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관세화 말라"..전국으로 벼논 갈아엎기 확산

2014. 7. 2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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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경남 창녕 이어 전남 영광·순천에서

농민들, 모내기 논 트랙터로 밀어

23일 오전 11시 전남 영광군 백수읍 죽사리 들판. 한여름 뙤약볕을 받아 푸른빛이 생생한 논 앞에서 트랙터 두 대가 시동을 걸었다. 굉음을 울리며 트랙터들이 전진하자 줄기를 꼿꼿하게 세우고 잘 자라던 벼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 거무튀튀한 논바닥이 볼썽사납게 드러났다. 트랙터 두 대가 벼논 2000여㎡를 갈아엎는 데는 불과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오매! 아까운 거. 눈뜨고는 못 보겠네. 가슴이 먹먹허당게."

논두렁에서 이를 지켜보던 농민 30여명이 일제히 미간을 찌푸렸다. 햇볕에 그은 얼굴들이 금세 더욱 어두워졌다. 농민들은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여, 땡볕 속에 구슬땀 흘리며 키운 나락을…" 하곤 말을 잇지 못했다.

영광 백수읍의 너른 들판은 대부분 5월 말에 모내기를 마쳤다. 여태껏 김을 매고 물을 대며 힘든 고비는 다 넘겼다. 출수기에 물만 대주면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지난 18일 정부가 쌀 관세화 추진을 선언하면서 들판으로 근심이 찾아들었다.

"나락을 갈아엎으면 죄받는다고 반대하는 어르신도 있었어요. 하지만 정부가 저렇게 막나오는데 농민들이 멀거니 당하고만 있어서야 쓰겄느냐는 의견이 훨씬 많았어요." 이석하(45) 영광농민회 사무국장은 마을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벼논을 갈아엎고 트랙터에서 내린 논 주인 강민구(51)씨는 물기 어린 눈으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시동을 거는 순간부터 아무런 생각도 안 나고 참담하기만 했어요. 제 손으로 제 논을 갈아엎은 심정이 오죽하겠어요."

강씨는 "봄가물이 심해 700m 떨어진 도랑에서 물을 끌어왔다. 열심히 농사를 지은 뒤 벼논을 갈아엎어 소출이 모두 날아갔지만 손해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더 마음 아프다"며 한숨지었다.

농민 김희윤(50·백수읍 하사리 송산마을)씨는 "들판이 너른 백수읍은 농업이 내리막길을 걸으며 인구가 2만명에서 5000명 아래로 줄어든 지 오래다. 정부가 최소한 협상이라도 했다면 이렇게 분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민들은 18일 발표된 정부의 쌀 관세화 선언을 농민들에 대한 선전포고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부가 농민은 국민이 아니라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만큼 최후의 수단으로 나락을 갈아엎어서라도 식량주권을 지키겠다고 입을 모았다.

농민들은 18일 경남 창녕을 시작으로 이날 전남 영광과 순천에서 또다시 벼논을 갈아엎었다. 쌀 개방에 대한 농민들의 반발이 커지면서 벼논 갈아엎기와 농기계 반납 등 농민들의 '들판 투쟁'은 갈수록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영광/글·사진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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