그 시각, 4층 중앙 좌현 쪽 복도의 '영웅'이었다. 그는 29일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401호 법정에서 제일 주목을 받았다.

4층 중앙 로비 왼쪽 레크리에이션룸 부근에서 사고를 당한 Q학생은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따르지 않고 "신발과 양말을 벗고" 뒤쪽 좌현 복도로 올라갔다. 그렇게 이동한 복도에는 2학년 2반 여학생들 숙소가 이어졌고, 그곳에서 그의 활약이 시작됐다. 다른 학생들과 달리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그는 여학생 방마다 들어가 구명조끼를 꺼내 전달했다.

또 자체 판단으로 여학생들에게 위로 올라가 헬기를 타겠느냐고 제안했다. 손을 든 학생들을 차례로 위로 올려줬다. 이 제안을 받아들여 우현으로 탈출한 여학생들은 앞서 증언한 F, G, I학생들이었다. 다행히 위쪽에는 커튼과 호스를 내려주는 어른들이 있었다.

그는 또박또박 상세히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문자를 보낸 사실까지 밝히며 정확한 시각을 진술했다. 그러던 그는 법정의 피고인으로 있는 선장과 선원들에 대해 말할 때는 "정말…, 어른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었던 것 같다"며 울먹였다.

Q학생의 탈출 상황 증언을 보다보면 과연 누가 어른이고 누가 청소년인지 되묻게 된다. 검사와 변호사들도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 "증인 판단이었는가"라고 되물으며 "굉장히 상황 판단이 뛰어나고 용감하다"고 말했다.

기록에 따르면 Q학생은 당시 B-9번방의 '방장'이었다. 그는 지난 15일 생존 학생들의 1박 2일 도보행진을 시작할 때 학생 대표로 앞에 나와 "친구들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 달라"는 편지를 낭독하기도 했다.

다음은 Q학생의 법정 증언을 정리한 것이다.

"창문으로 컨테이너 떨어지는 걸 보고 예삿일 아니라고 봤다"

[검찰 측 신문]

"식사를 하고 B-11번방에서 자고 거기에 짐이 있어서 지갑을 꺼낸 뒤에 레크리에이션룸과 좌현 출입문 사이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있던 곳에 문과반 남자 친구들이 많이 있었는데, 배가 기울 때 키즈룸에 있던 사람, 물건 이런 게 레크리에이션 룸으로 다 쏟아져 내렸다. 굉장히 아수라장이었고 사람들이 다 엎어지고… 기절한 사람도 있었다. 대략 30명 정도 있었다."

"레크리에이션룸 근처에 있을 때가 오전 8시 52분 정도였다. 배가 기울자마자 키즈룸 쪽에서 사람하고 물건이 많이 떨어졌다. (물건이) 다리로 떨어져서 맞고 사람도 많이 떨어져서 아수라장이었다. 친구들은 그냥 있을 수 있는 일인 줄 알고, 배를 많이 안 타봐서 그냥 대기했다.

나는 창문으로 컨테이너가 떨어지는 걸 보고 예삿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벽을 기어올라서 S-5쪽 복도(4층 중앙 좌현 복도)로 왔다. 올라갈 때 경사가 있어서 신발과 양말을 모두 벗고 벽에 튀어나온 부분을 밟고 갔다. F-7번방부터 B-23번방에 있던 2반 여자애들이 벽에 기대 앉아 있었다. 그중에 F-7인가 8번방은 일반인 남자 투숙객이 있었다.

올라오는 게 힘들어서 S-5번방 쪽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 통로에서 여자 승무원을 봤다. 배가 기울고 해서 굉장히 힘들어 했다. 레크리에이션룸으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그분이 스타킹을 신고 있어서 나오자마자 복도에서 혼자 넘어졌다. 그리고 나는 계속 앉아 있었는데, B-23번방 쪽에서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는데 무전기를 든 남자가, 어두운 계열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무전기에 '좌현이 어떻네' 하면서 현재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 이건 내가 확실하게 기억한다. 전화기 아니고 무전기였던 걸로 확실히 기억한다. 방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했다.

여자인 친구들이 구명조끼를 못 꺼내고 있어서 들어가서 꺼냈다. 그중에 남자 투숙객 있던 방에는 안 들어갔다. 나머지 방 전부 들러서 구명조끼 꺼내고 B-23번방 쪽까지 도착했다. 좌현이 기울었기 때문에 등지고 설 수 있는 상황이었다.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고개를 돌려서 좌현을 봤더니 수위가 계속 높아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못 하고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맞은편 B-28번방 쪽 복도에서 일반인이 침대마다 커튼 있는 것을 끊어서 로프를 만들어서 던져주셨다.

