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생각해본 갑을 관계

2014. 6. 21.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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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TV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도미니카 공화국에 와 있다. 오늘은 쉬는 날이라 지금까지 내가 살면서 체험한 것들에 대해 반추하고 있다.

 이 나라는 한국과 정반대다. 우리 제작진은 농담조로 "돈을 왕창 빌려서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을 사버리면 어떨까" 하는 말도 해봤다. 왜냐하면 풍광이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지만,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 접속이건 전기 콘센트건 모든 게 너무 느리거나 아예 망가져 있다. 결국엔 문제가 해결되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 답답하다.

 서울 생활에 익숙하기 때문에, 나는 이곳에서도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마자 문 닫는 버튼을 여러 번 마구 누른다. '마냐나(ma<00F1>ana·내일)'를 입에 달고 사는 이곳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좌절하게 된다. 하지만 상투적인 관찰이긴 하지만, 여기 사람들이 훨씬 행복해 보인다. 열대 기후, 경제 발전, 인생철학 사이의 긴밀한 상관관계를 밝혀내는 '대통일이론(Grand Unified Theory· GUT)'이 틀림없이 나올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기분 좋은 점이 눈에 띄었다. 이곳 호텔 직원들은 투숙객들을 친구처럼 대한다. 물을 따라 줄 때에도 방을 청소할 때에도 허물없이 우리를 대한다. 나보고 "선생님(Sir)"이라거나 아주 사소한 잘못에도 불필요하게 "미안합니다"라고 하는 직원을 못 봤다. 그래서 기분이 아주 좋다. 이와 대조적으로 몇 주 전 학회가 있어서 제주도에 갔을 때에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제주도에 있는 그 호텔은 아주 훌륭했다. 서비스도 '지나치게' 좋았다.

 호텔 직원들을 마주칠 때마다 그들은 아주 정중하게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이며 "굿모닝, 선생님" "헬로 선생님" "하우 아 유, 선생님"을 연발했다. 승강기를 탈 때에는 버튼을 누를 필요조차 없었다. 미국 억양으로 말하는 직원이 몇 층으로 가는지 묻고 버튼을 대신 눌러줬다. 손님이 손수 버튼을 누르는 게 마치 손님의 품위를 떨어뜨리기라도 하듯 말이다.

 활짝 웃으며 버튼을 눌러주는 직원이 마음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가 하는 일은 영혼을 파괴할 정도로 반복적인 일이다. 게다가 그의 업무의 핵심에는 주종관계(主從關係)가 자리 잡고 있다. 복종은 그가 할 일의 부산물이 아니라 일 그 자체다.

 대학에 다니던 어느 여름, 콜센터에서 일한 적이 있다. 내가 한 일은 가스비 지불 연체자들을 독촉하는 것이었다. 전혀 모르는 고객들로부터 끊임없이 욕을 먹어도 나는 그들을 철저히 예절 바르게 대해야 했다는 게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이런 종류의 일을 일컫는 학술 용어는 '감정 노동(emotional labour)'이다. 감정 노동자는 자신의 실제 감정을 억누르고 고객을 정중히 떠받들 것을 요구받는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other things being equal), 감정 노동은 다른 직업보다 스트레스나 소외감이 훨씬 크다.

 감정 노동의 상대편 당사자인 고객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연구가 수행되지 않았으리라고 본다. 고객은 왜 왕 대접을 기대하는 걸까. 내 경우에 바라는 것은 그저 일이 잘 굴러가고 서로 무례하게 대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를 필요가 없고 내가 충분히 누를 수 있는 버튼을 대신 눌러줄 필요도 없다. 도움을 주는 직원이 있는 것은 좋다. 하지만 서비스에 위계서열이 개입하는 것은 나는 필요하지도 바라지도 않는다. 주종관계가 끼게 되면 지극히 불편하다. 어떤 면에서는 내가 직원을 '억압'한다는 느낌마저 든다.

 일부 사람들은 왕 노릇 하기를 지나치게 즐긴다. 소위 '웨이터 시험(waiter test)'에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함께 식사할 때 여러분을 살갑게 대하지만, 식당 종업원은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무지막지한 상관들에게 당하고 나서 애먼 식당 직원들에게 군림함으로써 분풀이를 하려고 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은 남들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어야 당연하다고 믿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건 그런 성향은 심리적으로 기괴한 것이다.

 나는 프리랜서라 갑을(甲乙) 관계로부터 자유롭다. 자유로운 인간이란 게 뭔지 처음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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