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아이들은 요즘 '나 홀로 미국에'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입력 2014. 7. 29. 11:30 수정 2014. 7. 2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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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열세 살인 로빈 툴리오 군. 중앙아메리카 최빈국 온두라스가 고향인 이 소년은 10년 전 미국에 밀입국해 가정부로 일하던 어머니의 주선으로 최근 멕시코 국경을 넘어 미국에 들어가려다 붙잡혔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밀입국 전문 브로커까지 동원했지만 아들은 국경을 넘지 못하고 체포됐고, 지금은 온두라스로 추방된 상태다. 툴리오 군은 "나처럼 부모를 동반하지 않은 어린이는 밀입국하다 체포돼도 미국 정부가 관대히 봐주던 정책이 곧 사라질 것이라 생각한 엄마가 일을 주선한 것이다"라고 미국 언론에 밝혔다.

불법 이민자가 1200만명에 이르는 미국이 이번에는 툴리오처럼 아동 밀입국자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후 최근까지 부모를 동반하지 않은 채 홀로 멕시코와 접한 미국 남부 국경을 통해 밀입국하려다 적발된 아동과 청소년 수가 5만7000명을 훌쩍 넘어섰다. 이런 추세라면 내년에는 13만5000명까지 급증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텍사스 주를 비롯한 남부 국경지대의 임시 수용소는 넘쳐나는 밀입국 아동으로 이미 포화상태다.

미국 국경 검문당국의 집중 단속에도 과테말라·온두라스·엘살바도르 등 중앙아메리카 출신 어린이들의 밀입국 행렬이 끊이지 않으면서, 이 문제는 단순히 불법 이민 차원이 아닌 심각한 인도주의 쟁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미국 정부 처지에서도 어린이를 무조건 추방하기는 어렵다.

ⓒEPA 미국 불법 이민자는 1200만명에 이른다. 위는 텍사스 주의 국경수비대원들에게 검거된 밀입국자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듯 갤럽이 최근 발표한 여론조사를 보면 아동 밀입국을 비롯한 이민자 문제가 일자리·의료복지 등을 제치고 미국인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사실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 출신의 밀입국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달라진 점은, 부모를 동반하지 않은 '나 홀로' 밀입국 어린이들이 국경 지대로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여론은 그 원인이 미국의 관대함 때문이라고 꼽는다. 미국 정부가 미성년 자녀를 데리고 국경을 넘는 여성의 경우 강제추방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밀입국 아동이 늘어난 까닭은 해당국의 치안 불안과 취약한 경제 사정 때문이지 미국이 관대하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세실라 무노즈 백악관 국내정책담당 국장은 "이들의 밀입국을 부추기는 건 출신국의 폭력과 공포, 열악한 경제 조건이다"라고 말했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온두라스의 경우 주민 10만명당 살인 사건이 최근 90.4명에 달해 10년 전보다 세 배나 증가했다. 엘살바도르도 41명에 달한다. 그러면서 밀입국자가 늘어났다. 불법 이민 문제 전문가인 엘리자베스 케네디는 < 뉴욕 타임스 > 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면담한 미국 내 엘살바도르 학생 362명 가운데 무려 60%가 조국의 폭력조직과 범죄를 피해 밀입국했다고 밝혔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에 밀입국하려다 적발된 메이노르 두본(17) 군은 < 뉴욕 타임스 > 와의 인터뷰에서 "온두라스에 살면 언제 폭력단에게 살해될지 모른다. 나도 폭력단에 가입할 것을 강요받았지만 며칠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한 뒤 밀입국을 결심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AP Photo 지난 6월20일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는 사람들이 화물칸 위로 올라타고 있다.

미국 정부 역시 밀입국 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본 처방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2008년 이후 중남미 국가들의 범죄 퇴치 프로그램에 6억4000만여 달러를 지원해왔다. 지난 6월에는 조지프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중앙아메리카를 순방하면서 아동 밀입국과 관련한 각국의 극심한 치안불안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불법 이민자 구제안 발표하려던 오바마 '당혹'

더욱이 지난 몇 년 동안 미국 이민당국이 밀입국 아동들에게 관대해진 것은 통계적으로 확인된다. 2013년 오바마 행정부가 추방한 중앙아메리카 출신 밀입국 아동 수는 2008년에 비해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난해 엘살바도르로 추방된 밀입국 아동 325명 가운데 미국에서 추방된 어린이는 불과 22명뿐이다. 이러다 보니 중남미 국민들 사이에선 "미국이 여성과 어린이에 대해선 국경 문호를 개방했다"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실제로 온두라스·과테말라·엘살바도르 등 미국과 직접적으로 국경을 마주하지 않은 중앙아메리카 출신 어린이와 청소년, 어머니들은 일단 적발되면 추방 대신 임시 수용소로 보내진다. 이는 조지 W. 부시 공화당 행정부 말기인 2008년 하순에 통과된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법'에 근거한 것이다. 이 법에 따르면, 멕시코와 캐나다 이외의 미주 국가 출신 어린이들이 밀입국하다 적발되면 본국으로 추방하는 대신 국토안보부로 넘겨져 필요한 보호 조치를 받아야 한다. 이들은 임시 수용소에 머무르는 동안 미국 내 합법적 체류에 필요한 법률 조언을 받을 뿐 아니라 미국 내 가족 친지를 찾아 재회할 수도 있다. 청소년의 경우, 미국에 부모가 있으며 조국의 폭력조직을 피해 밀입국했다는 사실만 증명하면 풀려나기도 한다. 일단 석방되면 이들은 비록 불법 체류자 신분이지만 미국 내 원하는 거주지에 살며 일자리를 구하고 학교도 다닐 수 있다. 미국 법무부는 최근 이런 밀입국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100명에 달하는 변호사를 고용한 상태다. 한마디로 밀입국 아동들을 추방하기보다는 보호하는 데 중점을 둔 법안인 셈이다.

최근 밀입국 아동 문제로 가장 곤혹스러운 사람은 오바마 대통령일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1200만 불법 이민자를 구제하기 위한 '포괄이민개혁법안'을 제출한 바 있으나, 이 법안은 이미 공화당의 반대로 좌초되었다. 그래서 7월 말까지 행정명령 형식으로 불법 이민자 구제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합법 서류가 없는 불법 체류자 수백만명에 대해 추방을 유예하고 노동 허가를 내주는 것이 골자다. 이런 상황에서 밀입국 아동 문제가 뜨거운 정치 이슈로 떠올라버렸다. 그럼에도 오바마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강행할 기세였으나 공화당 측의 탄핵안 발의에 빌미를 줄 수도 있다는 참모진의 경고에 따라 주춤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일단 국경수비대 강화와 임시 수용소 확충 등을 위해 의회에 37억 달러 규모의 긴급 예산을 요청했다. 최근 아동 밀입국 급증 사태에 대해서는 부시 행정부의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법'에 그 책임을 돌리고 있다.

정치 분석가들은 연방 하원의원 전원과 상원의원 3분의 1을 뽑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오바마가 민주당 표밭이라 할 수 있는 히스패닉 유권자들을 감안해 아동 밀입국을 전면 차단하지는 않으리라 본다. 그러나 공화당은 이번 아동 밀입국 문제를 오바마 이민개혁 정책의 실패로 규정짓고 선거 때까지 총력전을 벌일 태세여서 논란이 뜨거워질 전망이다.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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