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아이들.. 꼭 세월호처럼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2014. 5. 1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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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14일 밤, 나이지리아 북동부 보르노 주 치복 시의 한 여학교. 깊은 어둠 속에서 무장한 사내들이 갑자기 나타나 총을 난사하며 학교 기숙사로 돌입했다. 기숙사에서는 여중생 250여 명이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총성에 놀라 일어난 학생들은 영문도 모른 채 숨을 죽였다. 잠시 후 기숙사 안으로 침입한 무장 사내들은 학생들에게 "모두 건물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쳤다. 학생들이 나가자 건물에 불을 지르면서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를 외쳤다.

비로소 소녀들은 사내들의 정체가 이슬람 무장세력인 '보코하람'이란 것을 알아챘다. 보코하람은 겁에 질린 여학생들을 트럭 3대에 나눠 태운 뒤 학교를 떠났다. 그 와중에 50여 명은 필사적으로 도망쳐 가까스로 납치를 모면했다. 그러나 나머지 학생 200여 명은 행방이 묘연한 상태.

부모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학교 주변의 밀림을 울면서 뒤지는 것밖에 없었다. 치복 시의 한 주민은 "위험한 행동이다. 보코하람에게 걸리면 부모들의 생명도 보장받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런 야만적인 행위에 나이지리아 정부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나 대형 언론들의 처신과 놀랄 정도로 비슷했다.

ⓒAP Photo 여학생 200여 명 납치 사건과 관련해 5월6일 학부모와 시민들이 구출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여학생들이 납치된 직후 나이지리아 정부는 "전원 구출했다"라고 발표했다. 덕분에 외신의 보도를 막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납치된 여학생이 200명 이상이며 그중 한 명도 돌아오지 못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지금까지도 납치된 여학생의 정확한 명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오락가락하고 있다. 외신들의 질문에는 "수색 작업에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라는 답변만 되풀이한다.

이런 와중에 납치 주범인 보코하람의 지도자 아부바카르 셰카우가 범행과 관련한 황당한 성명을 동영상으로 늘어놓았다. "소녀들은 알라의 소유다. 알라의 뜻에 따라 소녀들을 팔아치울 것이다." 그 직후, 보코하람이 여학생들을 1인당 2000나이라(약 1만4000원)에 카메룬, 차드 등으로 팔아넘기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잇따랐다.

놀랍도록 닮았다, 정부와 언론의 행태

다급해진 학부모들은 거리시위에 나섰다. 지난 5월1일에는 학부모 수백명이 치복 시에 집결해 붉은 옷을 입고 학교로 행진한 뒤 정문에서 자녀들의 무사 귀환을 기도했다. "납치된 우리 딸들을 찾아주세요.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겠습니다." 같은 날, 남서부 라고스 시에서도 이 사건에 분노한 주민 100여 명이 모여 시위하는 등 나이지리아 곳곳에서 정부의 신속한 구출 작업을 촉구하는 행사가 벌어졌다.

ⓒAP Photo 5월2일 보코하람이 벌인 것으로 추정되는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 폭탄 테러 현장.

드디어 정부가 나섰다. 대통령 부인인 페이션스 조너선이 납치 학생의 어머니들을 만난 것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대통령 부인이 호통을 쳤다. "당신들, 지금 게임을 벌이고 있는 거지? 아이들을 이용하는 시위는 당장 걷어치워!" 조너선은 심지어 "시위대가 나이지리아 정부 및 대통령의 이름에 먹칠을 하기 위해 여학생 납치 이야기를 꾸며냈다. 보코하람 조직원으로 의심된다"라는 터무니없는 모함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에 강력하게 반발한 학부모는 체포되었다. 그 직후인 5월5일에는 나이지리아 국가안보원 요원들이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치복 주민 느디르파야 씨를 끌고 가기도 했다. 나이지리아 정부가 납치 여학생들을 찾지 못한 대신 학부모와 시위대만 성공적으로 진압하고 있는 셈이다.

나이지리아는 인구 1억7000만명(세계 7위), 면적 92만3768㎢(32위)인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이자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이다. 최근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제치고 아프리카 1위 경제국으로 올라서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는 속수무책이다.

