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진도 팽목항의 5월

이가혁 2014. 5. 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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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을 때보다 더 꼬박꼬박 세끼 잘 챙겨먹고 있는 것 알잖아요."

지난 1일장례를 치르고 안산에서 다시 진도를 찾은 '희생자 가족'들이 위로를 건네자'실종자 가족'들은 오히려 "괜찮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아이의 시신을 먼저 찾았다는 이유로 위로를 건넬 수 있는 곳이이곳 진도 팽목항의 5월 입니다.

그렇다고 이곳이 거대한 슬픔의 공간만은 아닙니다.항구를 따라 수 백 미터 늘어선 자원봉사 천막은언뜻 동네 장터를 연상시킬 때도 있습니다.

즐거웠던 때가 떠오르는 듯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며 미소 짓거나평온하게 대화를 나누는 실종자 가족들도 종종 보입니다.

사고 발생 23일.한 달 가까운 이 시간은, 팽목항이 원래 이런 곳이었던 것 마냥우리들을 적응시키고 있습니다.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에게 이 익숙함은 곧 두려움입니다.

지난달 30일 팽목항을 다시 찾은 정홍원 국무총리에게목이 다 쉰 실종자 가족 한 명이 말했습니다.

"맨 마지막까지 총리님도 자리 지켜주세요.언론의 관심도 떨어질 것이고, 그 때 남은 가족들이랑도 자리를 지켜주세요."

실종자 가족들을 괴롭히는 것은지금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조차 모른다는 공포,누군가는 마지막 '실종자 가족'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였던 겁니다.

그럼에도 이곳에선슬픔과 공포를 어루만지는 손길이 끊이질 않습니다.

석가탄신일 밤희생자의 극락왕생을 빌고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연등 날리기 행사도 그 중 하나입니다.

바다 속에 있는 실종자 수보다도더 많은 불빛이 밤하늘에서 별처럼 환하게 빛났습니다.

"얼른 나와. 추운데서 뭐해. 엄마 말 안 들을래."

그 불빛 하나 하나가 내 아이인양가족들은 지난 스무날을 거치며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겨우 포개어 놓았던 슬픔을 밤 바다에 소리치며 또 내뱉었습니다.

후진국형 참사.이번 사고를 이렇게 부릅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 묘한 착각을 일으킵니다.마치 '우리처럼 잘 사는 나라에선 일어나지 않을 사고인데이례적으로 일어났다'는 착각 말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착각했던 일이눈 앞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이쯤되면 '후진국형 참사'가 아니라 '한국형 참사' 아닐까요.

언제인지는 모르지만천막이 하나, 둘 걷히고 팽목항은 또 예전의 모습을 되찾게 될 겁니다.또 우리는 착각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잊지 말자는 겁니다.슬픔과 위로를 강요하는게 아니라,이 슬픔과 위로를 어떻게 보관할지 정도는,그래서 또 착각에 빠지지 않을 방법을 함께 고민하자는 겁니다.

JTBC 사회2부 이가혁 기자사진=중앙 포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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