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우의 1S1B] 1.26초. 그 속에 담긴 최경철의 진심

조회수 2014. 7. 25. 10:2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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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포수 최경철은 지난 5월10일 무려 10년 만에 홈런을 쳤다. 그리고 경기 후 인상적인(?) 소감을 이야기 했다. "너무 오랜만에 홈런을 쳐서 그라운드를 어떻게 돌아야 하는지 몰라 살짝 당황했었다."

기자는 얼마 전 한 라디오 방송에서 그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이젠 어떻게 뛰어야 하는지 감이 좀 생겼나요?" 그는 수줍게 답했다. "네 이젠 좀 알 것 같습니다."

처음, 최경철이 "낯설었다"고 이야기 한 건 자신 보다 투수를 생각해서 한 말이었다. 늘 투수의 공을 받아줘야 하는 포지션. 홈런을 맞았을 때 누구보다 그들의 마음이 어떤지 잘 알고 있는 것이 그였다. 행여나 자신이 홈런을 치고 너무 천천히 그라운드를 돌아 상대 투수가 마음에 상처를 받진 않았을까? 최경철은 바로 그 것이 마음 쓰였던 것이다.

그의 진심을 듣게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최경철은 시즌 2호 홈런을 쳤다. 23일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와 경기서 0-3으로 뒤진 4회, 외국인 투수 홀튼으로부터 역전 만루 홈런을 쳤다.

데뷔 이후 첫 경험이었다. 그것도 승부를 뒤집는 한 방이었다. 치는 순간 홈런을 직감할 수 있는 타구였다. 최경철도 순간 타구를 잠시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홈런이 확인된 뒤 열심히 그라운드를 돌았다. 얼굴은 잔뜩 상기 돼 있었지만 달리기 속도는 줄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최경철은 정말 첫 홈런 때 보다 빨리 그라운드를 돌았을까?SBS스포츠의 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베이스볼S는 하이라이트 후 준비하는 'S컷'에서 실제 그의 그라운드 도는 시간을 재 보았다. 결과를 받아 든 뒤엔 슬몃 미소가 지어졌다. 그가 정말 좀 더 열심히 뛰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영상 클릭>

첫 홈런을 치고 최경철이 1루에서 홈베이스까지 뛰는데 걸린 시간은 23.08초. 데뷔 첫 만루포를 친 날은 21.82초였다. 1.26초가 빨라졌던 셈이다.

첫 홈런 땐 치고 바로 달려나갔던 그다. 하지만 만루포 땐 잠시 타구를 지켜봤다. 아마 그 시간을 빼면 2초 이상 차이가 났을 것이다. 달리기에서 2초가 실제 거리로는 얼마나 큰 차이가 나는지는 체력장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그 시간과 거리 차이엔 최경철의 진심이 진하게 묻어 있었다.

최경철은 그런 선수다. 생긴 것 처럼 참 순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 오랜 시간을 무명의 자리에서 버텨야 했지만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했다. 억울하다고 불만을 터트리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저 더 많은 훈련으로 자신을 채워갔다. 동료들은 그런 그를

"세상에서 가장 훈련 많이 하는 선수"라고 불렀다. 농담이 섞인 것이긴 했지만 그런 그의 노력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최경철은 침대 위에서 훈련하는 선수로도 유명했다. 훈련이 모두 끝나고 숙소에 들어 온 뒤에도 침대 매트 위에서 쉼 없이 무릎을 굽혔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다. 룸메이트 선배로부터 "먼지 난다"는 타박을 받아도 "여기가 블로킹 훈련 하기는 참 좋습니다"라며 멈출 줄 몰랐다. 앞에서는 타박을 하면서도 모두가 그를 아꼈던 이유다.

최경철은 이처럼 잔머리를 굴릴 지 모르는 선수다. 그러다보니 사람에게 다가서는데 다소 시간이 걸린다.

LG 한 지도자는 올 초 "최경철이 포수로서 좋은 능력은 갖고 있는데 트레이드 된지 얼마 안되고 부상 공백도 있어 아직 투수들과 가깝지 못하다. 투수들을 잘 모르다 보니 포수로서 갖고 있는 능력이 다 발휘되지 못한다"며 아쉬워 했었다.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이 LG-KIA전 특별 해설로 나서 최경철의 리드를 혹평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투수에 맞춘 리드에선 모자람이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이런 지적은 앞으로의 LG에 희망이 되고 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최경철과 LG 투수들의 사이가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경철은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LG 투수들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경기에 꾸준히 나서고, 나도 그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다보니 조금씩 특징을 알게 됐다. 어떤 투수라는 걸 알게 되며 리드도 다양해지고 있다. 처음엔 교과서적으로만 해야 했다면 이젠 융통성도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전설의 포수 박경완은 "포수는 때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을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막무가내로 엉뚱한 볼을 요구하라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아닌 것 같은 결정도 투수의 특징을 잘 알고 있으면 그 투수가 그 순간 가장 잘 던질 수 있는 공이 순간적으로 떠오른다는 뜻이다.

1.26초에 담겨 있었던 최경철의 진심. 그 순수한 마음은 조금씩 LG 투수들의 마음을 열어가고 있다. 앞으로 LG가 조금쯤 더 높은 곳을 꿈꿔 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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