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단체에 정부 지원금 몰아줬다

조해수·이규대 기자 2014. 5. 19.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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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초, 김기춘 청와대비서실장은 보수 성향 시민단체 대표 10여 명과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 김 실장은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싸워온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며 이들을 치켜세웠고, 보수단체 대표들은 "대한민국 정통성을 지키는 데 박근혜정부가 흔들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화답했다. 이보다 앞서 남재준 국정원장 역시 보수단체 대표들을 비공개로 만나 '대한민국 체제 수호'에 대한 결의를 다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는 국정원 대선·정치 개입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때였다. 야당과 진보단체는 이 사건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최대 위기'로 규정했다. 그러나 보수단체들은 "국정원의 정당한 종북 견제 활동을 선거 개입으로 왜곡하고 있다"며 "간첩과 종북 세력을 수사하기 위해 국정원의 기능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맞불 시위를 열었다.

2012년 10월11일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 KT 앞에서 '북한의 대선 개입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인공기가 새겨진 현수막을 찢어 불에 태우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해마다 70여 개 보수단체에 40여 억 지원

'비영리 민간단체(NPO)'는 공익과 민주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일을 주요 임무로 삼는다. 때문에 NPO는 입법·사법·행정부와 언론에 이어 제5의 권력으로 불린다. 정부는 NPO 활성화를 위해 지난 2000년 '비영리 민간단체 지원법'을 제정해 국민의 세금으로 이들 단체를 지원해오고 있다. 후원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특성상, 정부 보조금은 NPO의 활동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정부 보조금 지원은 애초의 목적과 달리 정권의 성향이나 입맛에 맞는 NPO들에 집중돼왔다.

박근혜정부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박근혜정부는 대선 과정에서부터 첨예화됐던 보수와 진보의 갈등으로 자연스럽게 보수단체와 손을 맞잡게 됐다. 시사저널은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인 2013~14년 안전행정부의 '비영리 민간단체 공익 사업 지원 대상 선정 내역' 자료를 입수했다. 이를 통해 정부로부터 국고를 지원받은 민간단체의 성향을 분석하고, 보조금 지급 내역을 따져봤다. 우선 일반적으로 '보수 성향'과 '진보 성향', 그리고 '보수와 진보로 구분하기 모호한 단체' 등 세 종류로 크게 분류했다. 이와 함께 보수 성향 단체 중 누가 보더라도 명확히 보수로 성격이 구분되는 단체에 한해서만 '보수단체'로 별도 분류했다. 본지가 보수단체로 분류한 기준은 △보수단체가 연합해 출범한 '범시민사회단체연합'에 속해 있는 단체 △2012년 대선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 지지 선언을 한 단체 △친(親)정부·보수 인사가 대표를 맡고 있는 단체 등이다.

'국가 안보'는 보수단체의 보조금 창구

박근혜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 안전행정부는 289개 단체에 144억8000만원을 지원했다. 취약 계층 복지, 국가안보·재난안전, 선진 시민의식 함양, 녹색성장(환경),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등 5개 사업 유형 중 국가안보·재난안전 관련 단체에 37억여 원이 배정돼 비중(약 25%)이 가장 높았다. 국가안보 분야는 이명박(MB) 정부 때인 2011년 처음 지정돼 2012년 '국가안보 및 사회 통합'으로 바뀐 다음 박근혜정부 출범 후 재난안전과 함께 묶였다. 이 사업 유형에 속한 대다수 단체가 보수단체들로 채워져 있고, 선진 시민의식 함양 분야에도 보수단체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2013년의 경우, 70여 개의 보수단체에 40여 억원이 지원됐다. 전체의 약 25%에 해당한다. 나머지 단체들 중에서도 진보단체나 진보 성향에 가까운 단체에 대한 지원은 전무했다.

