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식의 사회]'저작권 좌회전'으로 자유로운 공유를

2014. 7. 1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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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저작권인가. 미드는 '상품'일 뿐만 아니라 문화이고 작품이다. 한 콘텐츠가 지닌 가치와 재미, 감동은 소수가 독점하는 것보다 되도록 많은 이들이 향유하는 것이 공공에 이롭다.

최근 워너브라더스 등 미국 주요 방송그룹 6곳이 자사 드라마의 한글자막을 제작하고 유통시킨 15명의 자막제작자들을 고소했다. 이들은 국내 법무법인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대형 카페 4곳에서 자사 영상물에 대한 자막을 대량 유통시킨 ID 15개를 서울 서부경찰서에 고소한 것이다. 저작권법 제136조 1항에 따르면 원저작자의 동의를 얻지 않고 2차적 저작물을 작성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로 간주되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원저작자의 허락 없이 자막을 제작하여 유통한 것에 대해서는 명백한 법규위반으로, 워너브라더스 등은 원저작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콘텐츠의 불법유통을 막기 위한 권리행사로 자막제작자를 고소한 사례가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11년에 미국 드라마 동영상과 자막 등의 불법유통을 방조한 죄로 웹하드 운영자를 처벌한 사례가 있지만 자막제작자에 대한 고소는 이번이 처음이다. 더군다나 이번 집단 고소의 피고소인들 중 자막을 상업적인 용도로 제작한 이는 한 명에 불과하고 다른 이들은 순수하게 미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팬 활동의 일환으로 좋아하는 드라마를 정확한 번역으로 많은 이들과 함께 즐기고자 하는 비영리적인 활동 수준이었다.

미드라고 불리는 미국 드라마는 과거에는 영어회화의 교재로 쓰이거나 일부 마니아들의 전유물에 불과했으나 요즈음은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장르와 엄청난 규모의 화제작들을 중심으로 인기가 매우 높다. 국내 최대 온라인 미드 사이트의 경우 회원수만 20여만명에 육박한다. 또한 한 방송사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40% 정도가 어떤 형태로든 미드를 접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이다. 최소 수백만명 이상이 미드팬이라는 추정도 있을 정도이니 국내에서 미드의 인기와 영향력을 짐작할 만하다.

미국 주요 방송그룹들이 고소한 자막 제작자들이 만든 불법자막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인기 미국 드라마. NBC의 '히어로즈'. | 경향자료사진

비영리적인 자막 제작자 고소

미드가 이런 인기를 얻기까지는 자신의 시간과 노력, 정성을 들여 자막을 제작하고 공유해온 자막제작자들의 공을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미국 드라마 제작사들이 한국 시청자들을 위해 자막을 제작해 주거나 공식적으로 자막을 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 적이 없다. 사실상 한국 시장을 방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발적으로 성장한 국내 미드시장 덕분에 케이블TV 매체들은 너도나도 미드를 수입하여 방영하고 있다.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 왕좌의 게임 > 시리즈의 경우에는 국내 케이블TV 매체인 스크린에서 미국과 동시에 방영할 정도이다. 국내 드라마 유통 매체의 경우에는 자막제작자들로 인해 손해가 있었을 것이다. 거액을 들여 판권을 사온 드라마가 불법유통됨으로 인해 수익이 줄었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불법 콘텐츠 유통을 단속하는 방법은 유통 매체 역할을 하는 웹하드 업체들에 방조의 책임을 물어 배상을 받고 합법적으로 유통하도록 압력을 넣거나 불법적으로 콘텐츠를 유통시키거나 구매한 사용자들을 찾아내 책임을 묻는 방식이었다. 피고소인이 많다 보니 입증을 위해 손이 많이 가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이번 건은 자막제작자들을 고소함으로써 고소인 입장에서는 간편하게 불법유통을 효과적으로 막는 새로운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미드의 유통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콘텐츠는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채널을 통해 확산됨으로써 영향력도 커진다. 여기에는 자막과 같은 2차적 저작물을 생산해내는 자발적인 활동가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한 예로, 전 세계적 흥행을 일으킨 < 해리포터 > 시리즈 제작사인 워너브라더스가 저작권 보호 등을 이유로 팬들의 콘텐츠 활동을 전면 금지시키자, 팬들 사이에 불매운동 등 저항이 발생했고 결국 제작사가 이를 개방했던 사례도 있다.

