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사람'..日서 만난 김기태의 기억

2014. 4. 24.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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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닷컴 MK스포츠(日 나고야) 안준철 기자] "그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일본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즈의 뒷문을 단속하고 있는 오승환(32) 취재를 하다보면 일본 취재진이나 관계자들이 말을 붙여오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일본과 인연을 맺었던 한국 야구인들의 안부를 묻는 경우가 많다.

23일 전격 사퇴한 김기태 LG트윈스 감독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사실 그의 지도자 생활의 시작점은 일본이다. 김 감독은 현역에서 은퇴한 직후인 2006년 한신에서 코치연수를 받았다. 애초 1년 연수였지만 시즌 중반 SK의 분위기 쇄신차원에서 단행된 코칭스태프 개편 때 1군 타격보조코치로 복귀했다.

하지만 그는 일본에서 배울 게 더 많다며 2007년 당시 이승엽(삼성)이 뛰던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다시 코치 연수를 받았다. 등번호 130번을 달고 첫 일본 무대에 나섰던 김 감독은 다음해 정식코치로 부임했다. 요미우리 역사상 외국인 코치 연수자가 정식코치로 계약한 경우는 그가 최초였다. 지도력을 인정받아 육성군 중 유망주들로만 편성된 퓨처스팀 감독을 맡기도 했다. 김경문 감독이 사령탑이었던 2008 베이징올림픽 야구대표팀 타격코치를 맡아 금메달을 따는데 큰 역할을 한 것도 바로 요미우리 코치시절이다. 그는 내야수 사카모토 하야토, 투수 도노 ??과 오치 다이스케를 길러냈다.

김 감독이 일본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성실한 자세였다. 당시 그를 기억하는 일본 야구관계자는 "(김기태 감독은) 가장 먼저 훈련장에 나오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야구를 대하는 자세가 진지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그는 남자였다. 그리고 예의가 바른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김 감독은 다시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것도 서울이라는 빅마켓을 연고로 하고 있는 LG트윈스의 2군 감독으로. 2011년 10월 LG감독으로 부임한 그는 지난해 11년 만에 LG를 가을야구로 이끌며 한국에서도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올 시즌 들어 팀 성적부진과 빈볼사태 등으로 결국 자진사퇴하고 말았다. 일본에서 만난 그의 추억이 더 씁쓸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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