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짜리 주말예능, 시청자도 힘들다

한국일보 2014. 7. 25.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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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TV봤수다]

서로 베끼고 방영시간 눈치싸움

온갖 반칙에 사라진 콘텐츠 경쟁력

피해는 고스란히 시청자 몫으로

시청률을 선점하기 위해 편성 시간을 두고 자존심 싸움이 끊이지 않는 KBS'해피선데이'

KBS제공

시청률을 선점하기 위해 편성 시간을 두고 자존심 싸움이 끊이지 않는 MBC '일밤'

MBC제공

MBC가 최근 10분을 당겨 일요일 오후 4시부터 '일밤'을 방영하겠다고 했다가 다시 오후 4시10분으로 물러선 일련의 과정을 보면 지상파 방송 3사의 주말 예능 경쟁이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다. MBC가 10분을 당기기로 한 것은 20일 KBS '해피선데이'가 7분을 당겨 오후 4시3분에 방송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박태호 KBS 예능국장은 "시간을 늘린다고 시청률이 올라간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내용에 충실하겠다"고 말했다. '해피선데이'의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장윤정ㆍ도경완 커플과, 세 쌍둥이 아빠인 송일국의 출연으로 MBC '아빠 어디가'를 앞선 사실을 부각한 것이다. '해피선데이'가 시청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됐기 때문에 박 국장이 이렇게 이야기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쨌든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없다. 내용에 충실하라는 것은 시청자의 요구이기도 하다.

'해피선데이'가 시청률에서 '일밤'을 앞선 것은 변칙 편성 때문이 아니다. '해피선데이'가 내용에서 새 느낌을 주는 반면 '일밤'은 어딘지 정체된 느낌을 주는 것과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박태호 국장은 "타사가 10분을 당기든 20분을 당기든 신경 쓰지 않고 지금의 편성을 준수하겠다"고 했다. 물론 그게 얼마나 지켜질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자 '일밤' 측은 한 발 물러나 다시 4시10분에 방송을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렇다고 KBS가 옳고 MBC가 그르다고만 할 수는 없다. '해피선데이'가 변칙 편성을 하고도 시청률에서 앞서지 못했다면 대중의 비난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청률을 가져간 '해피선데이' 측은 그것으로 할 이야기가 생긴 셈이다. 자신들은 내용에 더 충실하다고.

그러나 몇 개월 전으로 돌아가 보면 과연 KBS가 그 같은 말을 할 수 있는지 애매해진다. 그 때만 해도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아빠 어디가'가 만든 육아 예능 트렌드의 베끼기로 보였다. KBS는 tvN의 '꽃보다 할배'가 뜨자 '마마도'를 기획하고 MBC의 '나는 가수다'가 뜨자 '불후의 명곡2'를 내보냈다. 그러니 KBS 예능의 생존 방식이 베끼기냐는 의혹이 제기됐고 공영방송이 새로운 시도를 하기보다 타 방송을 흉내낸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런 식으로 나가면 플랫폼 경쟁력에서 우위에 있는 KBS가 프로그램을 세울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는 가수다'가 폐지되고 '불후의 명곡2'가 살아남은 건 프로그램의 진화 덕분이기도 하지만 플랫폼 경쟁력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최근 방송 3사의 주말 예능 경쟁에서는 편법이 난무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시작 시간을 조금씩 당기는 바람에 이제는 주말 예능 프로그램이 무려 4시간이나 방송되기도 한다. 여행이 뜨면 여행을 따라 하고 육아가 뜨면 육아를 따라 하며 오디션이 뜨면 오디션을 따라 하는 베끼기 경쟁도 볼썽사납다.

피해는 결국 시청자의 몫이다. 4시간 예능은 제작자에게도 그렇지만 시청자에게도 고통이다. 이런 식이라면 시청자의 이탈만 가속화할 수 있다. 요즘은 지상파 말고도 볼 수 있는 채널이 많다. 꼭 '본방'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콘텐츠 경쟁력을 쌓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편법만 쓴다면 누가 그 채널을 돌리지 않겠는가.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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