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플러스한국 - 이 사람 - 이현영 성악가

2014. 5. 2.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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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성악가"

지난해 5월, 경주 문화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경주 동국대학교 평생교육원 성악교실 출신 아마추어 성악가 40여 명이 경주 오페라단에서 주최한 공연에 게스트로 출연한 것. 순수 아마추어 합창단이 프로 무대에 오르자 중앙 방송국에서 반응이 왔다. 올해 초 출연 제의가 들어왔다. 성악교실을 지도한 이현영(45) 씨는 '최고의 성악 트레이너'라는 컨셉으로 출연할 예정이다. 이씨는 "기술적인 부분보다 음악이 가진 힐링의 힘을 전하려고 애썼는데, 그런 진심이 통한 덕분에 수강생들의 기량이 급성장한 것 같다"고 밝혔다.

이씨는 지역 성악계에서 관객들과 '끈적한 관계'를 가장 잘 형성시키는 성악가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공연 전에 반드시 관객에게 말을 건다. 코미디언처럼 한두 번쯤 웃긴 뒤에야 노래를 시작한다. 노래도 관객들과 함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노래 끝날 때까지 박수 외에는 반응할 기회를 주지 않는 여느 성악가와는 사뭇 다르다. 교수 명함 하나 없는 그가 지역에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성악 스타"로 통하는 이유다.

성악교실 지도하며 '지역의 스타'로

그는 프로필만 놓고 보면 그리 성공한 성악가가 아니다. 머피의 법칙처럼 하는 일마다 잘 안 됐다. 유학부터 그랬다. 그는 1996년 이탈리아 밀라노로 유학을 떠났다. 언어학교를 다니다가 국립음악원에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얼마 후 IMF가 터졌다.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어머니가 울먹이면서 "돌아와야겠다"고 말했다.

빈손으로 돌아온 그를 반기는 곳은 없었다. 버스비가 없어서 연습실까지 3시간을 걸어 다녔다. 하루에 잠을 3시간 이상 자지 못했다. 귀국 3달 만에 몸무게가 30kg이나 빠졌다.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그저 스트레스 때문이려니 했다.

"급성 당뇨더라고요. 집안에 당뇨에 걸린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당뇨란 의심을 전혀 못했죠."

잘 아는 분이 인진쑥을 달여 먹으면 좋다고 했다. 시키는 대로 했더니 차도가 있었다. 다행히 몸무게가 74kg으로 올라왔다.

이후의 삶은 말 그대로 악전고투였다. 유학비를 마련하고 싶어 다단계 회사에 들어가 정수기 판매를 하다가 잘 아는 목사님에게 "성악으로 할만큼 해보고 나서 다른 데 눈을 돌려가"는 충고를 듣고 그만두기도 했다. 그 시절 수익이라곤 교회 성가대 지휘 사례비로 받은 40만 원이 거의 전부였다. 2,000년에 모 시립합창단에 겨우 합격했지만, 비상임 단체였던 까닭에 수당으로 월 20만 원을 받았다. 몇 해 뒤 비슷한 시기에 유학을 떠났던 선후배들이 귀국하기 시작했다. 돌아온 즉시 전임강사, 교수 자리를 척척 꿰차는 것을 보고 다시 절망에 빠졌다. 다시 불면의 밤이 찾아왔다.

꼬이는 삶…아내 덕에 '행복 유턴'

그의 삶이 회복되기 시작한 것은 2006년이었다. 그해에 지금의 아내인 황재윤(38)씨를 만났다. 모 남성합창단을 지휘를 맡고 있었는데, 어느 날 황씨가 대타 반주자로 왔다. 첫 눈에 이 여자다 싶었다. 음악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였는지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황씨는 9살 때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난 후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할머니가 끔찍하게 아꼈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은 늘 허전했다. 그 빈자리에 이씨가 치고 들어온 것이었다.

"아내가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줬죠. 이전과 비교할 때 나아진 건 아무 것도 없었지만, 이 사람만 곁에 있으면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그렇다고 고생 끝 행복 시작은 아니었다. 5년이 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병원에선 "당뇨로 인한 불임"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한동안 잊고 있던 병이었다. 충격이었다.

2008년부터 당뇨와 전쟁을 시작했다. 즐겨 마시던 설탕 커피를 끊고 꾸준히 운동을 했다. 이번에는 너무 열심히 관리해서 문제가 생겼다. 식사량을 지나치게 줄이고 운동만 한 탓에 2010년 돌발성 난청이 왔다. 지금도 왼쪽 귀는 30%밖에 들리지 않는다.

"음악 통해 삶의 진실 전하고파"

아기는 결국 시험관을 통해 가졌다. 지난해 2월 딸 '시온'이가 태어났다. 결혼 8년 만에 진짜 가족이 탄생했다. 그는 "누구보다 오랫동안 참고 기다려준 아내에게 감사한다"면서 "아내가 없었다면 벌써 인생을 포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천명을 5년 앞두고 겨우 아빠가 되었지만 너무 행복합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 그리고 음악이 늘 제 곁에 있을 테니까요. 음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제가 발견한 삶의 진실과 행복을 전파하고 싶습니다. 단언컨대,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성악가입니다."

글 김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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