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파리 여행자, '꽃할배' 이서진 덕 봤다

2014. 7. 28.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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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현지 기자]

"자기, 혼자서 미술관에 잘 찾아갈 수 있겠어?"

오랑주리 미술관(Musee de l'Orangerie) 가던 날, 남편은 나에게 반나절이라는 자유 시간을 허락했다. 3살 반짜리 아들과 미술관을 관람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우리는 익히 알고 있었다.

"가다가 길 잃어버리면 거기서 쉬다가 오는 거지 뭐."

목적지 근처에서도 길을 헤매던 적이 수 차례였고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남편은 나의 단독 행동이 내심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그런 남편의 걱정을 뒤로한 채, 혼자서 온전히 파리를 즐길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내 마음은 이미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파리 도심 한복판에서 길 잃다

파리의 걷다 보면 가장 많이 발견하게 되는 노천 카페들

ⓒ 김현지

스마트폰만 있으면 내비게이션을 이용해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인터넷이 될 때만 가능한 이야기이다. 아일랜드 핸드폰을 파리에서 로밍해 사용할 경우, 1메가 당 55센트가 적용된다는 텍스트 메시지를 보고 나는 파리에서 대개 종이 지도에 의존했다.

때때로 남편은 데이터 요금이 그렇게 비싼 게 아니니 내비게이션을 사용하자고 설득했지만 숫자에 약한 나는 앞뒤 따지지 않고 남편 이야기를 묵살한 채 종이 지도만 고수했다. 결국 비싼 핸드폰은 시계로 전락하고 말았다.

혼자서 파리 시내를 여행하는 날도 어김없이 지도를 들고 지하철을 탔다. 파리 전철은 서울보다 구간 간격이 더 좁아 지하철만 잘 찾으면 원하는 목적지에 쉽게 도착할 수 있다. 남편에게 걱정 말라고 호언장담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내릴 역이 공사중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바쁘게 챙겨온 지도는 파리 외곽까지 표시된 지도라 작은 도로나 지하철 정보는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목적지 다음 역에서 내렸고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한 시간여 가까이 그 근처를 배회했다.

도심의 도로에는 다양한 종류의 차들이 즐비하다. 이곳은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중심지였고, 누군가에게는 여행의 중심지였다.

ⓒ 김현지

"길이 끝나는 곳에 길은 다시 시작되고, 그 길 위로 희망의 별 오를 테니……"

시인 백창우의 말처럼 머무르지 않고 걸어가는 이에게는 또 다른 길이 열리는 것일까? 내가 원하던 목적지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파리의 한복판에 서 있고 그곳을 걷고 있었다. 굳이 원하는 목적지를 찾지 못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는 순간 내 발걸음은 가벼워졌고, 여행은 다시 자연스러워졌다.

파리는 건물이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하다. 그래서 나같은 길치에게 같은 장소를 뺑뺑이 돌리기에 안성맞춤인 도시다. 그렇게 목적도 없이 파리 시내를 걷다 보니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맛집을 검색할 힘도, 능력도 없었다. 보이는 곳 어디라도 들어가자 싶어 걸어가던 중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코린트식 기둥이 세워진 건물이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어딘지 알 것 같았다. 2010년에 만들어진 영화 < 투어리스트(TheTourist) > 의 장소이자 < 꽃보다 할배 > 에서 이서진씨가 음식값이 싸다고 들어갔던 그곳 아닌가! 파리 여행을 가기 전에 혹시나 하고 챙겨본 방송이 이렇게 유용할 줄이야!

▲ Cafe Le Nemours

2010년, 안젤리나졸리가 주연한 영화 < 투어리스트 > 의 첫 배경지이자 < 꽃보다 할배 > 의 촬영지였던 유명한 카페

ⓒ 김현지

평일 낮이었지만 테라스는 만석이었다. 이서진씨가 단순히 '싼 곳'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나름 역사와 전통을 가진 유명한 레스토랑이기 때문이다.

카페에 대한 정보 없이 메뉴판에 있는 토스트 하나를 주문했다. 물가가 비싼 파리에서 10유로가 채 되지 않는 금액은 여행자들의 지갑을 쉽게 여는 가격이다. 하지만 토스트를 10유로에 먹었다고 생각하니 아주 싼 가격은 아닌 듯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곳은 물가 비싸기로 소문난 파리인걸!

▲ 프랑스식 샌드위치, 크로크 마담(Croque-Madame).

'바삭하다'는 뜻의 Croque와 '부인'을 뜻하는 Madame이 합쳐진 단어. 이 샌드위치의 유래는 옛날 광부들이 광산에서 일을 하다가 집에서 도시락으로 싸간 샌드위치를 불에 따뜻하게 데워 먹은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 김현지

돌발상황이 만든 즐거움

배도 든든하겠다 다시 힘을 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 꽃보다 할배 > 팀이 이 카페 오기 전에 루브르 박물관을 갔던 기억이 떠올라 주변을 둘러보니 역시나 바로 옆에 루브르 궁전(LouvrePalace) 이 있다.

루브르 박물관은 이번 여행 계획에 없던 곳이다. 길을 잃고 헤매다가 발견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이곳에 대한 감회가 더 새로웠다. 여행지에서 길을 잃는다고 언제나 나쁜 것만은 아닌 듯하다. 기대치 못했던 더 아름다운 것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

파리의 대표적인 상징물 중 하나인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 김현지

유리 피라미드가 있는 광장은 아름다웠다. 단순히 피라미드의 아름다움만을 논하기에는 13세기에 건립된 루브르 궁전의 위엄이 과소평가 되는 느낌이다. 전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은 피라미드 앞 분수대에 앉아 6월의 따스한 날씨를 즐겼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한때 과거의 영광이 있던 그 자리에서 새로운 문화를 누리고 있는 게 사뭇 진지하고 엄숙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나는 루브르 궁전을 지나 튈러리 정원(Tuileries Palace) 안에 있는 오랑주리 미술관에 도착했다. 원래 계획이라면 벌써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을 터. 계획에서 의도치 않게 빗나간 상황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했다. 파리 한복판에서 길을 잃은 것 치고는 대단히 만족스러웠던 반나절의 시간. 파리란 도시는 '길을 잃어도 좋아'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찬란했다.

튈러리 정원에서 각자 여가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

ⓒ 김현지

덧붙이는 글 |

Cafe Le Nemours 정보 주소: 2 Galerie de Nemours, 75001 Paris, France 연락처: +33 1 42 61 34 14 영업시간 월 ~목요일: 오전 7시 ~오후 12시 금, 토요일: 오전 9시 ~ 오후 9시 일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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