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jury Time-추락하는 경남, 조광래 시대 '유산' 다 잃었다

조회수 2014. 7. 23. 11:2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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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레븐)

유산(遺産). 첫 번째 사전적 뜻은 '죽은 사람이 남겨 놓은 재산'을 뜻한다. 그러나 '앞 세대, 혹은 앞 사람이 후대에게 물려준 사물이나 문화'란 의미로도 많이 쓰인다. 먼저 산 누군가가 어렵게 일궈 나중에 살 누군가가 좀 더 편하게 되는 게 바로 유산이다. 그래서 이 유산을 얻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내가 노력해 얻은 것이 아닌 물려받는 것이라 그렇다. 물론 완전히 공짜는 아니다. 물려받은 유산을 어떻게 계승하여 발전시키느냐란 대단히 어려운 숙제를 풀어야 한다. 수고 없이 편하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유산지만, 그래서 그 대가는 상당히 어렵고 무겁다. 자칫 잘못하면 앞 세대가 일군 귀한 유산을 순식간에 날려버릴 수도 있어 신중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지금 경남 FC가 그렇다. 자칫 앞 세대가 일군 귀한 유산을 송두리째 날릴 위험에 처했다.

도민 구단 대표주자 경남의 부진이 심상치 않다. 심상치 않은 게 아니라 심각하다. 경남은 최근 12경기 연속 무승에 빠져 있다. 3월 26일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4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전(1-0 승리) 이후 무려 12경기에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12경기가 열린 기간을 환산하면 4개월에 달한다. 그 기간 기록한 성적은 7무 5패다. 12번의 경기를 치르면서 얻은 승점이 고작 7점뿐이다. 뿐만 아니다. 한 번도 이기지 못하는 극심한 부진에 빠져 있는 동안 팀 실점은 K리그 클래식 12개 팀 중 1위가 됐다. 16경기에서 27골이나 내줬다. 이렇게 심각한 부진을 겪는 동안 팀 순위는 바닥으로 빠르게 추락 중이다. 그야말로 '역대급' 부진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 2006년 창단 경남이 이렇게 심한 부침을 겪었던 적은 없었다. 비록 도민 구단이란 한계를 갖고 있었지만, 지역 내 높은 축구 열기와 짜임새 있는 구단 운영을 앞세워 경쟁력을 과시한 팀이었다. 창단 첫해였던 2006년 12위를 차지하며 프로의 냉엄함을 경험했으나 2007년엔 5위에 오르며 말 그대로 '돌풍'을 일으켰고, 2008년과 2009년에도 중위권인 8위와 7위를 기록하며 저력을 뽐냈다. 2010년에는 조광래 감독이 키운 아이들이 정점에 올라서며 6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6위란 숫자에서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FC 서울·수원 삼성·전북 현대·울산 현대·포항 스틸러스 등 내로라하는 기업 구단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달성한 기록이었으니 큰 의미를 둘 수 있었다.

특히 2007년 12월 부임한 조광래 감독 지휘 아래서는 웬만한 기업 구단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만큼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어린 선수들 키우는 능력과 팀을 만들어 가는 능력을 두루 갖춘 조 감독은 경남을 그 누구도 만만히 볼 수 없는 팀으로 조련했다. 이전까지 무명에 가까웠던 김주영은 '대인 마크의 달인'으로 떠올랐고, 김동찬과 김영우도 새로운 축구 인생을 꽃피웠다. 잊힌 유망주 윤빛가람은 조 감독 아래서 다시 날갯짓을 시작했고, 서상민과 김인한 등 신예들도 반짝하고 빛나며 경남의 비상을 도왔다. 2008년에는 하나은행 FA컵에서 강력한 회오리바람을 일으킨 끝에 준우승을 차지하며 클럽 역사상 첫 번째 트로피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 여름 조 감독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며 떠난 후 조금씩 추락을 시작했다. 조 감독의 뒤를 이은 최진한 감독은 2011년과 2012년 똑같이 8위를 달성했으나 강팀 이미지는 퇴색됐고, 2013년 6월 최진한 감독을 대신해 지휘봉을 잡은 일리야 페트코비치 감독은 '먹튀'란 소리를 들을 만큼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경남을 떠나고 말았다. 경험 많은 노장 이차만 감독과, 현장감이 살아 있는 이흥실 수석 코치가 손잡으며 기대를 모은 올 시즌도 다르지 않다. 이 감독은 기대만큼 지도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고, 이 수석 코치는 1군이 아닌 2군 선수들을 관리하고 있어 팀이 응집력을 잃었다. 더해 팀 체질 개선을 위해 세르비아에서 데려온 브랑코 바비치 기술고문 효과도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어 추락이 가속화하고 있다.

팀이 흔들리면서 '경남 유치원'이라 불릴 만큼 유망주를 잘 키웠던 과거 명성에도 먹칠이 가해지고 있다. 지난 시즌 7골이나 넣으며 대성 가능성을 보인 이재안은 올 시즌 한 골에 그치며 기량이 퇴보하고 있고, 경남에서 성장해 FC 서울로 이적한 윤일록 만큼 큰 기대를 모았던 김인한도 힘에 부치는 모습이 역력하다. 경남엔 여전히 젊고 유망한 선수들이 많이 있지만, 이들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지 않으면서 팀이 혹독한 정체기에 들어간 것이다. 그 공백을 올 시즌 입단한 베테랑 미드필더 조원희와 골키퍼 김영광이 커버했지만, 지난 휴식기를 이용해 조원의가 팀을 떠나면서 이젠 구심점이 될 선수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2014년 현재 경남이 이렇게 심한 부침을 겪고 있는 가장 근본적 이유는 조광래 시대가 남긴 유산을 잘 계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장기 안목으로 어린 선수들을 육성해 성적도 내고 구단 재정에도 도움이 됐던 조광래 시절의 경남은 분명 만만치 않은 팀이었고, 뚜렷한 색채를 지닌 팀이었다. 그러나 조 감독이 떠나고 4년을 보내는 동안 안일한 구단 운영과 잦은 내부 마찰로 그간 일궜던 것들을 조금씩 까먹고 말았다. 그 결과 오늘날엔 어떤 특징도 찾아볼 수 없는 무색무취한 팀으로 전락하게 됐으며, 창단 후 처음으로 꼴찌로 시즌을 마칠 수도 있는 극한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이대로는 곤란하다. 경남이 과거다운 위용을 되찾으려면 되풀이하고 있는 안일한 자세와 의욕 없는 모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엇보다 팀 전반에 걸친 혁신적 쇄신이 필요하다. 쇄신을 위해서는 지난 4년 간 추락한 경남의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냉정하게 평하고, 평가에 의해 책임져야 할 부분과 사람이 있다면 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다시 안일한 자기만족에 머문다면 정말 얼마 남지 않은 경남의 장점과 강점을 송두리째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된다면 앞 세대가 어렵게 일군 유산도 다 사라지고 말 것이다.

경남은 도·시민 구단의 한계를 이겨낸 팀이었다. 대부분 도·시민 구단이 참혹한 현실 앞에서 무릎을 꿇었지만 경남만은 이겨냈다.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도·시민 구단의 마지막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조광래 시대가 남긴 유산을 모두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이제는 정말 변해야 할 때다.

글=손병하 기자(bluekorea@soccerbest11.co.kr)사진=베스트 일레븐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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