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 값도 안되는 주민세, 16년만에 손댄다

곽창렬 기자 2014. 7. 2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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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4800원, 인천은 4500원, 전북 부안군은 2500원'.

이는 지역별 자장면 값이 아니다. 지역 주민이 1년에 한 번 내야 하는 주민세(住民稅, 개인 균등분·세대별 기준) 액수다. 특별시나 광역시, 시·군에 사는 주민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지자체에 낸다. 액수는 천차만별이다. 1만원 하는 동네가 있는가 하면 고작 2000원만 내는 곳도 있다. 그런데 정부가 이 세금을 1999년 이후 16년 만에 올리기로 방침을 정했다. 자장면 한 그릇 값도 되지 않는 주민세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자장면 한 그릇 값도 안 되는 주민세'

주민세는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3년 처음 부과됐다. 동네 청소도 하고, 다리도 놓고, 도로포장 하는 지자체에 주민들도 의무를 짊어져야 한다는 취지였다. 당시 부과됐던 주민세는 1세대당 인구 500만 이상 도시는 400원, 50만 이상 도시는 200원, 군(郡)은 60원이었다. 이후 물가가 가파르게 올랐지만, 주민세는 1977년, 1980년, 1995년에 각각 800원, 1500원, 1800원 이렇게 세 차례(50만 이하 시 기준)만 올랐다. 그러다 1999년 정부는 1만원 이하에서 지자체가 알아서 조례를 제정해 부과하도록 주민세 기준을 변경됐다.

이때부터 주민세는 지역마다 천차만별로 달라졌다. 1만원을 내는 주민도 있지만, 단 2000원만 내도 되는 주민도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충북 보은군, 충북 음성군, 경남 거창군 주민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1년에 1만원을 낸다. 반면에 전북 무주군민은 가장 적은 2000원을 내고 있다. 5배 차이다. 지난해 전국의 지자체가 걷는 주민세의 평균은 4620원. 대도시인 서울과 부산, 대구에 사는 주민은 전국 평균 수준인 4800원을 내는 데 반해 경남 남해군민이나 전남 광양시민은 각각 8000원, 6000원으로 평균보다 많은 주민세를 납부한다.

◇'올리라는 정부, 꿈쩍 않는 지자체'

정부는 지자체에 꾸준히 주민세를 올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복지부동이다. 안전행정부 관계자는 "늘 돈이 없다고 울면서 중앙정부에 손을 벌리는데, 주민세를 올려서 세금을 걷을 수 있는데도 대부분은 인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큰 이유는 선거 때문이다. 자장면 한 그릇 값도 되지 않는 주민세이지만, 조금이라도 올렸다가는 단체장이 다음 선거에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한 전직 지자체장은 "재정적 어려움이 있어도 주민세를 올리면 단체장 무능이라고 해서 곧바로 상대방 후보로부터 공격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주민세를 전국 평균보다 높게 책정한 지자체에는 평균 이하인 지자체보다 지방 교부금을 더 많이 지급하고 있다. 주민세 인상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마저도 별 소용이 없자, 정부는 올해 주민세를 일괄적으로 올리기로 방침을 했다. 현재 1만원 내에서 각 지자체가 정할 수 있게 돼 있는 것을 1만원 이상 수준에서 지자체가 걷도록 법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모든 지자체는 주민세를 최소 1만원 이상 걷게 된다.

안행부 관계자는 "각 지자체가 도로를 포장하고, 주민에게 각종 문화 혜택도 주는 데 반해 1년에 단 한 번 내는 주민세는 자장면 한 그릇 값도 안 되는 게 현실"이라며 "이렇게 올리더라도 부족하지만, 주민들이 지방자치에 대한 의무를 더 많이 짊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방안이 실현되면 전체 주민세 수입은 950억원(작년)에서 2040억원 정도로 2배가량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주민세 인상을 검토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올해가 최적기라는 판단 때문이다. 지방선거가 막 끝났고, 후년 4월에 열릴 총선 때까지는 큰 선거가 없기 때문이다. 지자체는 내심 반기는 분위기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는 게 주민세 인상인데, 만약 정부가 나서서 올려준다면 우리는 당연히 환영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입장은 다르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김영식(34)씨는 "지자체가 하는 일이 별로 피부에 와 닿지 않는데 세금만 올린다면 좋아할 주민이 누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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