남자애들은 로프 없이 올라갈 수 있었지만, 여자애들은 절대 못 올라갈 것으로 판단했다. 또 그분들이 갑판으로 나가면 헬기를 탈 수 있다고 했다. 당시 헬기 소리도 들렸다. 그래서 내가 여자애들한테 물었다. 올라가서 헬기를 탈 수 있는 사람만 먼저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먼저 갈 수 있다고 한 애의 허리에 로프를 묶어서 한 명 한 명 올려 보내기 시작했다. 중간에 커튼이 끊어져서 (어른들이) 소방호스로 다시 로프를 만들어서 내려주셨다. 내가 한 명 올려 보낼 때마다 좌현 갑판을 확인했는데, 수위가 계속 차오르고 있었다. 벽에 거의 물이 다다랐을 때, 출입구 쪽에 올라왔을 때에도 (여자애들을) 계속 올려 보내고 있었다.

"여학생들 위로 올리는데 위에서 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인지 모르겠는데, 우현 쪽에서 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남자애들은 올라갈 수 있지만 여자애들은 못 올라간다고 생각했다. 로프로 올리는 방법은 포기하고 남아있던 여자애들한테 내가 원래 있던 레크리에이션룸 쪽(기자 주 - 당시 여학생들이 있던 위치에서 선수 쪽으로 가야 함)에 좌현 갑판으로 나가는 출입문 있으니까 그리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동하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으로 로프를 타고 올라왔다.

올라오고 나서도 혹시나 복도에 남은 애들이 있을까봐 계속 소리를 질렀다. 레크리에이션룸 쪽으로 가라고 했다. 그때는 이미 B-23번방(좌현) 옆 쪽 출입구로는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B-28번방(우현) 근처에는 남학생과 일반인 서너 명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올려 보낸 애들이 우현 갑판 계단에 있었다. 그땐 배가 70도 이상 넘어간 상태였다.

안전막 같은 걸 밟고 서 있는데, 그때 해경 한 명을 처음 봤다. 우리는 해경이 어떤 조치를 하기를 계속 기다렸다. 해경이 한 명씩 올라오라고 해서 계단 쪽에서 배 벽면으로 기어 올라가서 헬기를 타고 탈출했다. 다른 선원이 도와주거나 안내해준 적은 없었다."

"객실에 있던 친구들은 창문을 보지 않는 이상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지 몰랐다. 근데 나는 처음 배가 기울었을 때 레크리에이션룸을 등진 상태에서 창문 밖을 보는데, 심각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B-23번방 쪽 복도에서 본 여자 승무원은 봤냐는 질문에) 기억나지 않는다. 한 남성 승무원이 무전기로 말하는 것은 들었는데 좌현 어떻게 기울었고, 방이 어떻고 했다. 완벽히 기억은 안 난다. 하지만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었다. 보고하는 말투였다. (양대홍 사무장 사진을 보고는) 검은색 계열의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있어서 이분은 아닌 것 같다."

"배가 좌현으로 기울었기 때문에 모든 선실에 들어가려면 문은 쉽게 열 수 있었다. 문이 밖에서 안으로 미는 방식이다. 방 들어가면 창문 밑에 구명조끼가 있다. 문 열고 떨어지듯, 미끄러져서 내려가야 구명조끼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 앞에 캐리어가 있으면 치우고 문 열어서 구명조끼를 꺼냈다.

기억으로는 방마다 성인용 8개, 아동용 1개 있었는데 일단 다 꺼냈고, 내가 들고 올라갈 수 없어서 문 앞에 앉은 여학생한테 받아달라고 했다. 못 받으면 다시 던져서 전달했고, 그 뒤에 침대 같은 구조물 잡고 올라올 수 있었다. (방송과) 상관없이 하다가 구명조끼 꺼내는 도중에 구명조끼를 입고 대기하라는 방송을 들었다. 통로에선 여학생들이 우현 쪽에 엉덩이 두고 방문 쪽에 발을 두는 형식으로 있어서, 그 발을 비켜달라고 하면 복도가 협소해도 벽을 따라 움직일 수 있었다. 안전바도 있었고."

