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유별난 외고 공부벌레들

입력 2014. 6. 21. 02:47 수정 2014. 6. 21.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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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굣길 음악회.. 동아리 활동.. 졸리면 키다리 책상으로.. 야자는 벤치에서

[서울신문] 지난 9일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대원외국어고를 찾았다. 여느 고등학교와 다른 점은 눈이 아닌 귀로 찾을 수 있었다. 등굣길에 가야금 선율이 학생들을 맞이했다. 이 학교는 매일 아침 등굣길에 공연을 하겠다는 동아리 신청을 받는데, 이날은 국악동아리 '도드리'에서 가야금 파트를 맡은 여학생 5명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랫가락을 튕기고 있었다. 동아리의 '틈새 공연'은 말 그대로 틈이 생길 때마다 열렸다. 오전 11시 30분 점심시간이 되자 힙합동아리 TS가 점심 공연에 나섰다. 스피커를 울리는 경쾌한 랩을 하는 학생이나 구경하는 40여명의 학생이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TS 멤버인 고건일(17)군은 "공부하면서 자투리 시간에 동아리 활동을 하기가 쉽지 않지만 공연을 하다 보면 보람도 느끼고 입시 스트레스도 날아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 올해 졸업생 중 97명이 서울대에 진학했다. 올해 졸업생이 모두 403명인 점을 감안할 때 재수생을 포함하더라도 대략 4명 중 1명꼴로 서울대에 진학한 셈으로, 이는 고교 중 최다 인원이다.

밤낮으로 공부만 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찾아간 대원외고의 아이들은 왜 공연을 하고 있을까. 유순종 대원외고 교감은 "대원외고에는 공부 외 활동이 많다"며 "1~2학년 학생들은 수요일 '스포아츠데이'를 통해 체육이나 음악을 한다"고 말했다. 유 교감은 이어 "가을에는 전공에 따라 국가별 전통춤을 보여주는 '폴라' 축제가 펼쳐지는데 이를 위해 학생들이 벌써 연습에 들어갔다"며 "1~2학년은 동아리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한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는 정식 동아리가 30개, 비공식 동아리까지 합치면 220여개의 동아리가 운영되고 있다.

외고에 가서 이런 질문을 할 줄 미처 예상 못 했지만 '공부는 언제 하느냐'고 묻자 유 교감은 수업을 참관해 보라고 권했다. 1학년 불어 수업에 들어갔다. 학생들은 '몇 살이니'와 같은 문장 구조를 익히며 기초적인 불어 회화 수업을 받고 있었다. 여학생 2명이 벌떡 일어나 교실 뒤쪽에 서서 공부할 수 있는 '키다리 책상'으로 향했다. 안주희(16)양은 "어떻게 해도 졸음이 쏟아질 때 뒤쪽에 서서 수업을 들으면 잠도 금방 깨고 집중도 잘된다"고 말했다. 안양은 "외고에 와서 좋은 점은 공부할 분위기가 조성돼 있고 공부하기 위한 많은 것을 학교가 허용해 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방과 후부터 오후 10시까지인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졸리거나 교실의 온도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학생은 복도, 학교 벤치, 심지어 가로등 아래에서 공부해도 된다.

대원외고에서 시작돼 지금은 많은 학교 교실에 있는 '키다리 책상'의 설치를 건의한 한 일반고 교사는 "교장이 '졸리지 않게 수업할 고민은 하지 않고 연장 탓만 한다'고 면박을 줬다"며 씁쓸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대원외고는 왜 학생들을 풀어주느냐'고 묻자 유 교감은 "공부를 잘하는 가장 첫째 조건은 자신감이기 때문"이라면서 "우리는 항상 품격과 자부심을 강조한다"고 설명했다. 유 교감은 "학업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거나 흥미를 잃어버릴 것 같은 학생도 많이 있다"면서 "그럴 때 '너 중학교 때 공부 잘해서 여기 왔잖아. 선배들처럼 너도 꿈을 이룰 수 있어'라고 자신감을 심어준다"고 말했다. 우수한 학생들이 모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부심을 심어줄 수 있는 게 아니라 대원외고에서는 부장교사와 상담교사들이 각고의 노력을 한다. 학생 한명당 한 학기에 4~5차례 맞춤형 상담을 하며 학생의 상태를 주기적으로 관찰한다. 그러다 보니 학생과 교사 간 신뢰가 쌓이고 교사가 멘토가 돼 자부심을 북돋울 수 있다고 유 교감은 설명했다.

학교가 조성하는 면학 분위기는 3학년 교실인 '인정관'에서 절정을 이룬다. 1~2학년이 생활하는 '용마관' 교실은 토론 토너먼트, 소논문 작성, 토요일마다 교수가 진행하는 인문학 특강, 동아리 활동으로 시끌벅적하다. 반면 '노인정'이란 별칭이 붙은 인정관의 분위기는 차분하다. 오주연(18)양은 "학기 초 인정관으로 옮기는데 기분이 새롭더라"면서 "그동안 즐겁게 지냈으니 이제는 공부에 전념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고 회상했다.

1~2학년의 각종 활동과 3학년 때 무르익은 교과 성적은 고스란히 대학으로 전달된다. 이영근 대원외고 입학관리 부장교사는 기자에게 서울대 등 주요 대학에 전달할 5권의 두꺼운 책자를 보여줬다. 3명의 교사가 40일 이상 매달려 한 권당 분량이 3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완성한 것으로, 학생들의 각종 활동이 담겼다. 같은 내용은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기록되고 교육부는 학생부 기재 내용을 대입에 반영하는 것을 장려한다. 교육부 정책에 맞춰 발 빠르게 대응하는 대원외고가 대입에서 '선방'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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