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훈의 창과 방패] 퍼거슨 마음 속 박지성

조회수 2014. 4. 28. 16:1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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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긱스가 맨유 임시 감독으로 데뷔전을 치른 날, 좀처럼 예상하기 힘든 뿌듯한 장면이 연출됐다. 4-0 완승에 기뻐한 맨유 홈 팬들이 과거 스타들의 이름을 외쳤는데 연호하는 선수 이름에 박지성이 포함된 것이다. 맨유의 전성기가 다시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세리머니였고 그만큼 박지성은 맨유 중심이었다.

맨유에서 26년 동안 지휘봉을 잡은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하버드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게 됐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졌다. 퍼거슨 감독은 "영향력 있는 사람들 앞에서 내 경험을 전할 수 있게 돼 기쁘다"며 좋아했다. 퍼거슨 감독은 지금까지 하버드대학교에서 이미 몇 차례 강의를 했고 이와 관련된 언론 인터뷰도 몇 번 했다. 그 때 퍼거슨 감독은 자신이 갖고 있는 철학을 소개했다. 물론 언론보도나, 공개된 강의 중에 박지성 이름을 찾기는 힘들지만 퍼거슨 감독이 소개한 내용에는 박지성을 지칭하는 것들이 적잖다.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는지를 알면 맨유 팬들이 박지성을 연호한 이유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 "나는 재능 있는 선수들이 열심히 훈련하기를 바란다. 선수들은 그가 최고라는 것을 훈련에서, 경기에서 모두 보여줘야 한다. 이는 스타들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노력하면서도 자부심이 강한 스타들만이 승리할 자격이 있다. 호날두, 베컴, 긱스, 스콜스 그 외에도 많은 슈퍼스타들도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훈련했다."

노력에서 둘째가라면서 서러워할 게 박지성이다. 박지성이 맨유 소속의 다른 슈퍼스타들에 비해서 기술적으로 뛰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걸 박지성은 성실함, 부지런함, 노력, 희생정신으로 메웠다. 박지성이 맨유 소속으로 경기를 뛸 때마다 대부분 가장 긴 거리를 뛰었고 가장 넓은 공간을 누볐다. 그 때마다 박지성은 "공수에서 모두 열심히 뛰었다"는, 박지성이 들을 수 있는 최고 찬사를 받았다. 퍼거슨 감독도 2005년 박지성을 영입한 3가지 이유를 '활동량' '자세' '총명함'으로 꼽았다. 퍼거슨 감독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박지성은 7년 내내 그라운드에서 보여줬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지난 18일 인터뷰에서 "일관성 있는 플레이를 할 수 있는 비결은 노력"이라며 "노력은 훌륭한 선수와 스타를 구분하는 기준"이라고 말했다. 그 또한 퍼거슨 감독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 "나는 선수들이 발전하는 것을 보면 너무 뿌듯하다. 감독은 교사와 비슷하다. 선수들이 더 발전하도록 독려하고 더 나은 선수가 되도록 격려해줘야 한다.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면 충성심도 생기게 마련이다. 그리고 선수들도 자신에게 처음으로 기회를 준 감독을 항상 기억한다. 자신을 위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선수들은 감독의 결정에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면 그 선수들은 분명히 놀라움을 선사해줄 것이다."

박지성은 아인트호벤에서 맨유로 간 뒤 크게 성장했다. 네덜란드리그보다 훨씬 더 비중이 큰 프리미어리그에서 꾸준히 뛰면서 쌓인 노련미, 경험 덕분이었다. 그런 기회를 준 게 바로 퍼거슨 감독이다. 박지성은 맨유 입단 초기 한동안 골을 넣지 못했지만 그래도 퍼거슨 감독은 꾸준히 그를 기용했다. 덕분에 박지성은 리그뿐만 아니라 챔피언스리그라는 더 큰 무대에서도 제몫 이상을 해주는 큰 선수로 성장했다. 이렇게 꾸준히 성장하는 박지성에 대해 퍼거슨 감독도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박지성이 골을 넣지 못해도 골 장면에서 간접적으로 도움이 되거나 수비와 빈공간 커버 등 궂은일에서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하는 박지성을 퍼거슨 감독은 잊지 않았다.

■ "나는 상대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선수 한 명 또는 두 명에게 집중하곤 한다. 프리킥을 가장 잘 차는 선수, 볼을 오래 갖고 있는 선수, 동료들을 격려해 뛰게 하는 선수 등 말이다."

퍼거슨 감독을 간간이 박지성을 승부수로 띄웠다. 물론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박지성 카드는 적중했다. 가장 대표적인 경기는 2009~2010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전인 AC밀란전이다. 당시 박지성은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해 상대팀 '에이스' 피를로를 집중 방어했고 맨유는 8강에 올랐다. 피를로는 최근 펴낸 자서전에서 "당시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에게 나를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라고 지시했고 박지성은 전자(electron)의 스피드로 그라운드를 뛰어 다녔다"면서 "박지성은 자신의 몸을 던져 나를 방어했다. 손을 쓰며 나를 겁주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나를 건드리는 일이었다. 당시 박지성은 유명한 선수였지만 그는 경비견처럼 사용되는 일에 동의했다"고 전했다. 퍼거슨 감독은 '지기 싫어하는 선수(bad loser)'를 선호했고 박지성이 바로 그랬다.