"(친구들에게 구명조끼 건네준 시각을 묻자) 사고 발생한 게 8시 52분, 그 후 2~3분 있다가 움직여서 S-5번방에 도착했을 때에는 (오전) 9시 좀 덜 됐을 것 같다. B-23번방에 있는 구명조끼 다 꺼낸 뒤 문자 보냈는데, 그게 (오전) 9시 27분이었다."

초기 약 20여 분간 여러 방을 드나들며 구명조끼를 꺼내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모습.

ⓒ 해양경찰청 제공

"레크리에이션룸에서 좌현으로 보면 갑판으로 나가는 문이 하나 있다. 그쪽에 있는 학생들은 대부분 그쪽으로 나갈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왠지 위로 올라가야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S-5번방 쪽 복도에 도착하자마자 본 건 여성 승무원(기자 주 - 고 박지영씨)과 여학생들이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아무래도 창문이 안 보이니까 심각성을 모르고 노래 부르고 동영상 찍고 있었다. 내가 안 하면 그냥 그대로 있을 것만 같은 생각에 움직였다. 이때 선원이나 선장은 없었다. 로프 잡고 갑판으로 나가는 출입문 쪽에서야 해경을 만났다. 친구들에게 헬기 탈 사람 먼저 나오란 것도 내 판단 하에 이야기했다. 무서워서 못 가는 친구도 있을까봐 그렇게 말했다."

"어…, 부모님에게 항상 괜찮다고는 말하는데…, 사실 학교에서도 그렇고 병원에서도 그렇고 상담 박사님에게 치료를 받는데…,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선원들의 처벌 정도를) 희생자 명수로 계산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1600년형을 받는다고 하는데 사실 좀 아쉬웠다. 1600년은 좀 부족한 것 같다. 가감 없이 필요한 만큼 형벌 주시면 좋을 것 같다."

"음… 어디를 가든, 학교에서도 그랬고 우리 학생들을 사고 이전처럼 평범하게 대해달라는 말을 항상 하곤 한다. 그걸 지켜주는 분들이 있다. 사고에 대해 묻지 않지만 안타까운 시선 보내는 분도 많다. 그런 걸 평생 끌고 가야할 것 같아 굉장히 두렵다. (선원들과 선장은) 굉장히 밉다. 정말 합당한 형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법을 잘 모르지만, 그래도 그건 정말…, 어른으로서…, (울먹이며)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었던 것 같다."

"내가 안 하면 그냥 그대로 있을 것만 같아 움직였다"

[변호인 측 신문]

"기억으로는 S-5번방 방은 학생들이 사용 안 했고, 나머지 방 중 하나는 남자 일반인 투숙객이 사용했다. B-23번방~F-7번방은 2학년 2반 여학생, 기억으로는 (복도에) 30명 정도 있었다."

"마지막 학생 끌어올리고 내가 올라가기 전에 한 번 더 레크리에이션룸 쪽으로 나가라고 했다. 올라가서도 다시 한 번 말했다. 그때 내 시야에서 볼 때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할 수 없어서 누가 움직이고 안 움직이는지 볼 수가 없다. 헬기 소리 때문에 소리도 못 들었다. 그때까지는 복도에 아직 물이 안 찼다."

"문자 보낸 이후에 좌현 쪽 바다를 봤을 때엔 물이 갑판으로부터 몇 미터 떨어져 있었다. 그래도 구명보트나 해경이 보였다면 (애들한테) 전부 (바다로) 떨어지라고 했을 거다. 왜냐하면 아무도 안 보였다. 나는 오로지 헬기 소리만 들었고, 바다 쪽에서 어떤 구조 활동이 벌어지는지 몰라서 바다로 떨어지라고 할 수 없었다."

"해경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한 명인지 두 명인지도…, 당시 갑판에 몸에 딱 붙은 검은 옷 입은 짧은 머리 아저씨가 서 있었다. 해경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위치에선 안쪽을 보지 못 한다. 처음에 해경은 갑판 계단에 있었고, 출입문 쪽으로 와도 꺾어진 부분 있어서 시야가 안 나올 거 같다. 헬기 소리도 크게 들려서 B-23번방과 B-28번방 쪽에서 소리를 쳤어도 못 들었을 것 같다. 옆 사람과 대화하기도 힘들어서 소리쳤고 바람도 많이 불어서 눈을 뜨기 힘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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