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31분, 청와대가 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은?

2014. 5. 1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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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위기관리센터장에게 해경 문자 보고,박대통령에게는 10시 이전 보고됐을 것으로 추정…청와대의 사고 인지 시점 등국회의원 자료 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아

"살려주세요."

세월호에 탄 학생의 첫 신고는 결국 우리가 들어주지 못했던 간청으로 시작된다. "배가 침몰하는 거 같아요." 학생은 세월호 바깥 세상이 지체 없이 움직여줘야 할 이유를 '침몰'이란 단어에 압축했다. 그 시각이 4월16일 아침 8시52분.

학생이 보낸 신호는 위태로운데, 국정의 최고 지휘사령부라 할 청와대는 굼떴다. 재난 사태를 총괄하는 안전행정부가 청와대 국가안보실 산하 위기관리센터장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세월호 상황을 알렸다는 시각은 9시31분. '살려달라'는 학생의 목소리가 전남소방본부 119상황실로 전해온 지 39분이나 흘러간 시점이다. 그 시간만큼, 바닷물은 세월호를 물 밑으로 더 주저앉히고 있었다.

해경은 25분 뒤, 안행부는 다시 6분 뒤

수백 명의 생명이 가라앉는 국가적 재난마저 청와대에 더디게 접수되는 위기관리 부실 외에도 밝혀져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장의 휴대전화에 들어왔다는 '9시31분 문자'는 어떤 내용이었을까. 그 문자는 참사를 안이하게 판단한 내용은 아니었을까.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첫 시점은 언제였을까. 보고를 받은 대통령의 조처는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나. 선장·선원·선박회사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주문하고, 관료조직을 꾸짖는 청와대가 유독 자신들을 향한 이 모든 물음에는 입을 굳게 닫고 있다. 야권은 청와대가 '늑장·부실 대응' 책임을 덜기 위해 관련 사실을 덮으려 한다며, 청와대 책임론을 포함한 세월호 참사 원인을 규명하는 국회 국정조사 등을 요구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여객선침몰사고 대책위원회' 상황실장인 김현 의원은 청와대의 초기 대응 실패 원인을 밝히기 위해 다가가는 정치인 가운데 한 명이다.

그가 최근 입수한 자료를 보면, 전남소방본부 119상황실(8시52분), 전남경찰청 112상황실(8시56분)을 거쳐 학생의 다급한 구조 신호를 받은 목포해경은 9시5분36초에 상급기관인 해양경찰청(해경) 등에 '상황보고서 1보'를 팩스로 밀어보낸다. 상황보고서는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는 세월호가 침수 중이라며 신고한 사항"이라고 적고 있다.

목포해경의 보고를 받은 해경은 이상하게도 상황 전파에 뜸을 들인다. 해경은 9시30분이 돼서야 청와대 정무수석실 산하 사회안전비서관실, 안행부 중앙안전상황실,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 등에 상황보고서를 팩스로 올린다. 목포해경한테서 '1보 보고'를 받은 이후 25분이 아깝게 흘렀다. 더 충실한 상황보고를 위해 25분을 사용한 걸까. 그런 것 같지도 않다. 해경이 9시30분에 전파한 상황보고서엔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는 세월호가 침수 중 침몰 위험이 있다고 신고한 사항'이라고 돼 있다. 9시5분 목포해경의 보고서와 별로 다르지 않은 상황보고서를 만들어 청와대 등에 전파하는 데 25분을 버린 것이다.

국가안보 위기 정보가 집결되는 청와대 국가안보실 산하 위기관리센터에 세월호 상황이 전달된 과정은 참사의 심각성에 견주면 서글픈 코미디에 가깝다. 9시25분께 강병규 안행부 장관에게 세월호 상황이 전달된 뒤, 안행부는 6분이 더 지난 9시31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장에게 사태를 알린다. 9시31분이면 세월호가 이미 절반 이상 기울어 대형 참사 위험이 커진 시각이다. 문자메시지 정도로 상황을 청와대와 공유할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문자메시지 내용이 무엇인지, 이후 김장수 실장이 박 대통령에게 언제, 무슨 내용을 보고했고, 대통령한테서 어떤 지침을 받았는지가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다. 해경이 안행부의 '문자메시지 보고'보다 빠른 9시19분에 청와대 국가안보실 종합상황실에 유선보고를 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지만, 해경은 어떤 내용의 유선보고를 했는지도 밝히지 않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청와대가 사태 판단을 할 시간이 9시19분부터 있었는데도, 생명을 구할 기민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군사·외교적 위협 대비만 국가안보로 관리

청와대는 이런 사실들을 모두 알아보려는 국회의원의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김현 의원은 참사 발생 닷새째인 4월21일 청와대 국가안보실에 7건의 자료를 요구했다.

