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폭행' 박종환 감독 퇴진..성남시는 책임 없나

오광춘 2014. 4. 24.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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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는 '40대 감독 전성시대'입니다. 축구대표팀을 지휘하는 홍명보 감독, K리그 클래식을 휘젓는 황선홍 포항 감독, 최용수 서울 감독, 서정원 수원 감독까지, 모두 40대의 젊은 감독들입니다.

하지만 현대축구에선 예순을 넘긴 노장 감독들의 리더십이 절실하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경질된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이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겪은 시행착오를 보면서 자연스레 은퇴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을 떠올리는 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여전히 유럽과 남미에선 노년의 명장들이 지휘 일선에서 인기를 모읍니다. 특히 스타 플레이어들의 집합체인 국가대표팀에 '할아버지 감독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사령탑 은퇴를 선언했던 거스 히딩크 감독은 브라질 월드컵 후 네덜란드 대표팀 지휘봉을 잡기로 했습니다.

유능하지만 개성이 뚜렷해, 파열음을 내곤 하는 어린 선수들이 팀 속에서 시너지를 연출하도록 나이 많은 감독들이 많은 도움을 준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아버지 세대를 넘어 할아버지 세대가 개성 넘치는 20대 선수들을 보듬는데 탁월하다는 건데, 그만큼 축구계에서 '어른'은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지난해 말 여든을 바라보는 박종환 감독이 프로축구 성남 감독이 됐을 때,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음에도 '어른'의 귀환이 프로축구에 훈풍을 남기길 바랐던 팬들이 적잖습니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노장 사령탑의 임기는 4개월도 가지 못했습니다.

연습경기에서 부진했던 선수에게 훈육을 하다 주먹으로 얼굴을 때렸고, 한사코 꿀밤을 먹인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다 결국 불명예 퇴진했습니다. 박 감독이 구단 징계에 앞서 자진사퇴 표명한 모양새지만, 그게 아니라는 공공연하게 알려진 일입니다. 퇴임 이면에 신문선 성남구단 사장, 그리고 이재명 성남시장의 퇴진 요청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실상 해임이었다는 얘기입니다.

돌이켜보면 박종환 감독이 성남 지휘봉을 잡게 된 과정에도 이해 못할 구석이 많았습니다. 시민구단으로 변신한 성남은 감독을 먼저 낙점한 뒤 사장을 공개채용했습니다. 구단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장을 먼저 뽑고, 그 그림에 맞춰 축구철학을 펼칠 수 있는 지도자를 선발하는 게 순리일텐데, 성남은 거꾸로 한 겁니다. 순서가 뒤바뀌다보니 '박 감독이 정치적 연줄을 타고 사장보다 먼저 성남 지휘봉을 잡았다'는 '설'이 나돌았습니다.

왠지 철학을 공유할 수 없을 것 같은 감독과 사장, 그 관계가 매끄럽지 못했던 것 같은 정황도 관찰됩니다. 박 감독은 선수 폭행 직후 취재기자와 통화하면서 "선수들에게 꿀밤을 먹인 것 뿐인데, 그리고 지켜본 사람들도 몇 없었는데 이게 문제되는 걸 보면 나를 내쫓으려는 한 사람이 일을 키웠다"고 말했습니다. 박 감독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이번 사건을 공론화 해 자신을 내쫓으려 하는 세력이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감독을 흔드는 주체가 신문선 사장이냐"고 못박아서 물어보자 쓴웃음 소리만 들려왔습니다.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음모론을 제기하는 모습이 씁쓸했습니다.

스포츠계의 폭행, 너무도 잦다보니 '파문'이라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악습과 구태라고 비판하는데도 이런 사건이 종종 터지는 걸 보면 대한민국 스포츠는 여전히 과거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폭행을 바라보는 박종환 감독의 시각 역시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젠 은퇴하고 방송해설위원이 된 이영표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감독을 너무 쉽게 뽑으니 끝날 때도 너무 쉽게 끝난다"고. 감독을 쉽게 뽑고 쉽게 끝내버린 성남시에게는 과연 책임이 없는 걸까요.

JTBC 스포츠문화부 오광춘 기자사진=중앙일보 포토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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