다양한 기술의 발전으로 팬들은 단순히 콘텐츠를 보는 것을 넘어 직접 참여하는 방식을 통해 소통하려 한다. 최근에는 이런 수용자의 변화를 반영해, 이들의 2차 저작물을 통해 콘텐츠 홍보 효과를 꾀하는 마케팅 전략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워너브라더스 등의 자막제작자 고소는 자발적인 팬들의 활동을 막고 폐쇄적인 콘텐츠 유통구조를 가져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장기적으로는 미드의 인기를 쇠퇴시킬 것으로 본다.

여기에서 '저작권'의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누구를 위한 저작권인가. 미드는 '상품'일 뿐만 아니라 문화이고 작품이다. 한 콘텐츠가 지닌 가치와 재미, 감동은 소수가 독점하는 것보다 되도록 많은 이들이 향유하는 것이 공공에 이롭다. 사이버공간은 이러한 '공유'를 촉진하면서 정보와 문화의 민주화를 혁신적으로 이뤄냈다.

미국 주요 방송그룹들이 고소한 자막 제작자들이 만든 불법자막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인기 미국 드라마. ABC의 '로스트'. | 경향자료사진

엄격한 적용은 콘텐츠 발전 막아

실제로 음반산업의 황금기인 1980~90년대를 생각해 보면 불법유통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였다. 길거리 노점에서는 히트곡만 추려 녹음한 테이프가 불티나게 팔리고 개인들도 거리낌없이 불법복제한 음악 CD를 주고 받았었다. 그런데 그 시기에 최대 음반 판매량을 달성했다. 골든 디스크, 플래티넘 디스크들은 거의 그 시기에 나왔다.

물론 저작권자의 권리는 지켜져야 하고 이를 침해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그러나 진정한 저작권자의 권리는 저작물이 잘 유통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를 위해 적정한 권리행사는 타당해 보이나 무분별한 적용으로 콘텐츠의 소수독점으로 간다면 이는 바람직한 방향은 아닐 것이다.

뒤집어 생각해 보자. 요즘 한류가 큰 인기다. 한국의 드라마, 영화, 뮤직비디오, K-POP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취약한 저작권 보호 시스템으로 인해 불법 콘텐츠들이 주로 유통되고 있다고 한다. 만약 우리가 이를 엄격히 단속하고 법적 대응을 한다면 한류가 더 확장될 수 있을까? 콘텐츠는 문화다. 문화의 확산으로 인한 사업 기회와 수익 창출을 충분히 만들어 갈 수 있다. < 별에서 온 그대 > 로 판권 수입은 적을지 모르나 김수현은 광고모델로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고, 한국산 치맥은 중국에서 큰 인기다.

저작권의 이러한 폐쇄성을 비판하고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카피레프트(copyleft)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카피레프트란 저작권을 의미하는 카피라이트(copyright)에 빗대 만들어낸 말로 자유소프트웨어재단의 리처드 스톨만에 의해 주창된 개념이다. 저작권에 기반한 사용 제한이 아니라 저작권에 기반한 정보의 공유를 주장하며 정보의 사용권한을 2차저작물의 저작자들에게 부여한다는 것이다.

주로 공개 소프트웨어에서 주장된 것이나 요즈음은 웹툰이나 블로그 콘텐츠에도 카피레프트를 표시함으로써 자유로운 공유와 사용권한을 제공하고 있다.

콘텐츠의 거대기업들인 미드 제작사들과 국내 콘텐츠 유통 매체들이 좀 더 넓은 시각으로 진정한 콘텐츠 확산과 풍성한 문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 엄격한 저작권의 적용보다는 자유로운 공유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 윤원철 KINX 경영지원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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