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화재는 정부의 노인 의료 방치 탓"

곽희양 기자 2014. 5. 29.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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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민간 병원은 수익이 목표.. 질 낮은 의료진·약 사용국·공립요양병원 만들어 의료기준·가격 선도해야

28일 21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남 장성 효실천사랑나눔요양병원 화재는 한국 노인 의료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고령화 사회의 노인 의료를 주도하지만, 수익을 최대화하고 감독·규제의 통제 밖에 있는 민간병원들의 민낯을 본 셈이다.

29일 경향신문과 만난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39·재활의학과 전문의·사진)은 "요양병원 화재는 국가가 '수익 최적화된 민간병원에 노인 의료를 방치하면서 나타난 일"이라며 "적어도 요양병원 10곳 중 3곳은 공공요양병원으로 자리 잡아 노인 의료에 대한 적정 기준을 만들어주는 형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국장은 현재 경기 고양시 일산의 한 요양병원에서 1년4개월째 일하고 있다.

정 국장은 병원 근무자 수부터 짚었다. 병원 측은 불이 났을 당시 전 병동에 의사 1명, 간호사 2명, 간호조무사 9명이 당직근무를 하고 있었다. 의료법에 따르면 당직의사는 2명이어야 한다. 병원 측이 발표한 당직근무자 수가 부풀려졌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왜 병원은 적정 인원을 배치하지 않았는지에 안전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요양병원은 환자의 중증도에 따라 1명당 일정한 돈을 건강보험공단과 환자에게서 받는다. 이른바 '일당정액제(요양병원 원형수가제)'다. 정 국장은 "일당정액제가 과잉 의료를 막아 의료비용을 줄이는 데 성공했지만, 의료의 적정한 효과를 만들어내는 데는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요양병원은 일당정액제에 따라 환자 1명당 하루 평균 6만5000원가량을 벌어들인다. 여기엔 병실료, 약값, 인건비가 포함되어 있다"며 "수익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병원 입장에선 의료진이나 약값 등을 적게 쓰거나 싸게 쓸수록 이득을 보는 구조가 된다"고 설명했다.

요양병원은 등급에 따라 의료진 수가 정해져 있다. 그 숫자를 줄일 수 없기에 병원에는 한 가지 방법만 남는다. 임금을 적게 주는 것이다. 정 국장은 "임금을 적게 주기 위한 쉬운 방법이 의사와 간호사에게 당직근무를 시키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국장은 "요양병원에서는 공동간병비를 포함해 한 달 본인부담금 70만~100만원으로 노인 환자 1명이 지낼 수 있다"며 일당정액제를 유지하되, '노인 적정의료 기준'을 만들어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당정액제가 과소 의료를 만들어낼 위험성이 있어 꼭 필요한 의료인데도 소홀히 하는 경우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노인 적정 의료 기준'을 만들어낼 주체가 없는 점이다. 적정 진료 기준은 의학적인 판단과 더불어 환자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 설정된다. 그는 "의료 적정 기준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비영리적 기준을 제공할 집단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노인 의료에서 공공적인 성격을 지닌 집단이 없다"면서 "요양병원 등 노인 의료가 전적으로 민간병원에 의해 제공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04년 110여개에 불과했던 요양병원은 5월 현재 1260여개로 늘었다. 하지만 사실상 공공 요양병원은 없다고 했다. 정 국장은 "지자체에서 만든 요양병원 40여곳 모두는 지자체에서 부지를 공급하고, 운영은 의료법인에 위탁하는 방식이며 위탁기간이 20~30년에 달한다"고 말했다.

정 국장이 제시하는 대안은 지역별로 지자체나 국가가 직영하는 공공 요양병원을 세우는 것이다. 정 국장은 "수천개의 민간 어린이집이 무턱대고 가격을 올리지 못하는 이유는 국공립 어린이집이 내건 가격이 기준이 되기 때문"이라며 "같은 원리로 요양병원 10곳 중 3곳만이라도 국공립 요양병원으로 만들고, 이것이 적정한 노인 의료 기준과 그에 따른 가격을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난해 수익성을 이유로 폐쇄된 진주의료원의 모습에서 보듯, 한국의 공공의료는 후퇴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 국장은 "공공 요양병원이 생기고, 실제 이들이 적자를 본다 하더라도 이는 지역 환자와 저소득층에 혜택을 주고 노인 의료의 수준을 정하는 '착한 적자' "라고 강조했다. 정 국장은 "수익 극대화의 원칙 때문에 안전사고가 재발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적어도 노인 의료의 적정 기준이라도 공공 노인 의료기관이 설정하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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