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유명 의류업체 나몰라라..사회로 돌아가지 못하는 피해자들

홍순준 기자 2014. 4. 24.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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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시위에서 참가자 가운데 일부는 특이한 글씨가 새겨진 옷을 입었습니다. 'It's not just prices that are knocked down'(가격만 무너진게 아니다) 'United victims(희생자) of Benetton'(베네통 원래 상표명은 United colors of Benetton)

까르푸와 베네통을 비꼬는 문구입니다. 이들 시위대는 까르푸와 베네통, 그리고 프랑스의 대형마트 체인인 '오샹' 이렇게 세 회사를 꼭 집어 비판했습니다.

이들 세 회사의 공통점...지난해 4월 24일, 1천 1백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붕괴참사 당시, 그 공장에서 물건을 납품받던 회사들 중 일부입니다. 당시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을 촉구하는 시위였던 겁니다.

지난해 4월 24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외곽에서 8층짜리 의류공장 '라나 플라자'가 폭삭 주저앉았습니다. 1,135명이 목숨을 잃고 2,500명 이상이 다쳤습니다. 방글라데시 최악의 산업재해로 기록됐습니다.

이후 희생자 가족과 부상자들을 위해 4천만달러, 우리돈 4백억원의 기금을 만들자는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유나이티드 피플'이란 단체가 앞장섰는데, 라나 플라자와 연관된 선진국 브랜드는 모두 28개라고 집계했습니다. 이 단체는 붕괴 1주년까지 국제노동기구(ILO)에 기금을 모두 내야 한다고 촉구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C&A, Camaieu, 망고와 자라를 갖고 있는 인디텍스 등 10개 브랜드는 보상을 공개 약속했습니다. 이 가운데 영국 회사 Primark 는 지난 3월, 이미 2백만달러 규모의 단기 금융 지원과 식량 배급을 한데 이어 추가로 1000 만달러 지원방안을 발표했습니다.

그럼 앞서 지적한 세 회사는 왜 '꼭 찝혀' 시위의 표적이 됐을까요? 유나이티드피플의 기획담당 바네사 고티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프랑스 대형마트인 '오샹'과 베네통, 까르푸 등 3개 회사가 잘못을 인정하고 보상에 나설 것을 요구하는 겁니다. 그들은 방글라데시에서 아주 값싼 노동력의 혜택을 충분히 누렸습니다. 그렇다면 그만큼 보상에서도 기여해야 한다는 겁니다." 오샹은 자기 회사와 방글라데시 현장과 사업적으로 직접적 연관은 없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자기들이 모르는 공장에서 아웃소싱 방식으로 물품을 공급받는 형식이라는 겁니다. 어디선가 많이 익숙한 변명입니다. 한국식 하청관계, 즉 갑을 관계에서 을인 하청회사에 사고가 생겨도 갑인 원청회사는 '우리 일 아니다' 하며 발빼는 모습과 똑같습니다.

베네통 역시 사고가 난 공장에서 자기네 상표가 새겨진 옷이 발견될 때까지 자기네 회사와는 전혀 관계없다고 부인해 왔습니다. 까르푸 역시 방글라데시 공장과의 직접적 관계는 부인합니다. 그러나 붕괴 이후에 언론에서 촬영한 사진들에서 까르푸 옷들이 많이 모습을 보였습니다. 빼도박도 못하게 된거죠. 이 세개 기업은 언론의 해명 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파리 시위에는 당시 현장에서 가까스로 구출된 봉제노동자 쉴라 베품이란 여성이 참석했습니다. 그녀는 자궁을 못쓰게 됐고, 팔도 크게 다쳤습니다. 일을 할 수도 없게 됐는데, 보상금이라고 받은 돈은 형편없다는 게 그녀의 하소연입니다.

"합의된 보상금은 충분치 않습니다. 나는 오른 팔을 쓸 수 없게 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팔 다리가 없어졌습니다. 문제는 일을 할 수 없게 됐다는 것입니다. 사회 구성원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게 가장 슬픕니다"

보상금은 치료 뿐 아니라 생활비로 이미 동난 지 오래입니다.

"보상에 문제가 없었다면 여기 파리까지 오지도 않았습니다. 사회에 다시 합류할 수 있도록, 그리고 우리 자식들에게 미래를 보여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겁니다. 그게 바로 정의입니다."

사고 1년이 됐지만 사고 공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여전히 열악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사고 이후 국제적 압력에 못 이겨 의류 노동자의 월 최저임금을 77% 올렸습니다. 68달러가 됐습니다. 한달 월급입니다. 그러나 근무시간은 지금도 10시간이 넘습니다.

방글라데시 의류노동자연합 사피아 파빈은 비극이 벌어진 뒤에 근로환경이 조금 좋아지긴 했지만 또다른 문제에 직면했다고 말합니다.

"라나 플라자 붕괴 사건 뒤에 방글라데시 의류 노동자의 상황이 조금은 개선됐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다른 의류 공장들에서 벌어지는 관리 문제입니다. 그 공장들은 노동자의 조합활동을 막고 있습니다"

당국의 위협과 물리적 폭행은 계속된다는 이야기입니다. 1억 6천만 방글라데시 인구 가운데 360~420만명이 의류 공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는 중국에 이어 두번째로 큰 의류 수출국입니다. 대형마트나 유명 브랜드샵에서 보이는 화려한 옷들 속에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피와 땀과 더불어 피눈물이 담겨 있다는 생각을 하니 안타까움이 더해집니다. 왜 이렇게 안타까운 일들만 눈에 보이는 걸까요.홍순준 기자 kohsj@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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