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애 키우냐" 야근 눈총에 유산까지.. 사표를 냈습니다

입력 2014. 4. 24. 03:09 수정 2014. 5. 15.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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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돌려주세요]<6>아이낳기 겁나는 워킹맘들

[동아일보]

"이 판국에 애를 낳으라고요?"

저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평범한 '직장맘'이죠. 직원이 30명도 안 되는 작은 홍보회사지만 일도 재미있고 보람도 있어 평생 일하고 싶은 직장이었는데…. 저도 그만둘 때가 됐나 봅니다. 미혼일 땐 "애 때문에 직장을 관둔다"는 선배들을 비웃었지만, 제 이야기가 되고 말았네요. 결국 오늘 밤 사표를 썼습니다. 한창 돈이 들어갈 두 아이를 생각하면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할 텐데. 한숨만 깊어지는 밤입니다.

○ 워킹맘 5년 차… 만신창이 몸만 남아

"우리 애는 셋쯤 낳자. 행복하게 해줄게."

A 씨(36)가 남편과 결혼한 건 7년 전. 아이가 없을 땐 그럭저럭 지낼 만했다. 서로 바쁘다 보니 주말 외식 한 끼가 연애 시절을 떠올리는 달콤한 데이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결혼 2년 만에 임신을 했지만 두 달 만에 계류유산이 됐다. 임신 초기에 조심하지 않고 매일 밤 야근한 탓이 크다는 것이었다. 친구는 "요새 다들 스트레스 받으며 일하다 보니 흔히 있는 일"이라고 위로했다. 다행히도 같은 해 임신에 성공했고, 연년생 남자아이의 엄마가 됐다.

문제는 셋째 임신부터였다.

남편은 "더 늦기 전에 셋째를 낳자"고 했고, 노력 끝에 지난해 6월 임신했다. 하지만 아이는 2개월째 유산됐다. 의사는 "건강한 산모도 이렇게 일하면 유산 위험이 커지는데, 30대 후반에 몸 생각 안 하고 야근을 하면 어떡하느냐"고 책망했다. 두 아이를 어린이집 보내느라 출근시간을 남보다 한 시간 늦추는 것도 허락받았는데, 야근까지 빠질 수 없었다. 평일 5일 중 4일은 오후 10시에 퇴근하고, 그래도 일이 밀리면 일요일에 나와 처리했다.

회사에는 유산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혹시나 직장에서 "애 둘 때문에 편의를 봐주고 있는데 셋째도 낳는다고?"라며 비꼬는 사람이 있을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일반휴가를 내 유산을 한 뒤 아무렇지 않은 척 회사에 복귀했다. 외동아들로 자란 남편은 "하나만 더 낳자"고 조르지만 A 씨는 딱 잘라 거절했다.

어린이집 끝난 아이들은 친정어머니가 돌본다. 그 대신 퇴직하신 부모님께 월 100만 원을 드린다. 아이 교육비, 아파트 대출, 생활비 등에 쓰고 나면 월급 280만 원은 거의 남는 게 없다. 만성 위염, 디스크, 게다가 유산까지…. 본전도 못 뽑는 직장생활 끝에 남은 건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뿐이다. 결국 몸 고생, 마음고생 끝에 사표를 내기로 결심했다.

○ "너 혼자 빠지냐"… 배려 없는 회사

야근, 회식, 주말근무를 반복하다 과로로 만성질병을 얻고 급기야 유산까지 하게 된 이 사연은 주인공 A 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해 직장에 다니는 기혼 여성 405명을 대상으로 '워킹맘의 직장생활'을 주제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기혼여성 65.4%는 "현재 다니는 회사가 여성에게 좋은 직장문화가 아니다"고 답했다. 특히 자녀가 있는 워킹맘 265명은 그 이유로 △출산·육아휴직 등 직장맘을 위한 복지 부족(32.1%) △과중한 업무로 인한 가정·일 불균형(24.5%) 등을 꼽았다.

워킹맘들은 양육 초기부터 흔들린다. 규정상 출산휴가는 90일, 육아휴직은 최대 1년이 보장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림의 떡'이기 때문이다. 디자인 회사에서 근무하는 이모 씨(30)는 지난해 말 임신 사실을 들었다. 회사의 허락은 둘째 치고, 한 식구라고 생각했던 팀원들도 내 편이 아니었다. 팀장과 남자 직원들은 "남은 사람들이 불편하니 출산휴가만 쓰고 오든지, 아예 퇴사시키고 다른 직원을 뽑으라"고 불평했기 때문이다.

이 씨는 "제도상 휴직을 보장해도 회사 분위기상 제대로 활용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회사가 대체인력 고용을 부담스러워하다 보니 나만 '일에 구멍 내고 쉬는 사람'이라는 핀잔을 듣게 됐다"고 말했다. 임신 6개월째인 그는 "휴직을 허락받는다 해도 복직했을 때 동료들과 함께 일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걱정했다.

일반 기업에서 최대 1년 보장되는 육아휴직을 무사히 마치고 복귀한다 해도 직장맘들의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김모 씨(27)는 일주일에 3일은 오후 10시에 끝난다. '야근은 프로그래머에겐 당연한 것'이라는 회사의 분위기 때문이다. 집중해서 할 일을 끝낸다면 칼퇴근도 가능하지만 "애 때문에 혼자 빠진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 회사에서 늦게까지 자리를 지킨다. "고생했다"며 팀장이 호프집으로 데리고 가는 날이면 밤 12시 넘어서야 집에 갈 수밖에 없다.

평일 동안 아이 돌보기는 시어머니 몫이다. 주말에 아이를 데려올 때마다 할머니에게서 떨어지기 싫어 칭얼대는 아이를 볼 때면 눈물이 난다. 그는 "아이 양육을 위해 직장에 다니는 건데 도리어 아이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김명희 서울시직장맘지원센터 종합상담팀장은 "직장맘에 대한 충분한 여건을 보장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출산과 양육이 '축복'이 아닌 '고통'으로 여겨질 수 있다"며 "법적으로 보장된 휴직제도를 현장에서 제한 없이 이용하고, 출퇴근 시간 유연제 등을 통해 일을 하면서도 육아에 고통 받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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