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속 세상] 자연이 되살린 섬, 그리고 삶.. 하남 당정섬 멸종위기 흰목물떼새 집단 번식

2014. 4. 2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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삑삑삑 삐익∼.

날카로운 경계음을 내며 흰목물떼새(도요목 물떼새과·멸종위기종 2급)가 팔당대교 아래 자갈밭 사이를 분주히 오간다. 번식 장면 촬영을 위해 둥지 부근에 위장텐트를 설치하려 접근하자 놀란 수컷이 둥지 멀리서 다리를 절룩거리며 날개를 늘어뜨린다. 다친 척 흉내를 내며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려는 '의태(擬態) 행동'이다. 흰목물떼새 여러 쌍이 집단 번식 중이라는 제보를 접하고 취재에 나선 것은 지난 10일이었다.

머리와 가슴에 옅은 검은색 줄무늬를 자랑하는 흰목물떼새는 세계적으로 1만 마리 정도만 남아 있는 멸종위기 야생조류다. 텃새인 흰목물떼새는 소수가 무리를 짓거나 단독으로 생활한다. 주로 중부 이남 하천변 자갈이나 굵은 모래땅에 오목한 둥지를 만들고 보호색 반점이 있는 3∼4개의 알을 낳는다. 강물이 불어나 가슴까지 차올라도 끝까지 알을 품을 정도로 모성애가 강하다.

흰목물떼새는 이르면 3월 초부터 번식을 시작하지만 이들의 번식 상태는 아직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봄이 되면 경기도 여주 신륵사 아래 넓은 백사장을 비롯해 전국의 강가나 하천변에서 1∼2쌍의 번식이 확인됐지만, 4대강 사업이 본격화되고 서식지 일부가 사라지면서 개체수가 감소했다.

지난 2월 팔당대교 아래 당정섬을 중심으로 산곡천과 덕풍천 등 반경 1㎞ 이내에서 무려 8쌍의 흰목물떼새가 번식하는 것이 관찰되자 하남시 환경단체들은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보호대책 마련에 분주해진 '푸른교육공동체'와 '하남시환경교육센터'는 서둘러 산란터 주변에 안내 현수막을 설치하고 감시활동을 강화했다. 산곡천에 생태하천을 복원 중인 한국환경공단도 새끼들이 알에서 나와 번식지를 떠날 때까지 주변의 공사를 미루도록 했다.

아직까지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당정섬 주변은 생태계의 보고다. 축구장 16배 크기(약 85만9500㎡)의 당정섬은 30여년 전 골재 채취를 위해 파헤쳐졌지만 그 후 모래와 자갈이 다시 퇴적되면서 작은 모래섬이 생겼고 매년 섬 규모가 커지는 중이다. 자연이 스스로 되살리고 있는 당정섬은 주변 수심이 얕고, 바닥 암반에 다슬기 같은 새들의 먹이가 풍부하다.

섬 인근엔 새들이 안락하게 쉴 수 있는 넓은 갈대숲과 선동습지, 덕풍천, 산곡천이 자리 잡고 있어 봄과 여름에는 쇠제비갈매기와 물떼새류가, 겨울철엔 다양한 철새들이 찾아든다. 우리나라를 찾는 참수리, 흰꼬리수리(멸종위기종 1급) 대부분이 이곳에서 겨울을 보낸다. 당정섬으로 날아드는 큰고니의 개체수도 매년 늘어 지난해에는 무려 300여 마리가 관찰됐다. 이외에도 천연기념물인 혹고니 매 흑두루미 재두루미 황새 먹황새 노랑부리저어새 참매 새매 수리부엉이와 포유류인 삵도 관찰된다. 당정 둔치 일대는 특히 양서류인 맹꽁이의 국내 최대 서식지다.

지난 20여년 동안 당정섬 일대를 대상으로 모니터링을 실시한 야생조류교육센터 '그린새'의 서정화 대표는 "이곳은 수도권 동부권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동식물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을 갖고 있다"면서 "습지보호구역 지정 등을 통해 무분별한 골재 채취와 하천 개발 등 추가 훼손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때 망가졌던 터전으로 자연이 다시 불러들인 소중한 손님에게 인간도 선물을 준비해야 할 때다.

하남=사진·글 곽경근 선임기자 kkkwa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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