박근혜정부 첫해 보수단체에 대한 지원 비율은 보수단체 지원금이 급증한 MB 정부와 비슷한 수준이다. MB 정부 마지막 해인 2012년에는 73개의 보수단체에 37억원 정도가 지출됐다. MB 정부 출범 첫해인 2008년에는 10개 단체, 4억여 원에 불과했다. 이때에 비해 7~8배 늘어난 수치다. '국가안보'라는 사업 유형 분야가 보수단체의 국가보조금 창구가 된 셈이다.

올해는 293개 단체에 총 132억7000만원이 지원됐다. 이 중 국가안보·안전문화 유형에 33억원이 지원됐다. 반면 올해 신설된 민생경제·문화발전 유형에는 단 5억8000만원이 배정됐을 뿐이다. 올해 국고 지원을 받은 단체들 중 보수단체는 70여 곳, 액수는 30여 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보수 성향 단체 중에는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를 발표하며 사실상 선거운동을 펼친 단체들도 있다. '비영리 민간단체 지원법'에 따르면, 비영리 민간단체는 '특정 정당이나 선출직 후보를 지지·지원할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거나, 특정 종교의 교리 전파를 주된 목적으로 설립·운영되지 아니할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생활안보협회·선진화시민행동·숭의동지회·NK지식인연대 등은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지지를 공개 선언했다.

지난해 6월17일 한국자유총연맹에서 열린 창립 59주년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여당 후보 지지 단체·폭력 시위 단체도 포함

불법 폭력 시위를 주도한 단체가 버젓이 보조금을 받아가기도 했다. 안행부는 불법 폭력 시위 단체로 규정된 NPO에 대해 3년간 지원을 받을 수 없도록 했다. 실제 2008년의 경우, 경찰이 광우병 촛불 시위에 참여했을 것으로 보이는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 속한 1800여 개 단체를 불법 폭력 시위 단체로 규정함으로써 진보 성향 단체들이 MB 정부에서 국가보조금을 받을 수 없도록 했다.

그러나 보수단체는 예외였다. 국민행동본부의 서정갑 본부장은 2004년 '국가보안법 사수 국민대회'에서 경찰관을 폭행하도록 방조한 혐의 등으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에는 대한문 앞 노 대통령 시민분향소를 파괴한 혐의로 위로금 8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행동본부는 2009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국가보조금을 지원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참여연대에서는 "기본적인 가치와 관계된 사업은 정권에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권이 보조금을 미끼로 NPO를 길들이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선정 단계에서부터 확고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영리 민간단체에도 '철밥통' 있다

비영리 민간단체에도 '철밥통'은 있다. 이른바 3대 관변단체로 불리는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한국자유총연맹·새마을운동중앙회가 그들이다. 다른 비영리 민간단체(NPO)에 지원되는 국가보조금이 1억원 미만인 데 비해 이들은 10억원이 넘는 돈을 매년 받아가고 있다. 정부가 2010년부터 '성숙하고 따뜻한 사회 구현' 사업을 시작하면서 이들 단체를 법정 지원 단체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 단체에 대한 사후 평가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다른 NPO의 경우 집행 기간 동안 두 번의 평가를 거쳐 '미흡' 단체로 지정되면 지원액이 감소하거나 다음 지원에서 배제된다. 평가 결과는 '우수' '보통' '미흡' 세 가지로 '미흡'은 사실상 목표한 사업에 실패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자유총연맹은 인터넷방송센터 운영 사업에서 미흡 판정을 받았음에도 2014년 예산안이 전년도와 동일하게 편성됐다. 심지어 자유총연맹은 지난해 국가보조금 1억3800여 만원을 횡령·전용한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안행부는 2014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자유총연맹에 또다시 11억2000만원을 배정했다. 이와 관련해 국회예산정책처는 2014년도 예산안 부처별 분석에서 "자유총연맹의 청년 조직인 지구촌재난구조단과 여성 조직인 어머니포순이봉사단은 보조금을 (자유총연맹과) 별도로 각각 지원받기도 했다. 안행부는 해당 단체들에 연례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기보다는 적정 보조금 규모와 예산안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조해수·이규대 기자 / chs900@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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