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감독 잔혹사'.. 김성근-김기태 '평행이론'?

2014. 4. 2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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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준목 기자]

프로야구 LG 트윈스의 김기태 감독이 전격 사퇴한 것으로 알려지며 팬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해 LG를 11년 만에 플레이오프 진출로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은 김 감독은 올시즌 팀이 최하위로 추락하면서 불과 시즌 개막 18경기 만에 지휘봉을 내려놓게 됐다.

김기태 감독의 사퇴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물론 성적부진이지만 아직 시즌이 개막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다. 올 시즌 팀간 전력이 평준화되었다는 평가 속에 잦은 연장전과 투수력 소모로 고전하기는 했어도, 1위와는 7.5게임차, 4위권과도 아직 5.5게임 차이에 불과하다. 시즌을 100경기 이상 남겨놓은 가운데 벌써 성적에 대한 책임을 운운할 시점은 아니었다.

시즌 개막 한 달도 안 됐는데... 벌써 책임 운운?

우발적인 결정이 아니라면 뭔가 숨겨진 이유나 복합적인 사연이 있는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있다. 사실 김기태 감독의 사퇴설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감독 부임 첫해이던 2012년 초반 승승장구하던 LG가 결국 뒷심부족으로 4강진출에 실패했을 때도, 2013년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을 때도, 심지어 그해 결국 11년 만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일궈냈으나 포스트시즌에서 두산에 역전패 당했을 때도 김기태 감독이 자의 혹은 타의로 지휘봉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한동안 파다하게 나돌았다.

우여곡절 끝에 김기태 감독은 올해로 LG 사령탑 3년차에 접어들었지만,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은 김 감독의 팀내 입지가 생각보다 탄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정황들이다.

전년도 팀을 플레이오프까지 올려놓은 감독이, 이듬해 장기레이스에서 찾아온 첫 번째 고비를 넘지 못하고 9개 구단 중 가장 먼저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는 불명예를 안았다. 만일 구단이 김기태 감독에 대한 확고한 신뢰와 힘을 실어줬더라면, 시즌 초반부터 김 감독이 극단적인 선택을 내렸을 리가 만무하다.

LG로서는 12년 전과 '평행이론'을 떠올리게 하는 비극이다. LG는 2002년 당시 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었던 김성근 감독을 전격적으로 경질했다. 구단이 추구하는 '신바람 야구'의 철학과 김성근 감독의 야구철학이 안 맞다는 게 이유였다.

그 대가로 LG는 이후 10년간 한국시리즈는 커녕 포스트시즌에도 나가보지 못하는 혹독한 암흑기를 보내야 했다. 김기태 감독이 지난해 플레이오프 진출로 오랜 암흑기를 청산했지만 그 역시 반년을 넘기지 못하고 팀을 떠나는 신세가 되었다. 경질이냐 자진사퇴냐의 방식 차이는 있을지언정, 팀에 성공을 안겨다준 감독을 지키지 못했다는(혹은 안 했다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감독들의 '무덤' 된 LG... 이런 식이면 미래 기약하기 어려워

알고보면 LG 감독이 '고난의 자리'라는 것은 야구계에서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프로스포츠 모든 구단의 감독들이 힘든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유독 LG는 감독들의 '무덤'으로 악명을 떨친 것도 사실이다. 단지 성적에 대한 부담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LG는 구단 고위층과 프런트의 입김이 지나치게 막강하여 현장의 권한을 침해한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고, 개성 강한 선수들과 팀내 뿌리 깊은 파벌로 선수단 장악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도 오래전부터 계속됐다.

한국시리즈 4회 우승에 빛나는 명장 김재박 감독(9대)을 비롯하여 이순철(7대), 박종훈 감독(10대) 등도 모두 이러한 LG의 구조적인 문제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한 감독이라는 꼬리표를 안아야 했다.

LG의 제 11대 사령탑이었던 김기태 감독의 행보 역시 알려진 것 이상으로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김 감독은 부임 초기부터 역대 감독들에 비하여 좋지 않은 분위기 속에 팀을 맡아야했다.

부임 첫해 소속팀 선수들이 승부조작 파문에 연루되는 초대형 악재가 벌어졌고, 조인성 등 주축 FA들의 이적하면서 심각한 전력누수를 안아야 했다. 부임 당시 경험이 부족한 최연소 감독을 향한 의문 부호도 많았다.

김기태 감독은 어려운 상황속에 선수단을 끌어안는 소통의 리더십으로 선수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이듬해 정현욱, 류제국 등이 가세하면서 마운드가 안정되고 투타의 신구조화를 앞세워 11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기적을 연출했다.

하지만 2014시즌을 앞두고 구단의 투자와 전력보강은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 부상으로 이탈한 에이스 레다메스 리즈의 공백을 메울 만한 선수영입이 지지부진했고 외부 FA 영입에는 손도 대보지 못했다. 외국인 선수 엔트리가 확대되며 다른 구단들이 경쟁적인 메이저리거 출신 대어들을 영입할 동안, LG는 상대적으로 네임밸류가 떨어지는 선수들이 거론되는 등 투자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매년 잡음이 끊이지 않는 LG 특유의 신연봉제 협상제도에서 기대만큼의 보상을 받지 못한 선수들의 박탈감도 컸다.

경기 내외적으로 크고 작은 잡음도 끊이지 않았다. 2012년 승부조작 파문을 비롯하여, 김감독 본인도 SK전에서 투수를 대타로 투입하는 '경기 포기' 사건으로 구설수에 오른 바있다. 2013년에는 임찬규의 물벼락 해프닝, 레다메스 리즈의 빈볼 파문 등이 있었다. 그리고 올 시즌에는 지난 20일 한화전에서 정찬헌과 정근우의 빈볼에 이은 벤치클리어링 사태가 벌어졌다.

엄밀히 보면 팀성적과는 별개의 사건들이었지만 하나같이 LG의 이미지나 팀분위기에 좋지못한 영향을 끼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때마다 구단 측이 감독과 선수들을 적극 보호하기보다, 김기태 감독이 먼저 나서서 책임지고 일일이 해명을 하거나 고개를 숙여야 하는 일이 잦았다. 유독 LG에서만 이런 일이 빈번했다는 것도 자존심 강한 감독 입장에서는 충분히 팀관리상의 스트레스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촉망받는 차세대 지도자의 반열에 한걸음씩 다가서던 김기태 감독은 결국 고비를 넘지못하고 다시 LG 감독 잔혹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비운을 맞이했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고있는 LG에서 김기태 감독의 사퇴가 어떤 후폭풍을 불러올지 아직은 예측하기 힘들다. 분명한 사실은 이런 전통(감독 단명, 중도하차)이 당분간 계속된다면 앞으로 어떤 지도자가 온다고 해도 LG의 장기적인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는 점이다.스마트하게 오마이뉴스를 이용하는 방법!☞ 오마이뉴스 공식 SNS [ 페이스북] [ 트위터]☞ 오마이뉴스 모바일 앱 [ 아이폰] [ 안드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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