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다시 등교한 날, 후배 운구차가 그 뒤를 따라왔다

입력 2014. 4. 24. 20:10 수정 2014. 4. 2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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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단원고 정상화 첫날

선생님·학생들 8일만에 만나

수업 못했지만 서로 위로 나눠

2학년 학부모들은 등교 걱정"친구들 노제 마주칠텐데…학교 밖 심리치유 우선돼야"

"…."

선생님 품에 안긴 여학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스승과 제자는 서로를 보듬은 채 슬픔을 삼켰다. 24일 오전 8시38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 정문 앞. 이 학교 3학년 여학생이 여교사의 품에 와락 안겼다. 세월호 참사 이후 8일 만의 등굣길이다. 이 여학생은 10여m 떨어진 교문 앞에 서 있던 선생님을 발견하자 바로 그에게 달려갔다.

절망을 딛고 단원고가 학교 정상화에 나선 첫날, 아침 7시부터 3학년 학생들의 등교가 시작됐다. 2~3명씩 번갈아 교문 앞에 있던 교사들은 말없이 목례하는 학생들의 등을 어루만지며 제자들을 맞이했다. 교정으로 들어선 학생들은 2학년 후배의 노제 행렬과 마주쳤다. 단원고 이아무개 교사는 "교실로 향하던 3학년 학생들이 발길을 멈추고 영구차를 향해 절을 하더라. 말썽 부리던 아이들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교사들이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등교는 이뤄졌지만 수업은 없었다. 대신 담임교사와 정신과 전문의가 참가한 가운데 1~3교시에는 조회와 '트라우마 떠나보내기' 프로그램이, 4교시에는 학급회의가 열렸다. 1학년은 28일 등교한다.

첫날 일정이 끝난 이날 낮 12시10분께 학교 정문 앞에 선 김학미 부장교사는 "교실 분위기는 무겁고 침통했지만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면서 서로 위로를 나눌 수 있었다. 아이들이 오히려 선생님을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의 성숙한 태도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함께 회복해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3학년 학생들의 등교가 시작됐다는 소식은 병원에도 전해졌다. 세월호 참사에서 구조돼 고대 안산병원에 입원중인 2학년생 74명은 텔레비전 등을 통해 이 소식을 접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표정은 무거웠다. 부모들은 아쉬움도 내비쳤다. 학부모들은 이날 학교 쪽에 '생존 학생들을 당장 학교에 복귀시키기보다는 안산 대부도의 경기영어마을 등 별도의 장소에서 치유(힐링) 프로그램을 시행해달라'고 요구했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생존 학생들이 배가 침몰할 때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과 슬픔이 여전히 큰데다 학부모들은 학교에 등교하면 마주칠 친구들의 노제에 또다시 충격을 받을까 걱정이 크다"고 전했다.

생존 학생들은 하루 전인 23일 문을 연 임시분향소 방문을 원했으나 병원 쪽이 금지했다. 심리적인 안정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입원 학생 중 20%는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게 병원 쪽의 진단 결과다.

이 때문에 학교 쪽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단원고의 한 관계자는 "살아남은 2학년 학생들의 상처를 치유하려면 학교만큼 안전한 공간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며, 현재 300여명의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의사들이 자원봉사를 위해 대기중"이라며 "그러나 학부모들의 요구가 절실한 만큼 관련 협의를 하면서 프로그램도 따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대 안산병원 차상훈 병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생존 학생들이 퇴원 후에도 학교 밖 심리안정 프로그램과 연계해 어느 정도 안정과 심리 치유가 이뤄져야 학교 복귀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대부분의 언론은 학교 쪽의 요청에 따라 학생 인터뷰를 하지 않는 등 취재를 자제했다. 하교 시간에 단원고 정문 앞에서 정운선 교육부 학생건강지원센터 센터장(경북대 소아정신과 교수)이 읽은 편지글이 계기가 됐다. 단원고 3학년 학생이 기자들에게 쓴 글이었다. 장래 희망이 기자였다는 이 학생은 "올해 들어 장래 희망이 바뀌었다. 꿈이 바뀐 이유는 바로 여러분(기자들)이 가만있어도 죽을 만큼 힘든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분들에게 큰 실망과 분노를 안겨줬기 때문"이라고 호소했다. 언론이 실종자 가족 등을 대상으로 지나친 취재 경쟁을 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정 센터장은 "피해자들의 심리치료를 위해서는 언론의 협조가 가장 중요하다. 학생과 교사 등에 대한 개별 인터뷰를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교문 앞에 모여 있던 기자 100여명은 모두 학교 정문에서 20m 떨어진 건너편 도로로 물러났다. 곧 단원고 3학년 학생들이 학교에서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지만, 인터뷰를 위해 학생들을 붙잡는 기자는 아무도 없었다.

안산/홍용덕 김일우 김기성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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