■ "내가 선수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잘 했어(Well done)'다. 비판을 받는 것을 좋아하는 선수는 없다. 칭찬과 독려가 더 효과적이다. '잘 했다'는 말은 선수가 들을 수 있는 최고 찬사다. 그 이상 최상급 단어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

박지성은 과거 맨유를 떠난 뒤 퍼거슨 감독으로부터 가장 많은 들은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잘 했어"라고 답했다. 퍼거슨 감독이 경기 후 인터뷰에서 박지성을 칭찬할 때도 "He has done very well and become an important player for us"라는 말을 자주 썼다. 박지성은 2005년 8월14일 에버튼전을 통해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을 치렀고 당시 선발 85분을 소화했다. 그 경기를 마친 뒤 퍼거슨 감독은 "Well done, welcome to premier league"라면서 "박지성의 움직임과 끈기는 훌륭했고(excellent), 돌파는 위협적이었다"고 말했다. Well done이라는 칭찬을 가장 자주 접한 선수가 박지성이었는지 모른다.

■ "나는 팀을 위해서 뛰는 선수들에게만 관심을 가진다. 나와 똑같이 지기 싫어하는 선수(bad loser) 말이다. 이기든, 패하든, 비기든 선수들은 고개를 들고 자존심을 유지해야한다. 그게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다."

특정선수의 가치는 함께 뛰는 동료들이 더 잘 안다. 박지성이 맨유 시절 수많은 칭찬을 들었지만 그 중 선수들에게 들은 최대 칭찬은 바로 "A real player for players"다. 선수들 중 진짜 선수라는 게 아니라 선수들을 위한 진짜 선수라는 의미다. 이보다 박지성을 정확하게 표현한 말은 없을 것이다. 자신이 빛을 보기보다는 동료들이 빛을 볼 수 있도록 그늘에서 묵묵히 궂은일을 수행하는 게 박지성이 가진 참된 가치다. 박지성은 이기든 비기든 패하든 고개를 숙이지 않았고 팀에 손해가 되는 행동은 그라운드 안팎에서 거의 하지 않았다. 그는 맨유 선수가 가질 수 있는 자존심을 그라운드 안팎에서 행동으로 보여준 대표적인 '맨유맨'이다.

■ "만약 감독의 권위와 통제에 도전하는 선수가 있다면 손을 봐줘야 한다. 만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선수들에 의해 통제된다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현재 우리가 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아닐 것이다. 어떤 선수가 분위기를 망치고 있다면, 그가 아무리 세계 최고 선수라고 해도, 그를 제거해야 한다. 클럽에서 감독의 존재감은 어느 누구보다도 커야 한다."

2005년 주장 로이 킨은 팀 동료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리고 그는 계약이 파기됐다. 벤치멤버에 머무는데 대해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현한 반 니스텔루이는 레알 마드리드로 떠났다.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최고 스타 데이비드 베컴이 퍼거슨에게 항명한 대가는 이적이었다. 그러나 박지성이 팀에 대해서 불평불만을 늘어놓거나 감독에게 대항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 "3시에 경기가 시작된다면 나는 두 시간 전인 1시에 엔트리 포함 여부를 선수들에게 알려준다. 엔트리에 들어가지 못하는 선수들에 대해서는 내가 개별적으로 그 이유를 설명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실수를 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이게 전술적으로 최선의 선택이다. 다음에 더 좋은 기회가 네게 주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며 선수들을 이해시킨다. 나도 선수 시절 스코틀랜드에서 뛸 때 컵 대회 결승전 엔트리에서 빠진 적이 있어 그 기분이 어떤지 잘 알고 있다."

박지성이 퍼거슨 감독에게, 아마도 유일하게 어필한 것은 2008년 5월 챔피언스리그 결승때였을 것이다. 박지성은 당시 모스크바에서 열린 첼시와의 결승전 엔트리에 빠졌다. 박지성은 모스크바까지 가서 훈련했지만 결승전 당일 박지성의 자리는 관중석이었고 옷은 양복이었다. 박지성이 퍼거슨 감독에게 섭섭함을 표현한 가장 대표적인, 어쩌면 가장 유일한 장면일지 모른다. 당시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에게 엔트리 제외 사실을 직접 알린 뒤 이해와 양해를 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잘 참은 박지성은 다음에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뛰는 기쁨을 누렸다.

■ "열심히 뛴 선수를 내보내는 게 나에겐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모든 증거는 필드에 있다. 어떤 선수의 기량이 저하되고 있는 걸 본다면 2년 뒤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박지성은 7년 동안 맨유 유니폼을 입고 뛴 뒤 QPR로 떠났다. 국내 팬들의 바람은 맨유에서 끝까지 뛰는 것이었고 본인도 '맨유맨'으로 남고 싶다는 뜻을 수차례 밝혔다. 그러나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을 내보냈다. 맨유를 떠나기 전 박지성의 움직임은 과거만큼 좋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릎 부상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 또한 박지성이 팀을 위해서 7년 동안 무릎이 상할 정도로 뛰고 또 뛴 결과였다. 그러나 퍼거슨 감독은 냉정했다. 기량이 저하되는 것을 본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보다 팀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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