① 여객선 침몰 사고와 관련해 청와대가 (사고 발생) 39분 만에 문자로 첫 보고를 받았다는 보도가 사실인지 여부

② 여객선 침몰 사고와 관련해 보고받은 내역(시간대별로 보고받은 기관과 내용 명시)

③ 실제 대통령 보고 내역

④ 사고 관련 대책회의 내역

⑤ 청와대 위기관리실 구성 현황

⑥ 사고 관련 위기관리실 대응 내역

⑦ 사고 관련 대통령 지시사항(시간대별 지시사항)

김 의원은 5월7일 다시 국가안보실에 "현재까지 (이 모든)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사유와 근거를 제출해달라"고까지 요청했다. 청와대는 이것마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김 의원은 "이번에 피해가 큰 원인이 청와대의 허술한 초동 대처로 인한 것임이 분명해지고 있다. 청와대의 사고 인지 시점, 청와대 초동 대응에 국민적 의혹도 깊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한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에 청와대는 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참여정부(노무현 정부)의 '포괄적 안보' 개념과 재난 사태까지 포함한 국가위기 대응체계를 세우는 데 적극 참여한 한 인사는 박근혜 정부의 이번 대응이 너무 허술했다고 말했다. '포괄적 안보'는 전통적인 안보 위협뿐 아니라 국민의 생명·안전을 해치는 자연재난, 인적 재난, 국가 핵심 기반 마비까지 안보 개념에 집어넣어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참여정부에선 해경 등 재난·사고를 접수한 기관이 곧바로 핫라인(직통전화)으로 청와대 국가안보실 종합상황실에 보고하도록 돼 있었다. 2005년 우리 어선 '신풍호'가 일본 순시정에 나포되려 했을 때, 신풍호가 부산해경에 이 사실을 알리고, 부산해경은 해경 본부상황실에 보고하면서 동시에 청와대 국가안보실 종합상황실에도 핫라인으로 보고했다. 해경 경비국장이 위기관리센터장과 직접 통화까지 하며 상황에 대처했다. 그런데 수백 명이 탄 세월호 침몰에서, 안행부가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 문자메시지로 알렸다? 현 상황이 심각하다는 상황 판단을 하지 못하고, 현재 상황을 기계적으로 알리고 공유하겠다는 무책임한 처사다."

그는 해경·안행부·청와대로 이어지는 기관·정부의 늑장 보고와 부실 대응은 결국 군사·외교적 위협 대비만 국가안보로 관리하고, 재난에 대한 청와대 컨트롤타워(통합 관리)를 포기한 박근혜 정부의 국정철학에서 기인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번 사고가 난 사회구조적 적폐를 찾는 것 못지않게 청와대가 숨기려는 부실 대응도 철저히 끄집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39분 지체, '즉각적인 보고'

늑장 보고 비판에 대한 청와대 인식은 좀 다른 듯 보인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4월16일 오전 10시30분께 내놓은 청와대 브리핑은 이렇게 시작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오늘 오전 진도 인근에서 발생한 여객선 침몰 사고와 관련해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즉각적인 보고를 받았습니다…."

청와대가 공개하지 않았지만, 박 대통령에게 보고된 시점은 9시45분 전후~10시 이전 어디쯤으로 추정된다. 대변인은 이 시각에 이뤄진 보고를 '즉각적인' 것이라 봤다는 얘기다.

그날 전남 112상황실에 신고한 또 다른 승객은 '세월호'조차 발음하지 못했다. "세…세…세…. 침몰 직전이라예." 그 시각이 아침 8시56분께. 청와대 대변인의 '즉각적인 대통령 보고'와 약 50분의 시차가 난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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