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성폭행 위기 여성 구하다 구류..'정의의 주먹' 논란

우상욱 기자 2014. 7. 26.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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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서는 보기 힘든데 드라마에서는 매우 흔한 장면이 있습니다. 아리따운 여성이 성폭력을 당할 위기를 맞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 한 남성이 바람같이 등장합니다. 멋진 무술 실력으로 성폭행범(때로는 다수)을 흠씬 두드려 패 기절 시킵니다. 경찰이 달려와 쓰러져있던 성폭행범(들)을 끌고 갑니다. 아리따운 여성은 감사의 눈물과 환한 미소로 정의의 주먹에 보답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면 어떨까요? 정말 드라마에서 보듯 해피엔딩일까요? 아쉽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중국의 한 사건을 소개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꽤 유명한 중국 선전시의 '세계의 창'이라는 테마파크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악역은 어이없게도 이 공원의 보안요원 송모 씨였습니다. 송 씨는 본분을 잊고 공원을 찾은 젊은 여성 류모 씨에 흑심을 품었습니다. 으슥한 곳으로 유인한 뒤 성추행을 시도했습니다.

위기에 빠진 류씨! 하지만 때마침 쉬모라는 대학생이 현장을 지나가다 이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부관셴스', 남의 일에는 관여하지 말라는 중국의 금과옥조를 무시하고 쉬 씨는 용감하게 나섰습니다. 송 씨와 격투 끝에 류 씨를 구했습니다.

류 씨의 신고를 받고 온 경찰은 송 씨를 체포했습니다. 보안요원 송 씨는 성추행 혐의로 행정구류 5일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전개대로입니다. 문제는 이 다음부터입니다.

경찰은 '정의의 주먹' 쉬 씨까지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송 씨를 때려 부상을 입혔다며 고의 상해 혐의로 형사 구류에 처했습니다. 여성을 범죄로부터 구하기 위해 나선 점은 인정되지만 과도하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이유였습니다. 경찰 측은 관련 법규로 볼 때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면서 쉬 씨를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넘겼습니다.

이 소식이 지역 언론은 물론 중국 전역에 알려졌습니다. 중국 네티즌들이 들끓었습니다. '상을 줘도 모자랄 판에 벌을 주냐'면 공안 당국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이 때문인지 사건을 넘겨받은 중국 검찰은 결국 불기소를 결정하고 쉬 씨를 석방했습니다.

이번 사태가 발생하자마자 선전으로 달려왔던 쉬 씨의 어머니는 몹시 억울해합니다.

"사건 처리 과정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어요. 담당 경찰은 성추행범인 보안요원 송 씨의 처리는 미적 거리면서 오히려 제 아들만 강도 높게 추궁하는 거예요. 경찰은 저한테도 여러 차례 송 씨에게 배상금을 주는 것이 어떻겠냐고 압박했어요. 아니, 불의를 보고 용감하게 나선 사람더러 범죄자에게 배상하라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됩니까?"

이에 대해 경찰 측은 이렇게 해명합니다.

"물론 불의를 막기 위해 행한 폭력에는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범행을 막기 위해 상대방을 밀어 넘어뜨려 부상을 입혔다면 이에 대해서는 형사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미 범행을 막는다는 목적이 달성됐는데도 이후에 계속 폭력을 행사했다면 이는 과도한 행위로 형사 책임을 지게 됩니다.

쉬 씨의 경우 범행을 막기 위해 송 씨를 발로 차서 쓰러뜨린 부분은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다만 송 씨가 이미 넘어진 상태에서 다시 범행에 나설 뜻을 보이지 않았는데 한차례 더 찬 것은 불필요한 폭력이라고 보입니다. 이 부분은 쉬 씨도 인정했습니다."

물론 현지 경찰의 태도에 수상쩍은 점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보안요원 송 씨의 입장만 고려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실제 일부 네티즌들은 송 씨가 보안요원이다 보니 현지 경찰들과 ?시(친분관계)가 있어 모종의 우대를 받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도 제기합니다.

하지만 중국의 법률 전문가에들에게 물어봤더니 '경찰의 행위와 해명은 원칙적으로는 맞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정의의 주먹'이라 하더라도 모두 면책을 받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이 대목에서 걱정스러운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을 보고 여러 분들이 또 '중국이라서 그래'라는 댓글을 달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법률 전문가에게 확인할 결과 우리나라의 법규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 형법 21조는 이른바 '정당방위'를 인정합니다. '자신이나 타인의 법익에 대해 부당한 침해를 막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 벌하지 아니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판례로 들어가면 이 '상당한 이유'를 인정받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우리 판례에서는 "피해자의 침해행위에 대하여 자기의 권리를 방위하기 위한 부득이한 행위가 아니고, 그 침해행위에서 벗어난 후 분을 풀려는 목적에서 나온 공격 행위는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또 그러한 정당방위가 '사회통념이 인정하는 상당성이 있어야한다'고 규정합니다.

이대로라면 우리나라 경찰이라도 쉬 씨에 대해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어 보입니다.

'정의를 행사 한다'고 마구 폭력을 휘두르도록 놔두는 것도 마뜩치는 않습니다. 가끔 미국에서 자경단이 범행의 의심이 든다며 무고한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고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사례를 보면 납득하기 힘듭니다.

'사회적 통념'이 그만큼 모호한 개념이라 생기는 어려움입니다.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격투를 벌이면서 매번 주먹을 휘두르고 발차기를 할 때마다 '이것은 사회적 통념상 상당한 폭력일까?', 또는 '지금 내가 정의를 지키기 위해 하는 행위일까, 분을 풀기 위해 하는 행위일까?' 고민하고 따진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다만 앞서 든 중국의 사례만 놓고 보면 경찰의 조치에 아쉬움이 듭니다. 애초 싸움이 벌어진 이유를 따져보면 쉬 씨가 순수하게 '정의를 구하기 위해' 나선 점이 인정됩니다. 송 씨와 개인적으로 시비를 벌인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정의의 주먹'인지, '울분의 푸는 주먹'인지의 기준이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중국 경찰의 판단대로라면 중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속담이 딱 들어맞습니다. '쓸데없이 일을 하나 벌이느니 일을 하나 줄이는 것이 낫다.' 불의를 봐도 괜히 나서서 일을 만들기보다 모른 척 외면하는 것이 낫습니다.

결국 모든 제도가 그러하듯이 운용하는 담당자의 건강한 상식과 양식이 중요하다 느껴집니다.우상욱 기자 woosu@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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