여학생들을 납치한 보코하람은 나이지리아 최대 폭력단체로 알카에다 연계 조직이기도 하다. 보코하람은 여성에 대한 교육 등 '서구식 교육'을 죄악으로 간주한다. 100여 년 전 영국 식민통치의 일환으로 유입된 선교사들이 기독교를 전파하면서 설립한 미션스쿨들이 이슬람을 배제했던 것은 사실이다. 보코하람은 자신들의 이슬람 신앙을 반(反)기독교로 연결시키고 이를 다시 '서구식 교육은 죄악'이라는 신념으로 확장했다. 보코하람(Boko Haram)에서 '보코'는 '서양식 비이슬람 교육'을 뜻하고, '하람'은 '죄악'이라는 의미의 아랍어다.

보코하람은 2001년 9·11 사태 직후, 무함마드 유수프가 나이지리아 북부의 보르노 주에서 창설했다. 처음엔 보코하람 역시 여느 이슬람 단체와 다르지 않게 '나이지리아에 이슬람 신정국가를 세운다'는 정치·사회적 변혁을 주장했다. 그러다 2009년 정부의 대대적 소탕 작전으로 지도자인 무함마드 유수프를 비롯한 조직원 800여 명이 숨지면서 존립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보코하람은 오히려 이때부터 조직의 몸집을 크게 불리기 시작한다. 이슬람 원리주의자가 아니라 범죄자나 불량배들을 조직원으로 대량 유입한 것이다. 실업난으로 허덕이는 나이지리아 젊은이들에게 보코하람은 쌓이고 쌓인 불만을 폭력적으로 터트리는 동시에 이슬람 수호라는 이데올로기적 명분까지 충족시켜주는 탈출구로 보였을 수 있다.

이후 보코하람은 당초 내세운 이슬람 원리주의는 사실상 포기하고 인신매매와 납치, 강탈 등으로 돈을 버는 범죄 집단으로 전락했다. 미국은 지난해 11월 보코하람을 테러조직으로 규정하면서 이 조직의 지도자 아부바카르 셰카우에게 현상금 700만 달러(약 72억원)를 내걸었다. 미국 정부가 서아프리카를 무대로 활동하는 무장세력에게 현상금을 제시한 것은 보코하람이 처음이다.

나이지리아에서 납치와 인신매매는 흔한 범죄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보코하람은 최근 몇 년간 나이지리아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10대 소녀 납치를 주도해왔다. 보코하람이 최근 3년간 납치한 인질 수는 1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는데, 그중 상당수가 학생이다. 이번 여학생 납치사건은 단일 사건으로는 규모가 크기 때문에 전 세계적인 뉴스가 되었다.

보코하람은 지난해 9월, 나이지리아 동북부 요베 주의 한 농업학교 기숙사에 침입해 최소 40명에 달하는 학생들을 살해했다. 이에 앞선 지난해 7월에도 같은 지역의 학교를 총기와 폭탄으로 공격해 41명이 숨진 바 있다.

"보코하람에게 이슬람은 도둑질의 명분일 뿐"

보코하람은 자신들의 극악무도한 범죄를 이슬람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인구 중 50.5%가 무슬림, 48.2%가 기독교다. 양대 종교의 신도가 비슷한 수를 점하며 대립한다. 지역적으로는 무슬림들이 빈곤한 북부에 주로 거주하는 반면 상대적으로 윤택한 남부 주민 중에는 기독교인이 많다. 이에 따라 종교와 지역 양 차원에서 '이슬람 대 기독교'라는 큰 전선이 형성되어 있다. 나이지리아 여학생들이 납치된 치복은 이슬람교가 우세한 보르노 주의 몇 안 되는 기독교인 마을이다.

보코하람은 인신매매나 가축을 약탈해 자기 배를 채우는 범죄 조직에 불과하지만 테러의 명분으로 '서구식 교육을 알라가 금하기 때문'이라는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 때문에 정작 무슬림들도 보코하람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이집트의 이슬람 학자 셰이크 이브라힘은 "보코하람에게 이슬람은 도둑질의 명분에 불과하다. '하람(죄악)'이란 용어를 입에 담아서는 안 될 정도로 질 낮은 도둑들이다"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예멘의 한 종교 지도자도 "어느 알카에다 세력도 지금까지 소녀들을 납치해서 시장에 내다팔 정도로 타락한 적은 없다"라며 보코하람을 비난했다.

이슬람이라는 종교보다 지금은 납치된 여학생들의 안위가 우선이다. 딸들을 찾아 헤매는 부모들은 소녀들이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게 해달라고 전 세계에 호소하고 있다.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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